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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Mar 04. 2021

일터 이야기 - 운수 좋은 날

카메라 밖 히스토리는 뉴스에 나가지 않는다

  지난 한 주 우리 부서는 시끄럽고 조용했다. 기본을 지키지 못한 탓이었다. 그 대가는 썼다. 긴박한 정치일정에 짬을  내어 행정부 서열 2위의 인터뷰를 만들어내고자 정치부는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이다. 분단위로 쪼개는 총리의 일정과 일정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인터뷰 실행은 성공적이었으나 영상은 실패했다. 국무총리 원샷을 찍은 카메라 영상의 퀄리티가 문제가 됐다. 쉬이 생각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정도의 실책이었지만 누군가가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 일이었고 누군가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도 영상은 방송뉴스의 밑재료로 리포트의 퀄리티를 원초적으로 떠받친다. 영상기자들은 방송뉴스 메커니즘의 최일선 유닛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국무총리 인터뷰의 영상은 결과적으로 뉴스의 질을 떨어뜨렸다. 정치부장은 영상취재 부서장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문제는 보도본부장을 타고 전무로 다시 그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간 폭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문제는 다시 자회사 대표에게 내려왔고 사무실에 남아있는 이들은 부서장이 붉어진 얼굴로 대표이사실과 보도본부장실을 바쁘게 오가는 걸 책상에 머리를 박고 조용히 지켜봤다. 곧 소집된 긴급 부서회의에서 우리는 부서장과 데스크의 엄중한 질책을 달게 받았다. 기본을 지키자. 올바른 과정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 구성원들은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로 반성의 시간을 갈무리했다.




  3월의 첫 출근 날. 한주의 밥벌이로 국회 라이브를 지시받았다. 국회 라이브는 낮 뉴스 시간대의 생중계 리포트와 국회에 상시 출입하는 영상기자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국회 내외부 취재거리를 소화하는 임무를 통칭한다. 한주 단위로 데스크가 임의로 한 명을 지정하면 본사에서 국회로 매일 파견돼 그날그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국회 라이브는 정치 현안이 쌓인 시기에는 업무량도 많을뿐더러 낮 뉴스 시간에 생중계를 해야 하기에 드물지 않게 실수를 할 수 있어 기본을 충실히 지키지 못하면 방송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자리다. 며칠 전 부서 사건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삼일절 연휴와 숙직대휴로 4일을 쉬었더니 마음은 14박 15일 정기 휴가를 마치고 위병소를 막 통과한 일병과 같았다. 오늘 처음 장착한 대용량 생중계용 신형 배터리 덕에 묵직해진 ENG 카메라의 무게감이 낯설다. 기본만 잘 지키면 별 문제없을 것이다.


  큐시트를 살펴보니 생중계 예정시간은 12시 09분. 회사에서 국회 본관 후문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25분이다. 이동과 생중계 준비시간, 그리고 혹시 내가 허둥댈지도 모를 시간까지 감안해 10시 40분 출발로 배차했다. 국회를 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비 실장과 노동조합 보직으로 3년여를 거의 사내에서 보냈더니 다니는 취재 장소마다 이등병이 된 기분이다. 세상은 어디든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모를 땐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자만은 천천히 스미는 독과 같다. 바로 전 주 국회 라이브를 했던 후배에게 국회 본관에 출입하는 방법부터 생중계 매뉴얼과 유의사항까지 빠짐없이 인계받숙지하고 오디오맨과 장비를 챙긴 후 사무실을 나섰다.


