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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Jun 27. 2024

신의도 잃고 반성도 없는 한동훈의 대표 출마

6월 23일 국회에서 당대표 출마선언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출마는 현재 보수정당이 처해 있는 궤멸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집권 중 여당이 선거에 참패한 사상초유의 결과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또한 집권여당 대표직에 도전하는 인물이 현직 대통령과 척을 지고 선거에 임하는 유례없는 상황도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이 꽂은 인물이 여당 대표로 낙점된 것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용산 대통령실이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을 급히 내세워 ‘반윤’(반 윤석열) 후보인 한 전 위원장의 당선을 저지하려는 웃지못할 코미디를 연출할 정도로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하고 권력의 연속성도 없는 보수정당은 일찍이 없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선거 출마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가 집권여당의 ‘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다가 192대108이라는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참패를 초래한 인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힘은 4월 총선에서 대패한 뒤 아직 백서도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아직도 집권 3년차의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그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백서는 당연히 정상적으로 나올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진영에서 국민의힘으로 갈아타 용케 재선에 성공한 조정훈 총선백서특위 위원장이 ‘소신껏’ 백서를 낼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7월 전당대회는 백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당이 집권 도중 사상초유의 궤멸을 당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원인 분석과 쇄신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론의 ‘중핵’에 있는 한동훈이 당선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면서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허망하게 날릴 판이다.      


역대 유례없는 여당의 참패 책임자인 한동훈은 불과 2달 만에 다시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대선출마라도 하려는 듯 무려 30분 동안 일장 연설을 하며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작금의 정치판이 아무리 ‘하루라도 국민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권력에서 멀어진다’는 어처구니없는 통설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해도 한동훈의 출마는 책임도 반성도 없는 한 편의 권력 획득 막장드라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6월 26일 대구시 산격청사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의 판세대로라면 한동훈의 당 대표 당선이 유력하다. 이를 또 기막히게 꿰뚫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거 패장의 뻔뻔한 재등극에 그 어떤 문제의식도 던지지 못하고 슬그머니 줄서기 행렬에 끼어들고 있다. 한때 ‘홍준표 라인’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충성하는 듯 보였던 배현진 의원이 잽싸게 한동훈 줄로 ‘새치기’ 한 것은 현재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회주의적인 권력욕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     

 

일찍이 정치판에서 신의를 상실한 대권주자가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고루한 ‘공자’ 이야기를 꺼내 멋쩍기는 하지만 공자는 국방(足兵)과 양식(足食)과 신의(民信)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믿을 신’자를 골랐다(논어 안언편). 공자는 “죽음이야 누구든 면할 수 없지만, 국민으로부터 신뢰감을 상실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곡기를 끊어 죽음에 이를지언정 국민들의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이것이 곧 민심의 요체이자 본질이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을 ‘배신’한 한동훈이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일찍이 신의를 저버린 유명한 대권주자가 있었다. 바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그는 감사원장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운 좋게 정치판에 픽업됐다. 남들은 수십년을 정치판에서 뼈를 갈아도 도달하지 못할 자리를 그는 YS의 낙점으로 ‘단숨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장관과 여당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꿰찬 한동훈과 ‘오버랩’된다.      

