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엠립 & 프놈펜
시엠립의 마지막 투어이다. 오늘도 깐쵸 달봉 투어로, 오전엔 뱅밀리아 사원을 구경하고 오후엔 톤레삽 호수를 구경한다.
뱅밀리아는 사원 패스가 아닌 별도의 입장권이 필요하다. 거리가 시내에서 꽤 멀어서 차를 타고 한참을 갔다. 툭툭 타고는 도저히 못 갈 거리이다. 불편하기도 하고, 흙먼지 뒤집어써야 하기도 하고.
이 날의 투어 멤버는 핵심유적 투어를 함께 했던 4인 가족 + 우리 + 초등학생 꼬마가 있는 3인 가족이었다.
가는 길에 죽통밥스러운 간식을 만들어서 파는 곳이 있어 잠깐 멈춰서 만드는 과정도 구경하고, 인당 하나씩 먹었다. 대나무 줄기에 밥과 코코넛 물을 넣고, 대나무 겉을 태워 구운 밥이다. 밥보다는 떡 같은 느낌? 코코넛의 달달하고 기름진 맛이 느껴져 꽤 맛있었다.
계속 버스를 타고 가서 뱅밀리아에 도착했다.
뱅밀리아는 나무의 공격으로 꽤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 다른 사원은 모두 지상층을 구경한 데 반해, 여기 동선은 무너진 벽을 타고 올라가서 2층을 돌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가는 꽤 복잡한 형태였다. 지금은 나무 데크가 잘 짜여 있는데, 예전엔 제대로 데크가 되어있지 않아 헤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사원을 둘러 내려가는 중간엔 아주 깜깜한 복도가 나온다. 핸드폰의 플래시를 이용해 발길을 비춰가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얼마나 돌들을 정교하게 촘촘히 쌓았는지, 돌 틈으로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네.
숲 한가운데 있는 사원이라 공기도 시원하고, 복잡한 탐방로 덕분에 재밌었다.
다시 한참을 달려 호텔로 돌아왔다. 점심을 컵라면과 아까 남은 죽통밥으로 후딱 해결하고 드디어 호텔 수영장에 처음 들어가 봤다. 아직 덜 달궈져선지 수영장 물이 차긴 했는데, 수심도 1.6미터로 깊어서 짧지만 재밌게 물놀이를 했다. 아, 이렇게 풀이 있는데 투어 다니느라 제대로 들어가 보질 못하니 아깝네.
오후 3시에 다시 모여서 시엠립의 마지막 여정인 톤레삽 투어를 시작했다. 톤레삽 투어는 마을을 구경하고, 쪽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을 돌아다녀 본 다음, 톤레삽에서 일몰을 구경하는 일정이다. 건기와 우기에 톤레삽의 수위가 달라져 방문하는 코스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내가 간 12월에는 수상가옥으로 이뤄진 깜퐁 플럭으로 갔다.
먼지가 날리는 길을 버스로 이동한 후, 선착장에서 배로 갈아탔다.
이곳의 배는 스크루 부가 꽤나 독특했다. 내가 봤던 여타 다른 배는 선미에 스크루가 조신하게 달려있고, 밖에선 보이지 않는 구조인데 반해 여기 배들은 철골구조물을 이용해 스크루를 선미 저 뒤쪽에 달아놨다. 그리고 수위가 낮아서인지, 스크루의 높이도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해서 조절했다. 이게 재밌는 게 스크루가 물 밖에 나와있어서 옆에 배가 지나가면 옆 배로 물이 다 튄다. 물론 우리도 똑같이 물벼락을 맞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막 옆에 배 지나가면 소리 지르면서 이리저리 피했는데 재밌었다.
배를 타고 가니 금방 깜퐁 플럭 수상 마을이 나왔다. 여기 집들은 기다란 나무 기둥 위에 2~3층 높이부터 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계단으로 내려와선 배로 이동하게 되어있다.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남의 집 구경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절 같은 곳엔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행사를 하는데, 나중에 가이드분이 누군가 죽어 화장을 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아아...
확실히 지금이 건기라 물이 많이 빠져 수심은 꽤나 낮았다. 집들도 거의 바닥에만 물에 잠긴 정도였다.
좁은 물길을 굽이 굽이돌아 맹그로브 숲 쪽배 선착장에 닿았다. 쪽배는 노를 젓는 사공이 앞에 타고, 두세 명의 승객이 옹기종기 타는 구조였다. 베니스의 곤돌라의 매우 염가 버전이랄까. 사공 중엔 여자분이 많았고, 갓난쟁이나 꼬맹이들을 자기 앞에 앉히거나 뉘이고선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나와 아내가 탄 배의 사공은 학생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노를 젓는데, 이게 노를 젓는 건지 바닥에 노를 박고선 힘으로 미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빽빽한 맹그로브 나무 숲을 배를 타고 조용히 지나다니는 기분이 꽤 좋았다. 물론 한적하면 더 좋았겠지만 앞뒤로 쪽배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다.
