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중지란에 허덕이고 있다. 현재 여당이 당면한 ‘복합골절’ 이슈는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선되는 것,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으로 ‘영부인’의 정치 개입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 채 상병 특검이 ‘VIP’의 ‘임성근 구하기’ 논란으로 번지며 촛불정국으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등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여권이 당면한 가장 골치 아픈 주제는 바로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이다. 이 사건은 문제 본질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갈라지게 된다. 문자 논란의 요지는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5차례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직접’ 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로 확인된 팩트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김 여사가 한 전 위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그것에 한동훈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읽씹(읽고 씹었다)’을 했다는 것이 전당대회 논란의 핵심이다. 원희룡 나경원 후보 등은 한 전 위원장이 ‘읽씹’만 하지 않았어도, 김 여사에게 ‘OK’ 사인만 주었어도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을 안정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을 ‘더 많이’ 확보했을 수 있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김건희 문자’ 논란은 그 본질을 완전히 잘못 짚고 있다. 먼저 22대 총선 당시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문제로 사과를 하는 것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김 여사 문제를 포함한 일방독주 정국운영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 중 어느 선택이 더 여당 득표에 도움이 될지 분석해봐야 한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궤멸적 참패를 당한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도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식적이고 어처구니없는 국정운영 ‘태도’와 리더십 ‘능력’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확연히 표출된 것이다. 김 여사 문제는 ‘윤석열 리더십 대 폭망’ 가운데 하나의 곁가지일 뿐 총선 패배의 주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날리면’ 사건 이후 민심과 완전히 담을 쌓는 ‘철벽 정치’와 ‘천공’으로 대변되는 ‘주술 정치’의 항간 소문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국정의 불투명성을 높인 것 등이 더 중요한 총선 패배 요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 여사 ‘디올백’ 문제 등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KBS ‘관제방송’을 동원해 ‘작은 파우치’로 막으려고 하다가 ‘그래 한번 당해봐라’는 민심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한동훈의 ‘읽씹’으로 총선 패배를 더 자초했다는 전당대회 논란은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벗어난 ‘한동훈 낙마 저격용’일 뿐이다. 원희룡 후보는 “없는 것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승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동훈 후보가) 혹시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끌려고 한 것이 아닌지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동훈이 고의로 패배해 얻을 정치적 이득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 이런 주장은 비상식적이고 설득력도 없다.
그렇다면 김건희 문자 논란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 본질은 “윤석열이라는 ‘정치적 미숙아’가 해결하지 못한 온갖 국정운영의 미처리 과제들을 김건희 여사가 직접 나서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수렴청정’은 정치에서 흔히 발견된다. 가까운 미국의 예만 봐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건강 이상설’과 대권 불출마 요구가 분출하고 있을 때 주요 국정을 질 바이든 여사가 ‘대리’로 결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질 여사가 ‘백악관 내 권력자’로 불릴 정도로 국정과 선거운동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게 미국 정치권의 정설로 통한다.
힐러리 클린턴과 멜라니아 트럼프, 질 바이든 등 역대 영부인 3명을 조명한 책 ‘아메리칸 우먼’을 펴낸 뉴욕타임스(NYT)의 케이티 로저스 기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질 여사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하면서 질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한 번 찍히면 회복하기 힘든 (무서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한 질 여사는 사실상 바이든 대통령과 동일한 권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질 여사는 대통령의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공식 일정 대부분에 동행하며 식사 메뉴까지 챙긴다.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칼리지 교수로 재직하며 ‘일하는 영부인’으로 유명한 그는 “내 남편이 늙었다는 건, 그가 현명하다는 증거”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논란을 정면 돌파하려고 공개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질 바이든의 정면 돌파와 김건희 여사의 문자가 ‘오버랩’ 된다.
사실 대통령 부부 사이라면 ‘베갯밑송사’로 여러 가지 국정에 대한 조언을 영부인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밖으로 드러나지만 않으면 대통령의 결단이 대통령의 순수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 영부인이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며 모두 만들어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는 그 베갯밑 ‘조언’을 아예 대놓고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동네방네 ‘헤집고’ 다닌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번 문자 논란을 계기로 지금 정치권에선 김 여사가 대통령실, 장·차관, 정치권·문화계 인사, 언론인, 유튜버 등과 수시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김건희의 ‘수렴청정’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라는 ‘공적 기관’이 국정을 직접 책임진다는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고 그 과정에서 비공식 라인이 득세하며 정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통치권’을 놓고 벌이는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표간의 ‘드잡이질’이 영부인의 문자 몇 개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그런 판단을 영부인 ‘개인적’으로 내리고 또 그 의견을 대통령실 정무라인 등의 공식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집권여당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것은 명백한 국정개입이자 국정농단이라고 볼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중요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건네진다. 총선을 앞두고는 정무라인 보고서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그 촘촘한 보고단계를 모두 넘어서서 김건희 여사가 ‘개인적으로’ 집권여당 ‘대표’에게 문자로 ‘내가 사과를 할 테니 잘 챙겨봐 달라’고 한다면 ‘공인’인 한동훈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답을 보내 ‘그렇게 하라’고 해도 대통령실을 무시한 ‘월권’일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해도 ‘영부인 비토’를 하는 셈이다. 한 전 위원장은 김 여사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 사정을) 다 공개했을 때 정부와 대통령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한 전 위원장의 이런 주장은 김 여사가 문자에서 공개된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국정개입’ 소지가 있는 내용도 보냈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일반인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김 여사가 국정에 더 깊숙이 개입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여사는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 인터넷 매체 기자와 7시간 넘게 통화한 내용이 공개돼 큰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의 정무적 감각이 놀랍고 그 능력으로 정치에도 훨씬 더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김 여사가 아무리 한 전 위원장과 과거에도 ‘사적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고 신뢰가 있다고 해도 ‘영부인’과 집권여당 ‘대표’ 사이에서는 그런 ‘스스럼없는’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한 전 위원장에게 무려 5차례나 자신의 사과 문제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은 그 내용의 진정성보다 그것이 나중에 알려지고 난 뒤의 ‘후폭풍’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김건희 문자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정치 평론가로 활동중인 진중권이 ‘갑툭튀’로 나와 총선 직후 김건희 여사가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57분간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유튜브 정치 평론가들은 없는 사실도 그럴 듯하게 꾸며 방송에서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어 조회 수를 높이려는 경향도 있다.
진중권이 자신의 ‘방송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 김 여사와 통화한 사실을 흘려 ‘웨이트’를 한껏 끌어올린 뒤 ‘자기 장사’를 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다. 김 여사 또한 ‘특종’에 목마른 정치 평론가에게 민감한 문제를 털어놓아 ‘내가 사과하려고 했던 것을 언론에 좀 알려 주세요’라며 ‘공개 전파’를 조장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김건희 문자 논란의 본질은 영부인의 노골적인 국정개입이자 ‘국정농단’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김건희 정권’이라고 야당은 주장한다. 윤 대통령 집권 초기 여당 전당대회에서는 ‘윤석열 개입’이 주 이슈였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김건희 개입’이 논란의 핵이 되고 있다.
이는 참다못한 김건희 여사가 국정의 전면에 등장해 정국을 노골적으로 좌지우지 하려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줄을 서라는 공개적인 ‘명령’으로도 읽힌다. 윤 대통령 레임덕이 ‘가족’에게까지 전이돼 이제 수렴청정을 노골화하는 것 외에 더 대안이 없을 정도로 현재권력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건희 문자 논란의 본질은 영부인의 ‘수렴청정’이 공개적으로 막이 올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정국이 어떻게 홀려 들어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