  취재차는 배차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마음이 살짝 급해졌지만 너무 티를 내면 형님(취재차 운전기사를 형님으로 통칭한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속으로 묵혔다. 일찍 출발했으므로 5분 정도 허비하는 것은 크게 상관없기도 했다. 그런데 광화문 사거리가 평소 이 시간대와 다르게 혼잡했다. 광화문 광장 공사 때문이다. 우리 차는 바뀐 교통체계로 허둥대다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서대문 사거리로 빠져야 할 경로를 지나쳤다. 이젠 광화문 삼거리까지 가서 유턴해야 한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화문 삼거리에 이르는 길은 공사자재와 차량으로 뒤섞여 틈이 보이지 않았다. 꼼짝없이 정체된 흐름에 차를 맡겨야 했다. 취재차가 정체를 뚫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경로를 잡은 시각은 11시 부근이었다. 회사에서 횡단보도 한번 건너면 되는 길을 차로 20분 걸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형님도 미안했는지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며 민첩하게 달렸다. 서강대교 아래를  흐르는 한강은 경칩을 앞둔 봄비를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형님의 운전실력 덕에 재차는 순탄하게 달려 약 20여분 후 국회 본관 후문에 도착했다. 장비를 빠짐없이 내린 후 오디오맨과 나눠 짊어졌다. 검색대를 통과해 방문증을 작성하고 출입증 교환 담당자에게 내밀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25분이었다. 국회로 오는 차 안에서 부조와 사전 테스트를 하기로 약속한 시간은 11시 40분. 15분 정도 남았으므로 정상적으로 들어가 준비만 한다면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히지만 나와 오디오맨의 신분증을 국회 출입관리 담당자가 갖고 있는 출입허가 명단과 대조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회사에서는 이미 출입명단을 보냈을 것이다. 국회 출입관리 시스템은 까다로워서 낯설다.


  시련의 시간을 견뎌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깊어졌다. 하지만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경찰은 통제 수준을 높이고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정부기관은 보안 수준을 높인다. 집회는 신고한 내용대로만 가능하고 국회는 취재진이 점점 더 들어가기 복잡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 담당자는 내 출입증은 내어주었지만 오디오맨은 중계업무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연휴 때 지은 죄가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술을 많이 먹어서 안주인님에게 심려를 끼친 죄가 생각이 났다. 힘들지만 혼자 중계를 하며 반성하라는 계시 같았다. 내 탓이었다. 나는 오디오맨을 차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한 후 트라이포드 카메라와 부속 가방과 중계장비를 목에 걸고 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출입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어디에서나 구원의 손길은 나타난다. 중간에 취재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던 후배가 홀연히 나타나 장비 이동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늦겨울 땀 꽤나 흘렸을 것이다. 시간은 11시 35분이었다.


  3층 로텐더홀에 도착했다. 구 의원식당 앞 계단에서 본회의장 방향으로 중계 위치를 잡았다. 본회의 없는 로텐더홀은 한산하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오디오맨 없이 혼자 트라이포드를 놓고 카메라를 얹고 중계장비를 연결했다. 외로웠다. 영상기자에게 오디오맨은 취재 보조 이상의 존재다. 센스 있는 오디오맨과 함께 하는 일정은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하지만 난 심리적 안정감을 갖지 못했다. 시간도 촉박하고 오디오맨도 없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 상황마다 부르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흥얼거렸다. '하지만 침착해야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야. 서두르면 망처 버릴 테니까.'


  MNG(Mobile News Gathering) 장비를 카메라에 연결하고 회사 서버와 테스트를 마치고 부조와 오디오 테스트를 끝내니 11시 52분이었다. MNG는 쓸 때마다 경이롭다. 위성을 이용한 SNG(Satellite News Gathering) 시스템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인력과 비용으로 동등 이상의 퀄리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방송산업혁명이다. 하지만 혁명의 과실에서 노동자의 몫은 없다. 단지 해당 산업의 부속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그 과실은 누가 다 먹었을까.


