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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GWORK STUDIO Jan 31. 2023

(2) 빈둥의 과제 : 공간 마련하기


어린이의 놀이공간은 진입에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나이 계급 경제차이 학업차이 그리고 신체 능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진입해서 저마다의 자유로운 놀이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놀이 선택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발성에 근거한 '하고 싶다'의 마음이 제지당하지 않고 펼쳐질 수 있어야 진짜 놀이가 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를 감각하고 공동체가 함께 조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놀이장소는 어린이가 스스로 접근하기 쉬운 곳에 공유지 장소에 세워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양평에 이렇게 넓은 국유산림과 하천부지 공원부지가 있음에도 지역 공공기관에 문의했을 때 생각보다 쓸 수 있는 공유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앞서 글에서 논의한 관료조직의 부서 간 배타성과 책임회피논리 문제도 있지만 설사 쓸 수 있는 땅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땅은 금세 지역의 다른 영향력 있는 기존 단체에 의해 선점되기 일쑤입니다. 지역에는 각종 공익을 목표로 하는 민간단체들이 있습니다. 노인회, 체육회, 농민회, 각종 협회, 재향군인, 전우회, 등등 지역에 공유지에 빈 땅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기도 전에 지역 기관장과 친한 어른들이(물론 합법적인 과정을 거치겠지만) 먼저 빠르게 접근하고 차지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이런 지역의 기관과 접촉할 수 있는 정보력과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반면 지역에 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어른들은 이런 공유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이 높습니다. 반면 젊은 부모들도 지역 어른들과 소통하려 하지도 않고 이런 공유지 정보에 관심도 없습니다. 



빈둥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한 가지 경험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국토부에서 면사무소에 위탁한 고속도로 하부 체육공원 부지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빈둥 놀이운동을 지지해 주시는 한 부모님이 이 정보를 알아내고 미팅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서 폐허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는 고속도로 고가도로 밑 체육공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부지가 3개로 구획되어 있고 중간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도랑도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고철 체육기구까지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면사무소에 찾아갔을 때 벌써 지역 마을회에서 농업용 폐비닐 쓰레기 적치와 벌금 문제로 고성이 오가고 있고 공유지 있으면 비닐 쓰레기 임시 적치 할 창고 내놓으라고 고성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면장님은 악성민원인을 대하면서 그 놀고 있는 땅에 폐비닐 창고를 지어 주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이렇듯 어린이들의 놀이장소와 어른들의 목적성 공유지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부모들 중에 그 어르신처럼 고성을 지르면서 면사무소에 드러누울 만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더 나아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놀 권리보다는 학업에 집중하기를 은연중 바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 폐 체육공원 부지는 지역 농민회나, 마을회, 혹은 어른 체육회에서 수탁을 받을 것을 것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그 면장님 부면장님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답보 상태입니다. 이렇든 장소를 둘러싼 실재 현상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농민들도, 면장님도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도 이런 일에 나설 이유나 여유가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모여서 어린이가 살기 좋은 마을이나 도시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럼은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자치규범과 상호호혜의 원칙으로 공유지 관리를 국가의 강제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도 더욱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한 세계적인 사례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놀이 공유지야 말로 국가의 강제적 관리가 비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고 민간이 자율자치적으로 상호성과 호혜성에 근거해서 규범을 자치적으로 만들어서 어린이에게 돌려주어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관리한 현재의 놀이 공간이 지나친 관리와 감독, 관리자의 책임회피의 논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린이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시장 자율에 맡겨놓으면 '프리미엄스포츠 클럽'이나 '스포츠 M00'처럼 대기업이나 거대자본이 비싼 설비 시설을 투자해서 만들고 회당 몇만 원의 입장료를 받고 진입하는 놀이 공간이 됩니다. 이러한 공간은 대다수 어린이들에게 집입이 어렵고 더 나아가 단회적 흥분과 신나는 체험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놀이의 본질인 자율적 선택이 없고 연속적이면서 창의적인 실험이 쌓이지도 않으며 공동체와 친구 관계도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빈둥의 공유지 놀이부지를 찾기 위해 새로운 이 빈둥 프로젝트 제안서를 가지고 군청을 돌아다녔습니다. 두 분 정도는 통화만 했고 답변을 기다렸으나 휴가와 부재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세 분 정도 각기 다른 부서의 팀장들과 우여곡절을 통해 만났습니다. 


긴 대화들도 있었지만 답변을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일단 우리 부서는 그런 일을 하는 권한이 없다. 다른 부서를 연결해 보아라.' 그리고 계속 다른 부서로 저를 넘겨주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솔직한 대답을 해준 팀장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헤어지기 전 밖에 나와 담배하나 태우며 솔직한 속내를 말씀해 주셨다. '대표님 취지도 알겠고 너무 좋은 사업이다. 나도 청소년 자녀가 있는데 내 자녀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싶다. 하지만 공공 조직에 의미 있는 새로운 일을 벌이면 돌아오는 보상이라곤 '뿌듯함' 하나이지만 만에 하나 사건 사고라도 나거나 민원이 나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내쳐진다. 우리 사회는 한 번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다. 득이 되는 것이 없다. 이게 현실이고 다른 부서들도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재 발령 이동을 앞두고 있고 아무도 나서서 협조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신 팀장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부터 군청에 가지 않았습니다. 군청에서 나중에 찾아오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빈둥은 이번 2022년 놀이프로젝트를 하면서 양평지역의 한강수변공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활용하였습니다. 양평의 남한강은 한강상류지역으로서 수도권 상수원 보호목적으로 수변구역 개발에 제약을 두고 있습니다. 공익을 위한 일종의 농촌지역의 희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호고통분담이라는 원칙아래 서울 경기지역의 상수도에는 톤당 170원의 보조금을 더 지불하고 이 비용은 상류지역의 희생을 보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육, 복지, 마을 사업에 쓰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 지출되는 항목은 한강 수변 1km 권역 내 땅을 수자원공사가 사들이는 일입니다. 매물이 나오는 데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사들이고 멸실하고 나무를 심어 녹지화 시킵니다. 네 결국 수도권 주민을 위한 일입니다. 이렇게 남한강 일대를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땅으로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양평군의 남한강 일대는 이렇게 수변 공유지가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천연의 늪지 상태인 혹은 관리된 공원형 태인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양평읍의 한 수변구역의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애매한 땅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기로 환경부와 양평군이 MOU를 맺어 놓고 사실상 어느 부서도 관리하지 않아 야생의 땅으로 방치된 땅이 있었습니다. 공원을 위한 설계 용역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권이 바뀌는 바람이 사업이 진행 중인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군청을 찾아가 이 땅에서 놀게 해달라고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내역을 잘 알고 있는 한 공공기관 직원분이 말리시더군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냥 놀라고.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군청에 문의하면 환경부에 문의해라! 환경부에 문의하면 군청에 MOU 맺었으니 군청에 문의해라. 그러면 아직 정권 바뀌고 업무 분장을 안 받은 상태의 관련 주무 부서는 서로 이일을 관리 안 맡으려고 서로 떠넘기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한 부서가 관리를 맡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서는 '서류'에 근거해서 이 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부 땅이니 아무것도 하지 마라. 치워라!! 


이런 수순의 시나리오가 예상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미팅 경험에 근거하면 문의해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보다 어차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니 조용히 놀고 깔끔하게 치우라면 치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실천 대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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