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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Jan 20. 2020

제81화 : 욱하는 순간, 마음신호등을 켜보자.

위기의 꼰대 구출작전, 꼰대탈출 넘버원

나는 어렸을 때 ‘욱’하는 거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때로는 친구같이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로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신 분이지만, 뭔가 일이 잘못되거나 이해관계가 어긋났을 때 눈빛이 변하면서 욱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버지가 한번 욱했다 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오래전 기억지만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한 시기에도,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은 여전하셨다. 욱이 욱을 키운 것인지, 빈도나 강도에 있어서 더 개발된(?) 느낌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분노를 쏟아내신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욱을 받아들이는 내 입장이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화를 내고 분노하는 아버지가 무서웠는데, 이때는 우습게 느껴졌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될 것도 안 되겠네’


좀 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무작정 화부터 내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화부터 내는 아버지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욱하는 아버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원망만 쌓여갔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 내 나이 마흔이 되었다. 내 나이가 들고 자식새끼 크는 것만 알았지, 아버지 나이 드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어느덧 아버지 나이가 칠순이다. 평소 건강하신 분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뇌에서 혹이 발견되었다. 정확한 병명은 뇌동맥류였다. 그 혹의 크기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때 이후로 아버지의 건강도,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가족들은 농담 삼아 아빠의 그 욱하는 성미가 그 혹에 모여 있었는데, 이제 그 혹이 제거 됐으니 더 이상 욱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아버지가 가진 '욱'의 자생력은 대단했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여전히 건재했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그 빈도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전성기 때의 욱을 과시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는 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은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본인이 욱하는 성격이 주변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매번 후회를 거듭하는 아버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욱을 발산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회한의 크기를 잘 알기에 짠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는 욱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성인이 돼서는 우스웠고, 아버지의 욱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된 지금은 안쓰러운 생각으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본다.


어느 날인가 엄마와 함께 오래된 앨범을 보면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오래전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젊고, 장난기 가득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유독 눈에 띈다. 무슨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있고, 대중들은 뭐가 웃겨서 뒤로 넘어가고 있다.


“엄마. 아빠가 이런 것도 했었어?”


“그럼. 아빠가 이런 거 잘했어. 얼마나 신나서 잘한다고. 니들이 그렇게 유쾌하고 성격 좋은 게 다 아빠 닮아서 그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 기질과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넉넉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늘 아들들을 응원했고, 친구처럼 대했던 아버지의 감사함을 느꼈다. 욱하던 아버지의 성격 탓에 그동안 아버지가 주신 감사함, 고마움을 잊고 산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는 아버지가 욱하지 말고, 좀 내려놓고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 설날에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배웠다는 마음 신호등을 가르쳐 드리려고 한다.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온 기법인데, 그 방법이 정말 기가 막히다. 화를 다스리고 욱을 억제 하는데 이것 만한 방법이 있을까 싶다. 듣자마자 딱 우리 아버지를 위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신호등의 원리는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다. 일단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있는 그대로 화를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호등의 빨강-주황-파랑에 따라 행동하라는 원리이다. 감정 신호등의 핵심은 그 분노의 상황에 매물 되고 감정의 힘에 억눌리지 말고 잠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내 행동이 미칠 결과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특히 1단계 빨간불의 단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딸아이가 배워온 것에 따르면, 1-3-10의 법칙을 따르라고 한다.


•     일(1)단 멈추고, 나 자신에게 ‘진정해'라고 말하기

•     천천히 크게 심호흡 세(3)번 하기

•     천천히 열(10)까지 세기


짧은 시간 멈춤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다고 한다. 욱이 찾아오는 순간 버선 발로 마중 나가지 말고, 일단 감정의 신호등을 켜고 잠시 대기해보자. 물론 분노를 누르기 위한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감정신호등의 빨간불을 켜는 것만으로도  분노의 순간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대처할  있는 계기가  것이다.


욱하는 건 기질의 문제만은 아니다. 뭔가 좋게 말하면 되지 않던 일이, 화내고 소리 지르면 통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도 있다. 때로는 세상에 대한 분노이자 억울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응어리지고 분출할 때 욱하는 성미가 발동되기도 한다. 특히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의  배로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욱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욱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잠시 잠깐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최악의 경우 일신상의 위해가 가해지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욱하고 나면 잠깐 화를 풀 수 있을지 언정 주변에는 상처를 남기고, 내 마음에는 후회를 남긴다. 욱하는 사람 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를 통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욱하는 순간 진짜 훅가고, 모든 것이 사라질  있음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지금 아버지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외로움이다. 주변에 술 마실 친구도, 취미를 같이할 동료도 많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친구가 많아야 행복하다고 하는데 안타깝게 아버지에게는 그런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 부디 이번 설날 손녀딸이 전하는 감정 신호등의 방법으로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더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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