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당대회 대표 출마를 놓고 수렁에 빠져 있다. 집권여당이 대통령 임기 도중 역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면 공당인 국민의힘은 지금쯤 그 패배의 원인을 두고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오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패장’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시 당 대표에 출마할지 말지 그 여부를 두고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국민의힘은 참패의 주원인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주에 대한 개선책과 대안 마련, 총선 때 내놓은 아젠다의 적절성 여부 등을 따지는 것과 함께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갈수록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보수정당의 새로운 길 모색으로 국민들에게 뉴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모습은 한동훈 한 개인의 ‘컴백’ 여부에 매몰돼 있는 한심한 정국을 노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총선 참패 뒤 당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며 ‘립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특검법 등의 대응 방식을 보면 여전히 위선적이고 독단적인 국정운영 행태를 못 버리고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특검법 수용 등의 선제적인 총선 참패 출구전략을 마련했다면 국민의힘의 수습 방안도 지금과 같은 한동훈 출마 논란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보수정당의 체질 개선이나 새로운 당 대표 주자 옹립과 세대교체 등 폭넓은 쇄신책이 논의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이 현재의 지리멸렬하고 무능한 국민의힘을 만든 장본임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총선을 이끈 주체는 엄연히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물론 총선 패배의 원인을 두고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책임론이 한 전 위원장을 압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22대 총선이 집권여당의 유례없는 참패로 귀결되었다면 그 선거의 ‘수장’에게도 당연히 책임있는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정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 완결성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 전 위원장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전당대회 대표 출마 ‘간보기’ 행태는 여전히 총선 참패의 참뜻을 무시하는 수준 이하의 어리석은 처신이다.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권을 도모할 마음이 있다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기성찰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노무현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부산 출마 강행이 정치인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지난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한동훈 전 위원장도 대권에 욕심이 있다면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 그 지난한 과정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한동훈의 자기성찰은 총선 참패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 물리적 시간은 끝이 났고 그의 당권 도전 선언은 이제 시간문제가 돼버렸다.
한동훈은 단군 이래 ‘출세’에 관한 한 가장 특혜를 많이 받은 초고속 단기성장 정치인의 전형적인 예다. ‘일개’ 검사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튀어오른 것은 공무원의 ‘능력’이었다 치더라도 곧바로 집권여당의 ‘대표’로까지 점프업을 한 것은 대통령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대권주자였거나 지금의 정치인 가운데 한동훈만큼 단기속성과정으로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던 사람이 있었던가.
이런 점에서 한동훈은 자신의 정치적 자질과 리더십 능력을 끊임없이 ‘셀프 검증’해 나가야만 한다. 그동안 속성으로 공식만 외운 대권방정식에 대해 이제는 철저한 풀이와 해설을 덧붙여 한동훈 자신이 대통령 감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연예인 병’에 걸린 사람은 쉽게 그 단맛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총선 때 ‘셀카 놀이’에 빠졌던 한동훈은 그 단맛을 잊지 못하고 금단증상을 보여 동네 도서관에 ‘출몰’하며 그것을 잠시 해소했다. 그리고 역대 선거 궤멸적 참패의 패장이 또 다시 당 대표에 출마하려는 조급증은 ‘셀카 놀이’가 여전히 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증이다.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막장의 진영대결로만 치닫게 된 주 원인 중 하나는 패자의 결과에 대한 승복과 책임의식의 부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깨끗하게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거나 최소한의 자기성찰 과정을 보여준 정치인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지난 패배는 깡그리 무시하고 뻔뻔스럽게 다시 ‘투전판’에 판돈을 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한동훈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용산 눈치를 이리저리 보다가 결과적으로 선거를 ‘말아먹고’ 말았다. 한동훈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대책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그것을 덥석 물었던 것은, 최소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이끌 만한 복안이나 ‘배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의 변화와 가족문제에 대한 명확한 처리 없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면 한동훈 또한 윤 대통령 독단정치와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정면승부를 벌였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은 선거 과정 내내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써내지 ‘않았고’ 아웃복싱으로 변죽만 울리다 참패를 자초했다. 한동훈이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가족문제의 담대한 처리를 놓고 정면으로 대결을 벌였다면 국민들은 그의 보수정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인정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선거판에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지지 않고 내내 몸을 사리다가 대참패를 당하고 이제야 뒤늦게 윤 대통령에 맞서며 대권주자의 입지를 쌓으려는 것은 기회주의적이고 비겁한 행태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초단기로 최고 권좌에 오른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한 한동훈은 자신도 그 로또를 쥘 수 있을 것으로, 그렇게 정치를 만만하게 보고 날로 먹으려는 것이 이번 전당대회 대표 도전의 실상이다. 지난 총선 때의 한동훈 ‘퍼포먼스’를 보면 그는 초선 의원 정도의 정무적 인식도 가지지 못한 무능의 전형인 것이 드러났다.
한동훈 하면 ‘동료시민’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인터넷에서 본 그럴 듯한 경구나 글 재료들을 통해 생각해낸 듯한 ‘동료시민’을 계속 미는 것도 의아하다. 한동훈의 검사 인생에서 체화되지 못하고 ‘어디서 하나 써먹어야지’ 하는 수준의 술자리 안줏거리 정도의 희한한 신조어를 마치 한동훈 정치철학의 정수인양 자랑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사회적 약자와 ‘상식 있는’ 국민들에 대한 애정을 ‘동료시민’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들의 실존적 삶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하고 말로만 ‘고통’을 공감하는 척하는 ‘강남 엘리트’의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이처럼 한동훈은 정치인의 가장 기본적 자질인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총선 패배 뒤 잠행하며 잠시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가 뜬금없이 동네 도서관에 나타나 책 읽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너무도 속이 뻔히 내다보이는 유치한 ‘자작 홍보’였다. 가볍게 읽는 SF 소설을 굳이 동네 도서관에서 폼 잡으며 읽어 보이는 이유를 국민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한동훈은 지난 총선 때 자신의 직을 걸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수정당의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희생과 양보를 이끌어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끝까지 자리에 연연하며 이도 저도 아닌 ‘무대책’으로 대참패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저도 가끔 해외직구를 한다”며 정부의 KC미인증 직구 제한 추진 방안을 비판하며 윤 대통령과 맞서는 뒷북을 치고 있다.
한동훈이 지금 결행해야 하는 것은 어설픈 정치철학으로 보수정당의 대표 자리에 목을 맬 게 아니라 조직을 이끌 만한 리더십과 능력이 있는지를 국민속으로 들어가 먼저 증명해내는 것이다. 한동훈의 대권수업 단기과외는 총선 폭망으로 그 수업료가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