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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r 07. 2017

인도를 노래하다

#44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이었다 (조드푸르)


머물러 있음에

기다렸다 말했고

기다렸음에 간절했다 말했고

간절했음에 애잔하다 말했고

애잔했음에 눈물이 났다 말했다






조드푸르의 밤은 깊었다

푸름이 어두움에 덮여 빛나진 않았지만

무거운듯한 그 밤은 더 깊어질수록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있었고 포근했다


이른 아침

알람이라는 냉정한 녀석의 우렁참에

베개에 잔뜩 묻은 잠과의 작별은 한결 쉬웠다

무의식적인 안녕 의식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창가로 걸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았는지

떨어질듯한 가벼운 창은 활짝 열리었고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들어온 파란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했다


하늘을 담고 싶었을까

바다를 닮고 싶었을까


눈으로 들어온 것은

청량감이고 시원이었다


 사이다 만큼 시원했다


따뜻한 햇살과 함께 

인디고 블루의 시원함과 이상적인 맑음

그러나 

일상은 텁텁한 약간의 건조함



몽롱함을 지나 몽환을 씻어내고자

가벼운 세안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자

짜이 한 모금


이런 기분으로는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같은 김종욱을 찾을 수 있겠다



체크아웃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두르고 싶지는 않아

더 여유를 부리는데


아침도 같이 하라는 주인아저씨의 시원한 음성이 들렸다


파랑의 시원한 음성에 현혹될 뻔했지만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젯밤 그의 호기로움에 음식을 시켜 맛을 보았다

감히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의 호기로움은 당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유인즉슨

어제저녁 고단함에 멀리 가지 않고

숙소에 딸린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틀리게 나왔고(뭐 이런 것쯤이야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건..

 

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맛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요리 장인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

이것이 인도라는 맛이라는 것


실수란 한 번이면 족한 것

두 번의 실수 따위는 하지 않겠다


맡겨둔 짐을 뒤로하고

조드푸르 시장의 중심 시계탑으로 향했다

30년이 넘도록 오믈렛을 만들고 계신다는 장인이 있다고 했다

손놀림이 장난이 아닌 것만 빼면 그냥 동네 할아버지셨다


연세가 많이 드셔 종종 간 조절에 실패한다는 것 빼곤(조크)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시간의 흐름이 허투가 아녔음을 보여주셨다

착한 가격에 최강의 맛을 보여주시는 조드푸르의 오믈렛과 장인

감동이로소이다



델리행 기차 PM 8시

많은 시간이 남았다


내가 여기 조드푸르에서 보고 싶은 건 딱 하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블루시티를 만끽하고 싶다는 것


블루시티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메헤랑가르 성


그늘보다 시원한


그 어떤 도시들 보다도 

천천히 곱씹어 걸었다


작고 꼬불꼬불한 골목들은

푸름을 가득 담아

하늘을 닮고 바다를 담아 있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메헤랑가르 성은

얼마 전 자이살메르 성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골목의 끝자락에 섯을때

메헤랑가르 성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리

웅장했다


난공불락의 초대형 성

시간이 지남에 자연친화적인 박물관으로 전람했지만

9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스토리가 있었고 단 한 번의 침략 조차 받은 적이 없는

철저히 디자인이 된 인도 최고의 성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래됨과 늙음엔 멋이 있고 지혜가 있다


오래됨과 늙음엔 지혜가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메헤랑가르 성

그 아래 더 넓게 파란 마을

하늘을 담고 싶었던 건지

바다를 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틈틈이 푸름을 닮아 있었다



사실 조드푸르의 블루하우스들은 

인도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 등급을 표하려 칠하기 시작한 것이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전통이 되어버렸다는 것

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 계급을

겉으로 표가 나게 정한 계급이다


다시 알고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슬프지 않을 수가 없다 

천년의 세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뀔 시간임에도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는 아닐테지


이 곳 조드푸르의 파란 전설은

천년을 머물러 왔지만 앞으로도 천년은 더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아

가슴 한 곳이 아릴듯한 슬픔을 간직할 것만 같다



라쟈스탄주에 유독 한국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건조하고 모래가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는

예쁘고 멋있는 마을들이 많아 충분한 감동을 느낄 테다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질 않음을 느꼈다


특히나 나에게는

조드푸르라는 도시가 있었음에

인도라는 나라를 보게 되었으므로

김종욱이라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 듯한데

월리보다도 찾기가 힘든 사람이다



이날 저녁

어느 조용한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해 질 녘까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앉아 보냈다


김종욱을 찾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조드푸르에는 김종욱은 없었다

첫사랑을 찾아주던 그 김종욱은 없었지만

그 첫사랑만이 간직하는 풋풋함은 어렴풋이 느꼈다


오래된 사진처럼

한 번씩 추억하면 그걸로 첫사랑 임에 분명하다


나에게 조드푸르는 첫사랑이었다



다시 푸름에서 어두움으로 변한 조드푸르에서

델리라는 인도의 수도로 향해 달릴 차례다


언제나 밀도가 가득한 인도의 기차역

모든 것이 뒤섞여 인도라는 것으로 뭉쳐 있다


역시나 인도라는 나라에서 생각대로란 없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마음의 위안이라도 느낀다



포화상태인 SL등급의 기차 칸은

표를 끊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고 

대기번호가 100번이 넘어가 몇 번의 고민 끝에 

한 등급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겨우 1등급의 차이 었지만 

아니 겨우 한 칸의 차이지만


가격은 3배 차이였고 

서비스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것이 달랐다


평민과 귀족의 차이랄까

분명 이 나라에 이 시대에 아직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돈이 곧 계급이다


너무나 다른 이미지에 내가 혼란스러웠다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보는데

젊은 친구가 어디에서 왔느니

어디로 가느니 물어왔다

한국에서 왔고 인도 전역을 돌아볼 참이다 하니

어디 어디가 좋다며 자부심 강하게 말한다


나 역시도 가족끼리 어디로 가니 물어보니

두바이에 새해보러 간다는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이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여태껏 내가 보아온 인도인들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건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등바등 사기라는 걸 친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조금은 더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꿈을 꾸었는데 

하필이면 나는 인도 국적을 가진

황색 피부의 릭샤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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