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양육환경과 놀이실험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 보고서
정말 이사 오길 잘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3월부터 정착하고 첫째 아이는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1학년으로 취학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집 앞 논과 들에서 이웃집 누나와 함께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고 나와 아내는 어린 자녀가 3명인 부모 답지 않게 거실창 밖으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차 한잔을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정말 이사 오길 잘했다.
5월이 되자. 이장님이 우리 집 앞 논에 물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의 밤, 개구리는 미친 듯이 울었다. 처음에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점차 공명을 일으켜 수백수천수만 마리가 함께 울기 시작했다.
선선한 밤공기, 탁 트인 논밭, 구름을 머금은 달빛, 청명한 개구리의 공명 소리, 그리고 생에 처음으로 가지게 된 우리의 보금자리라는 안전한 느낌.. 나를 있는 그대로 탁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분위기에 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넷째가 태어났다.
조금 놀랐기도 했지만 우리는 안심했다. 우리의 새로운 안전한 보금자리에서라면 어떤 문제들이 다가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란 낙관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우리의 생물학적인 몸은 우리의 이성과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 아니 때때로가 아니라 자주 그런다.
나는 경제적 안정이 부족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일반론에 대해서 "몸"의 감각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몸"이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를 염두하지 않고서는 경제와 지표만으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인류는 짐승이 아니던가?
경제적 안정이 부족해도 몸의 감각이 차 오르면 우리 몸은 반응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짐승이나 동물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이성적이라고 폄훼하지만, 사실 우리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이는 해로운 짐승이 아니던가? 사실 결혼-가정문제의 모든 원인을 경제 문제만으로 환원할 수 없다. 내 자아와 내 몸과의 관계, 상대방의 몸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라는 보다 큰 공간의 껍질과 내 몸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피고 이들 사이에 상호 신뢰의 감각이 얼마나 충족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부부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때때로 서로 환멸을 느끼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서로감정을 극심하게 할퀴고 나면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은 닫히게 되어 있다.
인상적인 지표를 하나 읽었다. 서울 경기지역의 30대 소득과 지방도시의 30대 소득 차이와 출산율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지표를 뉴스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서울경기 지역의 평균 연봉이 지방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서울 경기지역에 집중해서 모여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출산율은 지방이 월등히 높았다. 집값이 싸고 상대적으로 낮은 인구밀도 잉여 공간,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치열한 공공재, 느슨한 감시, 읍내에서 아무 데나 주차하고 내려서 잠시 무언가를 구매하고 와도 되는 만만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지방에는 있다. 차 한번 잘못 주차하면 이웃 간 시비와 견인의 위협이 있고 이를 피하려면 시간당 만원이 넘는 주차료를 내야 하는 서울에서는 항상 어깨 위에 긴장감이 뭉쳐 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지만 개인이 돈으로 그 모든 공공재를 다 구매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아지면 어느 순간 자동차에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도시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동차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다른 이의 방해와 긴장의 위협 없이 누릴 수 있는 거리와 도시 공간을 통으로 구매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하면 어쩌면 1-2억 하는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나는 얻고 다른 하나를 잃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문제였다.
아내와 내가 지방으로 이사 간 것은 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잉여의 환경을 구매하기 위해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나는 얻고 다른 하나를 잃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문제였다. 나와 아내의 몸은 자동적으로 편안함을 느꼈고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에도 긴장하고 움츠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보니 우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다. 어릴 때 읽었던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넷째가 태어나고 2018년- 2019년 나는 바쁜 해를 보냈다. 예술사업 프로젝트에 초등학교 예술 강사 일에 전시 준비에, 시골 어머니를 위한 작은 별채를 건축하는 일에.. 일의 종류가 다양했고, 이쪽 업계 일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처음 시도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어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미안하게도 넷째가 신생아 때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집에 들어가도 위의 3세 친구 밥 해 먹이고 그 셋을 데리고 자는 것이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