이회창 한동훈 모두 ‘법 공부는 정청래보다 잘했던’ 서울법대 출신에다 엘리트들이다. 그 좋은 머리로 권력의 지름길도 누구보다 빨리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회창은 끝낸 주군의 등에 칼을 꽂았고 그 피의 동력으로 보수정당에서 2번 연속 대권주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누구의 은덕인지는 자신들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주군의 ‘은혜’를 자신들이 잘 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고 그것이 곧 정치판의 실력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회창은 김영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고 한동훈은 윤석열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이회창은 대선 재수에 삼수까지 했지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신의를 저버린 정치인을 국민들은 말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품고 기억하고 있다. 왜 공자가 먹는 것보다 신의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지 이회창의 대권 도전사를 보면 알 것도 같다. 물론 한동훈이 요행으로 이회창의 실패 궤도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 때의 민심이 지금은 변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2024년 1월 2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을 찾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 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의 출마는 보수정당의 몰락을 앞당기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윤석열-한동훈으로 이어지는 검찰 권력의 여당 접수는 보수층의 인재들을 더 멀리 밀쳐내 ‘초야’에 묻히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갈수록 보수정당의 양식 있는 정치 자원은 씨가 말라갈 것이고 그런 인적 네트워크의 부재는 당을 더욱 1인 독점 정당으로 내몰고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검사 출신이 또 다시 보수정당의 당 대표가 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가 당 대표가 돼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면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또 다시 검사 출신이 보수정당의 권력자가 된다.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지만 현재의 한국 ‘검찰 권력’ 시스템과 그들의 유려한 ‘정치 스킬’, 권력 메커니즘 이해도 등을 볼 때 검사 출신의 대권 도전은 출발선에서부터 공정하지 않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특수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치인 되기 도상훈련을 수없이 실시했다. 정치인의 속성과 권력의 노루목이 어디에 있는지 권력층 수사를 하면서(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었고) 끊임없이 습득했고 외웠을 것이다. 정치인이 정당하게 가져야 할 정보 및 인적 자산을 검찰의 정보력과 막강한 ‘기소 파워’로 선취한 뒤 그것을 정치에 악 이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런 막강한 ‘법조-검찰 파워’로 윤석열은 대통령이 됐지만, 검사의 ‘찍어 누르기 습성’ 때문에 정치를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가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검사 출신이 보수정당의 대표가 되고 그 동력으로 대권까지 도전하려는 것은 정치에 대한 해악이자 공정한 승부의 룰에도 어긋난다.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재임 때의 ‘치적’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한국 정치에 어떤 긍정적 헌신을 했는지 국민들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국민들 뇌리에 뚜렷이 각인한 거라곤 ‘셀카 쇼’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국정 야당 민주당의 대표 이재명과 그 주류들을 ‘운동권 출신’ 운운하며 끊임없이 적대적인 대결 구도로만 몰고 갔다. ‘내가 정치판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할 것이며 그것이 이 시대에 어떤 효용성과 공익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는 진지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동료시민’으로 대표되는 공허한 말장난이 한동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이상 그에게는 대권주자의 자질이 없다.     


2023년 12월 29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예방하기 위해 당 대표실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떤 정치평론가는 한동훈이 이번 당 대표 출마선언문을 보면서 꼼꼼하게 준비한 티가 난다며 호평을 한 바 있다. 해병대 채상병 특검에 대해 ‘조건부 찬성’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례적인 칭찬을 했다. 또한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 때는 민주당에 대한 적개심 표출로 도배가 됐는데 이번 선언문에는 자기반성과 성찰 등이 담긴 ‘한동훈의 이야기’를 해서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총선 참패에 대한 자기반성이 당 대표 출마선언문 몇 자에 녹아있는 정도라면 그것이 진정 진심이 담긴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은 물리적 시간과 진정한 참회를 몸소 실천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동훈이 총선 참패 2달 만에 다시 당 대표 선거판에 뛰어든 것은 그런 자기반성과 성찰과는 거리가 완전히 멀다.      


이회창도 첫 번째 대선 패배 뒤 그 어떤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예의 ‘제왕적 대권주자’로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이회창은 1997년 대선에서 39만 표 차이로 패배 후 정계은퇴 선언 없이 잠시 물러나 있다가 8개월 만에 조순 체제를 무너뜨리고 당 총재로 복귀했다.      


잠시 한눈팔면 금세 경쟁자가 와서 그 알량한 당권이라도 날름 먹어치우는 정치판의 권력 속성을 머리 좋은 이회창이 몰랐을 리 없다. 똑똑한 한동훈도 이회창이 그랬던 것처럼 참패 반성과 성찰은 안중에도 없고 ‘묻지마 복귀’부터 했다. 한동훈이 좀 더 얼굴이 두꺼운 건지 이회창이 8개월 걸린 당권 재탈환을 한동훈은 3달 만에 해치우려고 한다.      


신의도 차버리고 참회도 없는 한동훈의 당 대표 출마는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출세에만 혈안이 된 작금의 정치판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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