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GWORK STUDIO Feb 01. 2023

(3) 빈둥의 과제 : 멍 때리는 시간 만들기

기존의 공공기관의 놀이 정책이 피상적인 접근에 그친 이유는 '시간의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근시안적인 정책은 큰 선심 쓰듯이 어린이를 위한 좋은 시설만 하나 지어 놓으면 된다는 착각을 합니다. 

어린이 놀권리 문제는 지극히 작은 일부 공용 공간에 어린이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고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핵심은 어린이를 둘러싼 삶의 구조와 시간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멍 때리거나 자유로운 놀이 시간'이 필수적이다는 인지 발달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느슨한 시간 가운데 함께 어울려 마음껏 놀이하고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놀 친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빈둥 프로젝트의 일련의 과정들은 이러한 어른들과 여러 가정 공동체 간에 공감대를 끌어내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2014년 경향신문에서 놀이에 대한 기획 탐사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초등 2학년 대상으로 매일 한 시간 이상씩 놀고 있나요? 질문했습니다. 어린이들은 20.7%만이 하루 한 시간 이상씩 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그 부모세대들은 어릴 적 81.3%가 한두 시간 이상씩 놀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부모들은 90%가 자신의 아이들이 한두 시간 이상씩 놀았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견됩니다. 놀았으면 좋겠다 하는 부모의 바람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어린이가 건강하게 크길 바라는 부모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돌봄 문제와 현실문제가 어린이들의 시간을 쪼개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일까요? 진실은 부모들만 알고 있습니다. 


2019-2020년 한국주택공사가 발주한 어린이 놀이환경연구 결과는 더 심각합니다. 

수도권 어린이 768명을 대상으로 설문했습니다. 평일에 전혀 못 논다고 응답한 경우가 무려 33%가 나왔습니다. 하루 2시간씩 이상 논다고 응답한 어린이는 0%입니다. 주말은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 2시간 이상 논다가 26%, 주말에도 거의 못 논다가 22%로 나왔습니다. 앞서 글에서 강남의 한 공립초등학교 12세 어린이의 3분의 2가 저녁 먹고 또 학원에 가서 10시 이후에 집에 돌아온다고 밝혔습니다. 고3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3-5학년입니다. 



이 사회는 어린이를 괴롭히기로 공통의 음모를 꾸미기라도 한 것일까요? 어린이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 잠을 줄여가며 스트레스와 강박을 견디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이니까요? 누가 누가 괴로움을 잘 견디느냐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왜 태어나야 하는 걸까요? 실제로 이러한 질문을 어린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 '시간 사용권'에 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인생의 가치관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어린이 청소년의 삶의 시간을 디자인하는데 결정적으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호주로 잠시 휴직하고 떠난 한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삶을 사셨습니다. 지방에서 공부를 꽤 열심히 하셔서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갔고 다들 취업 준비할 때 열심히 준비해서 남들이 바라는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십 년간 열심히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렇게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삶을 사는 동안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좋은 사내복지 제도를 이용해 육아휴직을 최대한 사용하고 기존의 삶과 멈춤과 단절을 선언하기 위해 잠시 호주에 이주해서 아내분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자기 자신도 전업육아 하면서 글쓰기라는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셨습니다. 지금도 퇴사를 고민하면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고 계십니다. 


질문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자신을 몰아쳐서 상대적 우위에 올라선다 하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삶에 대한 철학을 말하지 못하고 삶의 속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병리적 결과나 일탈이 아니고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즉각적인 재미있는 콘텐츠가 가득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심심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 어린이들은 이 사회의 병리적 구조를 나타내는 하나의 신호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언어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중세 시대에는 "심심해"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합니다. TV도 스마트 기기도 없는 시대에?라고 의아하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자연이 생활과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귀족이 아닌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철들면서부터 바로 노동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자연의 변화만큼 드라마틱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혹한 자연환경 앞에 우리가 물을 길어오고 빨래하고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는 일은 모두 실재적이고 삶에 꼭 필요하면서도 인간의 오감과 지성을 활용해야 하는 살아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소죽을 끓이고 먹이고 양 떼 소떼를 들판에 데리고 나가 돌보는 일은 모두 어린이의 일이었습니다.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혹한 노동과 피곤함이 더 문제였습니다. 


