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이야기 - 첫 차
누구는 삶의 하루를 열고 누구는 혹한의 시간을 견딘다
우리 부서는 조근이라는 근무 형태가 있다. 출근은 06시까지. 서울에 사는 선후배들이야 대중교통을 타도 충분히 도착할 시간이지만 서울의 무자비한 주거비를 피해 경기도에 정착한 나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보통 때의 출근 방법은 정해져 있다. 05시 10분 언저리의 전철 첫차를 타면 정해진 출근 시각보다 20분 정도 늦는다. 이 정도 이른 새벽시간대에는 서울 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도 없다. 자가운전은 광화문 도심의 주차비와 기름 값, 퇴근시간대 혼잡비용을 생각하면 일단 제외. 택시를 타면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 전액 지원해 주지 않으므로 비상상황 아니고서는 패스. 그래서 보통은 당직근무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전철 첫차를 타고 20분 늦게 출근한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것은 참 두렵다.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10여분 남짓 걸리지만 새벽 날씨는 아침보다 더 쌀쌀해 체감보다 훨씬 멀고 길게 느껴진다. 피곤한 육체와 빈궁한 마음까지 더하면 걸어가는 두 볼에 닿는 공기의 흐름은 지구에서 가장 춥다는 시베리아 오이먀콘의 새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05시 13분 얼어붙은 레일을 미끄러지듯 광운대행 첫차가 들어온다. 유리창에는 벌써 수증기가 맺혀있다. 나는 익숙하게 승차위치 2-3 부근으로부터 객실 내로 들어서 좌우를 살피며 뭔가를 찾는다. 오늘도 역시 첫차를 타면 늘 만나는 그녀가 있다. 그녀의 몸은 추위에 잔뜩 언 듯 힘껏 움츠려 있었다.
나이는 50대 이상으로 추정.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은 절반씩 섞여 있으나 단정하게 묶여 있고 외투에 붙은 모자는 머리에 푹 씌워져 있다. 본래는 가냘플 것 같지만 피부에서부터 공기와 닿는 바깥까지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 뚱뚱해진 외양. 25년 전 고등학교 시절 유행했던 것과 비슷한 백팩을 등에 멘 채 그녀는 문간 자리에 쓰러지듯 앉아 있다. 그리고 하나의 크기가 가로세로 50센티는 되어 보이는 그녀의 전 재산일 것 같은 여섯 개의 비닐봉지가 그 앞에 단정하게 놓여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계시는구나. 날이 상당히 추운데 어디서 주무신 건지.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은 어디서 내리실 건지. 참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많은데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아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또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있다.
첫차를 타보면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 놀라게 된다. 하루와 하루를 잇기 위해 일찍 출근해야 하거나 세상이 깨어나기 전 몰래 어디로 바쁘게 가야 하는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가장 이른 대중교통수단이라 그럴까. 나처럼 그들도 이것밖에 다른 선택권이 없다.
예전 첫차를 취재했던 적이 있다. 첫차의 주요 승객은 건물이나 기업의 청소노동자, 일용직, 전날 밤새워 일하고 퇴근하는 사람, 아니면 나처럼 출근시간이 공연히 빠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밤새 유흥을 즐기다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서민 전철인 1호선 경기남부 상행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마저도 코로나 시대 이후로는 거의 없다.
첫차는 새벽의 첫 어둠을 상향등과 철로에 의지해 가른다. 그리고 정해진 역을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제각기 다른 형태를 가진 삶의 하루를 내려놓는다. 빡빡한 이 공간엔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노숙이라는 삶의 한 형태로 살아가는 그녀는 여기 들어와 다른 승객들과 함께 앉아 있다.