쪽배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톤레삽에서 일몰을 구경하러 다시 아까 타고 온 배에 올라탔다. 쪽배 사공에겐 $1 정도의 팁을 주라고 했는데, 급하게 내리고 그들도 바로 다음 손님을 태우는 바람에 팁을 줄 타이밍이 없었다. 미안해요~
톤레삽이 엄청 큰 호수라고는 하지만 꼬불꼬불한 물길만 따라 내려왔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마을 지역을 지나 좀 더 내려오니 갑자기 탁 트인 호수가 확 펼쳐졌다. 이렇게 넓은 호수가 죄다 뿌연 흙탕물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배 천정에 올라가 맥주 한 캔씩 마시면서 해 떨어지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쉽게도 딱 해 지는 곳에 구름이 있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해 떨어지자마자 돌아가기 위해 다시 출발했는데 금세 깜깜해졌다. 오늘 관광객이 엄청 많았는지 선착장 근처가 배들로 엄청나게 막혔다. 퇴근길 강남대로에 신호등이 고장 난 수준이랄까? 게다가 차도 아니고 배라서 옴짝 달싹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 분은 자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앞의 배들이 손님을 내려준 후 배를 적절히 이동시켰어야 하는데 그냥 퇴근해버려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사람들이 이 배에서 저 배로 건너뛰어 뭍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급한 사람들이었다면 애가 탔겠지만 이것 또한 재밌는 경험이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은 펍 스트리트 근처에 있는 크메르 키친이라는 식당에서 가이드 분이 한번 먹어보라고 추천해준 풋후추 생선볶음과 캄보디아 식 고기덮밥인 록락을 먹었다. 맨날 잘 건조된 후추만 먹어보다 가지에 달린 열매 형태의 녹색 후추는 처음 먹어봤는데, 원래 후추를 좋아하는 나는 매우 맛있게 먹었다. 후추 치면 다 맛있어!
식사를 마치고선 간단히 시장을 둘러본 후, 기념품을 사기 위해 럭키몰에 가서 후추와 팜 슈거를 조금 사서 돌아왔다. 참고로 럭키몰이 아시아마켓보다 전반적으로 조금씩 싸더라.
원래는 이날 밤 버스를 타고 프놈펜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그냥 하룻밤 더 자고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비행기는 인당 $60 정도 되었던 듯?
메리 크리스마스! 조식을 먹고 좀 느긋하게 있다가 9시에 체크아웃을 한 후, 툭툭을 타고 시엠립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까지 툭툭 비용은 거의 $5로 정해져 있는데, 으아 이렇게 먼 곳도 $5 였구나. 난 여태 얼마나 비싸게 툭툭 비용을 치렀던 것인고! 역시 난 국제적 호구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출발 한 시간 전쯤 도착해서 수속을 하고 공항을 조금 둘러보았는데, 국내선이라서 그런지 공항 내에는 상점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깔끔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10:30분에 프놈펜행 비행기를 탔다. 옆자리엔 런던에서 온 영국 아저씨가 탔다. 그리곤 자기 딸이 한국에서 아스널 구단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에 대해 익숙하다, 넌 축구 좋아하니, 한국에선 영국 축구 유명하니, 여행은 어떠니 등등의 수다를 떨었다. 나도 축구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한국에선 유명하다, 한국인들은 유럽 축구 보려면 새벽에 봐야 해서 힘들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이런 대화도 나눴다.
"너 영국엔 와봤니?"
"응, 20년 전에 갔었어"
"아, 꼬꼬마 어린이였겠네?"
"음... 대학교 1학년 때 배낭여행으로 갔어"
"헐.. 너 38살이야?"
30여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다시 프놈펜 공항에 내렸다. 이번엔 우버를 타고 호텔인 플렌타티온으로 이동했다. 호텔은 예전 프랑스 건물을 개조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꽤 멋졌다. 정원도 멋지고 전반적으로 뭔가 인도차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건물의 느낌? 방의 침대엔 공주님 침대같이 그물망도 쳐져 있었다. 그냥 모기장인가?
점심은 대충 먹고 오후 3시 반이 되어서 프놈펜 왕궁 구경을 갔다. 비도 간간이 오고, 날이 흐려서 약간 아쉽긴 했다.
왕궁은 호텔에서 가까워서 걸어갔다. 매표소를 빼애앵 둘러 가는 바람에 꽤 많이 걸었네.
리뷰를 보면 입장료에 비해 별로 볼 것 없다, 돈 아깝다는 얘기도 있지만 왕궁 안의 전시물도 볼만 했고, 크고 웅장한 캄보디아 건물들을 볼 수 있어 돈이 아깝진 않았다. $10라고 해도 판교에서 밥 1.5끼 값 밖에 안되니 뭐... 판교 밥값이 너무 비싸서 반대급부로 어지간한 건 별로 비싸게 느껴지지가 않아. 다만 입장료에 비하면 나눠주는 안내도가 너무 부실하고, 건물 이름만 대충 나와있지 대체 이게 뭐 하는 건물인지 알 길이 없어 아쉬웠다. 실제 왕이 거주하는 왕궁이라서 그럴 법도 하다고 이해하고 넘어갔다.
왕궁 내부도 꽤 걸어 다녀야 하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사진 찍고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중앙에 있는 전시실엔 에메랄드도 있고 불상도 여럿 있어 볼만 했다.
왕궁 문 닫는 시간이 되어 맞춰서 호텔로 돌아온 다음, 근처에 있는 cocina cartel라는 멕시칸 식당에서 퀘사디아와 나쵸, 보울을 먹었다. 기분이다 싶어 데낄라 선라이즈도 한잔 시켜서 먹었다. 음식들 모두 맛있었는데, 확실히 여긴 시엠립보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쌌다. 음식들 양이 꽤나 많아서 퀘사디아와 나초는 호텔에 싸왔다.
비도 오고 해서 저녁 먹곤 호텔 구경 좀 하다 일찍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