  회사에서 출발 전 오늘 국회 라이브 가면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었다. '설마 취재차가 늦거나 사고 나는거 아냐?' '국회 등록 안 돼있어서 출입이 안 되겠어?' '카메라가 안 켜지거나 취재기자 늦게 와서 생중계 펑크 나는 상황이 오겠어?' '생중계하는데 누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들어오면 발로 차야겠다.' 눈앞에 닥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바닥까지 미리 상상해 보는 건 내 오래된 습관이다. 최악을 미리 염두에 두면 이후 닥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마음가짐 다. 오늘도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 중 두 가지가 실제로 일어났지만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종종 내가 생각한 바닥이 바닥이 아닐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혼자 흰 종이를 로텐더홀 바닥에 놓고 화이트발란스를 보기 위해 조명을 켰다. 헐. 조명이 안 켜진다. 회사에서 테스트할 때는 분명 켜졌는데 이 무슨 요정의 장난인가. 최근 살을 많이 빼서 땀이 잘 안나는 체질로 바뀌는가 했는데 오늘은 이마에 송골송골 낯익은 것들이 올라온다. 머릿속에는 데스크에게 깨지고 팀장에게 깨지고 나아가 징계위원회에 불려 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모습이 예언처럼 떠올랐다. 그래선 안된다. 머리를 흔들어 예언을 지우고 대처방안을 생각했다. 그래. 로텐더홀 천장 조명을 이용하자. 중계를 탈 취재기자의 얼굴에 그늘만 지지 않게 조명이 떨어지는 곳으로 혼자 낑낑대며 장비들을 이동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은 12시를 막 넘었다. 이제 라이브까지 9분 남았다.


  부조에서 TRS전화기와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TRS는 취재기자가 방송용으로 내 휴대폰은 만약을 대비해 부조와 커뮤니케이션 백업용으로 쓴다. 그런데 아직 취재기자가 오지 않았다. "취재기자가 아직 안 와서요. 일단 끊어주실래요. 제가 취재기자한테 전화해볼 테니까 다시 전화 주세요." 휴대폰 전화를 끊고 오늘 중계를 탈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선배. 헉헉. 지금 가고 있어요." 숨찬 목소리가 휴대폰 속에서 뛰고 있었다. 데스킹이 늦으면 이럴 경우가 있다. 고생해서 오고 있는데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조심해서 천천히 빨리 와." 기자실과 국회 본회의장은 다른 건물이다. 직선거리 200여 미터. 건물 드나드는 시간과 자투리 거리를 포함하면 10여분 걸리는 시공간 차다. 의지대로 웜홀을 만들어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자는 인간세를 넘어 우주의 역사를 바꿀 것이다. 방송 6분 전 취재기자가 도착했다.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이다." "선배 혼자 오셨어요? 오디오맨은?" "어... 출입명단 때문에 뭐 그렇게 됐어."


  마음이 급했다. 중계차가 출동하면 5명이 해야 할 일을 나 혼다 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판단을 한다. 화이트발란스도 다시 봐야 했고 조명 없이 얼굴 톤에 문제가 없는지도 봐야 하고 TRS와 연결된 인이어 폰도 채워주고 와이어리스 마이크도 채워주고 배경도 봐야 하고 취재기자가 서 있는 위치도 봐야 한다. 피사체가 등장한 이후 손봐야 할 것들은 등장 전 예비동작보다 더 많다. 오디오맨의 빈자리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더 절실하게 실감 났다. 부조에서는 곧 광고가 끝나고 본방송이 시작된다고 알려왔다. 마지막으로 MNG장비의 전송상태를 확인했다. 이상 무. 뉴스 첫 리포트 앵커멘트가 전파를 탈 때 난 비로소 모든 준비를 마쳤다. 다행이다. 바로 다음이 우리 중계 순서다. 방송 2분 전.


  앞선 리포트가 절반쯤 돌았을 때 취재기자에게 1분쯤 남은 것 같다고 전해 줬다. 그녀도 TRS와 연결된 인이어 폰으로 들어 상황을 알고 있을 테지만 서로 확인하고 있는 게 사고 예방을 위해 좋다. 그런데 아뿔싸. 인이어 폰의 선이 기도 비닉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자의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그 선은 나에게 이제 오늘의 운이 다 했음을 알려오는 신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방송까지는 약 40여 초 남은 듯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목표물을 포착한 송골매처럼 취재기자 뒤편으로 날아 인이어 폰 선을 그녀의 긴 머리칼 속으로 집어넣어 감춘 후 카메라로 돌아왔다. 뷰파인더 속 취재기자 어깨 위가 깨끗해졌다. 부조에서 알려왔다. "앵커멘트 들어갔습니다. 스탠바이." 곧 뉴스 온에어는 국회 생중계로 넘어왔고 카메라로 프레이밍 된 우리 리포트는 사고 없이 전파를 탔다. 카메라 바깥의 히스토리는 뉴스에 나가지 않는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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