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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에도 방법이 있고, 수준이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어

by 갓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종종 타부서나 동료의 협조 요청이 올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여유가 있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응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거나 내 업무 영역이 아니라면 빠르게 손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끔 좋은 게 좋은 거고, 서로 돕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은 내가 모르는 영역까지 발벗고 나서서 상대방을 도와주고자 전전긍긍한다. 물론 좋은 태도이고, 그 심성 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나를 위해서도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 방법이다. 나에게는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부탁을 한 상대방에게도 최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 빠르게 손절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손절을 하는 방법에도 두가지가 있다. 효율성을 택할 것이냐 효과성을 택할 것이냐에 따라 방법이 달라진다.


1. 효율성 추구, 모르쇠형


한 마디로 내가 모르는 일이거나 도와줄 상황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이지만,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힘든 방법이다.


A: 박주임, 회사 홍보 자료 좀 보내줄 수 없어?

B: 아 그거 저희 팀에서 관리 안하는데요.


더 이상 할말을 없게 만드는 단호박 거절이다. 이때 형식적으로나마 유감의 메시지를 덧붙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A: 김대리, 그 자료 구할 수 없나?

B: 죄송하지만, 제 영역 아닌데요.


물론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내 일만 하기에도 벅찬 회사 생활이다. 여기 저기 치고 들어오는 협조 요청이나 도움의 손길에 일일이 응대하다간 업무의 맥도 끊기고 야근은 따논 당상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하지만, 조직이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적을 향해 가는 곳이고, 업무를 하다보면 필연 서로 돕고 협조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필연 내가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아야할 상황도 발생한다. 이때 내가 뿌려 놓은 씨앗이 없다면, 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그 누가 나에게 손길을 내민단 말인가?


관련해서 아래 일화를 소개해 본다.


“내가 기억하는 목사 한 분이 있습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마르틴 니뮐러라는 분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므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다음엔 노동자를 잡아가고, 신부를 잡아갔다. 역시 나는 무관심했다. 그러다가 나치가 나까지 잡아가려 할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중에서-


2. 효과성 추구, 토스형


내가 잘 모르는 일이거나 도와줄 상황은 안되지만 플랜 B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마치 떠넘기듯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


A: 매출 자료 정리된 것 있나요?

B: 저희 부서 소관이 아닌데요, 영업팀에 물어보세요.


A: 이번 신제품 상세 페이지 있나요?

B: 저는 잘 모르는데, 김대리님께 물어보세요.


물론 충분히 상대방을 위한 답변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뭐야, 귀찮다는 듯이 말하네’, ‘자기 일 아니라고, 떠 넘기듯이 말하네’ 등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때, 한 마디만 덧붙이면 좀 더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 업무를 토스하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효과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유 설명)

A: 지금 제가 00업무로 정신이 없어서, 혹시 김과장님께 요청하면 안될까요?


(효과 제시)

A: 영업팀에 한번 의뢰해 보세요. 아마 그 쪽에서 판매 데이터를 관리하기 때문에 더 정확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결론은 똑같다.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발을 뺀다는 측면에서 결론은 같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상대방에게 전하는 느낌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는 지극히 효율적이만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후자는 내가 좀 더 노력을 해야 하지만, 향후 내가 도움받을 때를 위해 작은 투자를 한다는 측면에서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이 안되거나, 상황이 아니거나, 내 일이 아니다 싶으면 치고 빠지는게 상책이다. 그리고 이때 효율성을 택할 것이냐 효과성을 택할 것이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기본 법칙인 ‘주는 것이 없으면 받을 것도 없다’는 기브앤테이크 원리나, 서로의 입장은 바뀔 수 있다는 상대성의 원칙에 비추어 봤을 때 뭐가 더 현명한 방식인지는 스스로 결정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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