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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Feb 01. 2021

시골아이 이야기- 디시디아의 살아내기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은 구분된다

  거실 창 위 천으로부터 매달려 있는 디시디아가 어느 날부터 시들해졌다. 흙과 같은 것에 뿌리를 의탁해야 하는 본성을 거슬러 그런 것인지 수분 보충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파가 휘몰아치던 날 환기를 시킨다고 열어놓은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칼바람에 직격 당한 것이 결정적 이유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같은 조건으로 다른 장소에 걸려 있는 걸이식 식물들이 생생한 걸로 미루어 한파에 무리해서 실행한 환기가 주원인이라고 짐작다.

창으로 스민 바람이 너무 차가왔을까. 올 겨울 한파 끝무렵 디시디아가 시들기 시작했다.


  거실 창 앞 죽어가는 디시디아의 잎은 아직 파랗지만 자세히 보 덖은 찻잎처럼 바스락 거렸고 잎보다 멀쩡해 보이는 줄기는 손대면 쉽게 부러졌다. 통통하게 물살이 올랐었던 본래의 잎과 줄기는 이제 일부에만 남아있었다. 나는 거실 바닥에 떨어진 잔해와 아직 몸체에 매달려 말라버린 줄기와 잎을 조심스레 챙겨서 발코니의 보충용 화분흙과 섞었다.


  이사 온 후 가장 먼저 천장에 매달려 거실 창의 일부를 푸르게 만들어주었던 녀석은 생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본래의 흙으로 돌아갔다.


안녕. 올봄에 다른 식물들의 좋은 양분으로 다시 태어나길.

디시디아와 함께 틸란드시아와 이오난사도 지난 여름내 거실창에 매달려 자라났다.




  걸이식 식물에는 계절에 따라 며칠 걸러 한 번씩 물을 흠뻑 준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면 아예 한 30여분을 물에 완전히 담가 놓기도 한다. 그것들은 그때 머금은 씨 수분을 유지하며 공기 중으로 수분을 내뱉고 빨아들이면서 어둡고 밝음의 정도에 따라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번갈아 호흡한다. 공중에 매달린 채 물과 빛으로 양분을 스스로 만들어 조금씩 자라나는 잎과 줄기를 보면 경탄스럽다.


  아파트 실내의 환경은 자연의 것과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그 나름 적응해 노지의 자연과 같이 자라난다. 이 식물들에겐 내 거실의 LED 등이 곧 태양이고 천장의 실링팬이 산들바람이다. 나름의 질서로 걸이식 식물들을 키워내는 이곳은 소우주고 손가락만으로 기구들의 스위치를 끄고 키며 빛과 바람을 조절하는 나는 조물주다.


  거실은 비록 자연의 그것처럼 완벽한 생태를 갖추지 못한 격리된 소우주지만 그 안의 생명들은 살아내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식물 줄기가 하나라도 벽을 만나면 실뿌리를 붙여보려고 애쓰다 어찌어찌 한 줄이 닿아 그걸 지지대 삼아 흡착하는 모습을 관찰하 날엔 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대로 든다. 이들은 강한 생명의 의지로 메마른 거실에 푸르름을 만들어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족한 환경과 힘겹게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어떠한 환경에 적응하고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는 생명절실하고 애절하다.

정기적으로 물에 담궈 수분을 흠뻑 머금은 녀석들. 물이 더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각자의 위치에 다시 걸린다.

  사막에서 나고 자고 생을 마치는 선인장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곧 말라죽고 만다. 선인장의 가장 큰 생존과제는 최대한 많은 수분을 몸 안에 모으고 기약 없는 비가 내릴 때까지 어떻게 그것을 간직하느냐는 것이다. 그 과제를 이행하지 못한 선인장에게는 사막의 냉정한 대답이 기다린다.


  사막의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은 선인장의 몸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막과 같아진다. 한낮의 기온이 영상 50도로 오르면 죽은 선인장의 몸체도 영상 50도로 오르고 다시 밤이 되어 영하로 기온이 곤두박질치면 선인장의 몸체도 영하의 온도가 된다. 열풍과 냉풍이 낮밤을 교대로 밀고 오면 내부에 한때 가득했던 수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람과 함께 빠져나간다. 사계절을 한 번씩 순환할 때마다 선인장의 몸체는 조금씩 사막으로 스며들어 모래흙의 일부분으로 돌아간다.


  살아있는 선인장은 죽어있는 선인장과는 다르다. 태고로부터 주어진 뾰족한 잎은 건조한 환경에서 수분을 지키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동시에 인장은 이것 전면 무기로 활용해 사막의 환경과 투쟁하며 포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뜨거운 모래밭에서 수많은 날을 버텨야 하기에 좌우로 뻗어가야 하는 뿌리는 사치다. 선인장은 메마른 모래벌판 가운데에 서서 그늘도 없이 뜨거운 해를 머리 위에 이고 우뚝 서 있다. 그렇게 사막에 홀로 남아 다음 비가 올 때까지 고독하고 강인하게 버텨야 한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구별은 자기가 속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사는 것의 의지는 곧 주어진 환경을 이기고자 하는 투쟁이며 생명은 그 선상에 위태롭게 줄타기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디시디아는 본래 열대지방에서 유래한다. 유목 혹은 목질이 많은 흙에서 성글게 자라나거나 다른 성체의 나무에 붙어서 자라는 착생식물이다. 사람은 이것을 관상용으로 량해 걸이식 식물로 만들어 았다.


  하지인간의 손으로 빚은 개량은 본래의 성질까지 바꾸지는 못. 량 후에도 디시디아는 밝은 곳을 좋아하며 열대지방 출신답게 추위에 약도가 높아야 건강하게 자라난다.

 

  내 거실의 디시디아는 어떠한가. 그들이 매달려 살아내는 내 거실의 환경은 유래한 곳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온대기후 겨울의 아파트 실내 환경은 가혹하다. 턱없이 부족한 일조량난방과 환기에 따라 수시로 오르내리는 온도와 습도를 버텨내야 한다. 내 거실 소우주 속에서 디시디아는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올 겨울을 용케 버틴 디시디아들은 아직 푸르게 자라주고 있다. 그들은 죽은 것과는 다르게 잎이 통통하고 줄기는 생명력이 있다. 일주일 전에 함께 물에 담가 뒀던 죽어가던 디시디아는 이제 완전히 말라버려 가벼워졌지만 같은 크기의 살아있는 디시디아는 공기 중 수분을 흠뻑 머금어 무겁게 매달려있다. 죽은 디시디아 몸체의 온도와 수분은 거실의 온도와 습도와 같이 오르내다.




  죽은 디시디아를 흙과 섞으려 천장에서 내렸다. 몸을 의탁한 코코아나무 줄기와 분리하려는데 두세 개의 잎이 빼꼼하게 아직 푸르다는 것을 알려왔다. 다시 살아내고 있었다. 물을 흠뻑 준 후 거실 창 앞 천장에 다시 걸었다.


  빛을 충분히 쬐어주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며 수을 가까이해줘야 한다. 거실 소우주의 조물주인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나머지 생존의 몫은 개별적이다.


  동지가 지난 이후 입춘이 다가올수록 해가 거실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오고 있다.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나와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다.

녹색 잎이 다시 자라난 디시디아를 거실 창 앞에 다시 매달았다. 봄이 오면 푸르게 자라나길.


다시 조물주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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