과거 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미래의 인재로 길러야 한다는 국가와 교육청의 목표 아래 아이들을 학교라는 시스템 아래 모아놓고 현장의 교사들과 어린이들은 서로를 힘들게 하며 씨름하고 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의 근대 공교육 발상은 당시로선 민중들과 가난한 집 어린이들에게 매우 혁명적인 일이었지만 그 결과가 예기치 않게 오늘날 학교 시스템의 문제, 학생 일탈의 문제, 관리 감독의 문제, 학교폭력과 괴롭힘 문제,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담교사와 학생지도 업무로 번지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업무의 업무가 꼬리를 이어 가중됩니다. 


빈둥의 목표 중 하나는 어린이 발달 과정의 "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았으면 이 어린이를 사랑하고 건강하게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서로를 응원하고 지켜주는 관계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시스템과 환경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낯설게 바라보면서 역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최근 인지 뇌과학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에 대해 새롭게 재발견되는 부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스리니 필레이라는 하버드정신과 의사가 쓴 <Thinker Dabble Doodle Try>라는 책이 국내 <멍 때리기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여러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놀이'가 뇌가 산만해지는 정도를 줄이는데 유용하다고 소개합니다. 한 신경과학자 논문에서 "학업 부진 학생 없애기"라는 교육 과정이 수학 쓰기 읽기 같은 기존의 엄격한 기능을 강조하면서 자연 발생적인 놀이를 희생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끼리 기력이 다할 때까지 놀이를 찾고 고안하고 즐기면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자신이 즐기는 놀이를 이리저리 첨벙 대고 실험하고 새로운 놀이를 계속 만들어내는 과정이 인지리듬 활성화에 유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뇌의 인지발달은 우리의 상식처럼 강도 높은 지식 훈련을 통해 발전하기보다 멍 때리는 등 뇌의 디폴트 모드(Default mode)에서 오히려 뇌의 신경이 창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사실 역사를 통해 보면 창의적인 발견을 한 과학자 예술가들은 이미 이 비밀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료 수집과 분석의 과정도 필요하지만 위대한 발견은 그러한 과도한 노력의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외의 순간 미끄러지면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주어진 자료들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첨벙 대고 끄적이고 뒤집어보는 과정... 이 과정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고 이것이 바로 놀이의 정신입니다. 



어린이들이 가혹한 시간 사용권으로부터 어린이들을 풀어주어야 할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 말했지만 사실 창의적 인재가 되기 위해 자유놀이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사실 개인적으론 반대합니다. 오히려 저는 현실주의자이고 현재주의자입니다. 인생이 쉽지 않은 것도 프리랜서 예술가로서 매우 잘 알고 있고 매번 치열한 경쟁을 통과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인생에서 그저 '존재'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어린이-청소년 시기가 유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재가 있는 그대로 환영받았던 경험은 그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합니다. 조건과 자격증명과 경력관리와 포트폴리오로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현대 사회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이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어렵고 쉽지 않기 때문에 좌절 속에서 바닥을 탁 치고 일어서는 탄성의 힘은 '따뜻한 환대'와 '행복한 기억'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존재로서 충분히 누리고 맘껏 놀 수 있는 시간이 제 생각에는 인생에 1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10년도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을 미래의 가혹함을 견디기 위해 미리 가혹하게 훈련한다는 발상은 마치 사조마히즘 같습니다. 복권에 희망을 걸며 매일매일 복권을 긁고 현재를 살지 않는 삶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려서부터 피나게 연습하는 천재 음악가 천재 스포츠 선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설사 어려서 바짝 훈련해서 남은 평생을 놀만한 돈을 번다해도 과연 그것으로 끝일까요? 조기은퇴에 성공한 천재들에게도 남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둥은 이번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놀 시간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놀 시간의 주도권은 절대적으로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더군다나 양평과 같은 전원지역은 차량이 아니고서는 모일만 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중교통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에 하루 혹은 2주에 하루 모여서 노는 날을 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른들의 시간도 분절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간조차도 확보하기 쉽지 않습니다. 주말마다 집안 일과 경조사에 밀린 살림에 밀린 과업에 사실 오롯이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부모에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7주간 워크숍 기간에 매주 토요일 시간을 내었고 이후에도 비 정기적으로 자발적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놀았습니다. 앞으로 빈둥이라는 놀이 장소가 모두에게 열린 안전한 놀이 장소가 되기 위해서 돌아가면서 관리 순번을 서는 활동가를 세우는 등 점진적으로 시스템과 체계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2) 빈둥의 과제 : 공간 마련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