전철이 추위를 이기며 안양역을 지나고 석수역을 통과해 서울의 가장자리로 들어서는 내내 그녀의 고개는 두꺼운 옷섶과 모자에 파묻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 슬쩍슬쩍 보이는 몸은 점차 추위를 이겨냈다. 회색의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빨갛게 얼어있던 두 볼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장갑 없이 여섯 개의 비닐봉지를 나누어 들었을 핏기 없이 얼어있던 두 손의 손가락을 그녀는 조금씩 움직이며 녹였다. 그녀는 가끔은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셔 전철 안의 온기를 겹겹의 옷 속으로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개는 옷섶과 모자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느 날이었다면 전철이 구로고가를 지날 때 그녀는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손에 비닐봉지 3개씩을 꽉 쥔 후 백팩을 메고 고개는 숙인 채 영등포역에서 내리거나 때로는 용산역에서 내리고 아주 가끔은 서울역에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전철이 한강철교를 지날 때 까지도 내릴 기척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새벽 대기온도는 수은주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에 육박했다. 전철 안의 삼사십 분이 추위에 언 몸을 추스리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을까. 용산역을 지날 때쯤 돼서야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덜 녹은 듯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두 정거장을 더 가 서울역에서 내렸다.
한 달쯤 전 추위와 코로나 3차 유행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야근을 마치고 시청역에서 병점행 막차를 기다리다 그녀를 만났다. 다른 날들과 같이 회색 머리칼에 백팩, 비닐봉지 6개를 힘주어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승차위치 8-2번쯤에서 그녀와 나는 함께 탔다. 여기까지는 자주 있었던 일이다. 그날이 다른 날과 달랐던 부분은 내가 잠이 들어 원래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쳐 수원역을 목전에 두고 눈을 떴다는 것이다. 놀라 헐레벌떡 일어난 내 눈 앞에는 여전히 그녀가 앉아 있었고 그녀는 차분히 내릴 준비를 했다. 얼마 후 우리는 수원역에서 함께 내렸다.
늘 궁금하던 그녀의 막차 목적지는 우연하게 알아냈지만 공연한 호기심이 더 생긴 나는 그녀가 그 짐을 들고 어디로 가는지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녀는 승강장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간 후 전철이 아닌 코레일 기차 대합실로 갔다. 코레일 기차 대합실에는 사람이 길게 누울 수 없도록 중간에 팔걸이를 만들어 놓은 다인용 의자가 많이 깔려 있다. 그녀는 그곳 중 한 의자에 짐을 풀고 비로소 앉았지만 팔걸이 때문에 눕지 못했다. 그마저도 곧 역 직원에 의해 밖으로 내쫓겼고 그녀는 짐을 들고 수원역 지하보도 방향으로 갔다. 아마 그곳에서 누울 곳을 찾았거나 역 앞에서 다른 노숙인들처럼 풍찬노숙을 했을 것이다.
그날 본 것을 토대로 그녀의 밤과 새벽을 예측해 보면 그녀는 막차를 타고 서울에서 수원 등 지방으로 내려가 밤을 보낸 후 첫차가 다닐 시간에 다시 역으로 돌아와 서울행 1호선 전철을 탄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역 관계자들이 야간에 역사 내 노숙인들을 퇴거시키면서 그들은 역 밖으로 나왔다. 노숙인들의 일부는 쉼터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변 대합실 의자나 맨바닥, 지하보도의 구석과 기둥 사이사이를 차지해 밤을 이기고 낮을 지낸다. 밤의 공기는 대부분 견딜 만한 것이지만 노숙에 익숙한 그들도 버티기 어려운 것은 혹한의 날씨다. 그래서 일부 노숙인들은 추위가 겹겹의 옷을 하나씩 침투해 오는 무자비한 어둠의 시작과 끝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막차를 타고 다시 첫차를 탄다.
그녀가 막차에서 내리고 다시 첫차를 탈 때까지 걸린 5시간 남짓 어둠의 시간. 그날 첫차는 그 고난을 견딘 보상처럼 추위를 이긴 새벽을 가르고 그녀에게 왔다.
다시 하루의 시작이다. 나의 첫차가 어둠을 가르며 추위를 이기고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늘도 여전한 혹한의 밤을 견딘 그녀도 첫차에 타 있을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