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자고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잔차 타이어 공기를 넣고 있네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고 나서다 카메라까지 어깨에 사선으로 메고 어두운 길을 나섭니다. 취객이 갈지자로 다가오는 걸 멀리서 피하며 페달을 밟습니다. 오늘은 퇴계로를 좀 찍어보겠다며 마음을 먹었지만 잔차에서 내려올 만큼의 감동 씬은 없습니다.
일상은 언제나 똑같고 그것은 카메라 셔터에 동작 에너지를 전달해줄 만큼의 색다른 감흥이 없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다시 꺼져가는 신호등을 힘차게 따라잡습니다. 오늘도 퇴계로의 밤은 택시를 잡는 취한 회사원과 나이차가 꽤 나 보이는 아저씨와 아가씨, 우르르 몰려다니는 '학생'들이 뒤섞여 그렇게 깊어갑니다.
주로 가는 을지로를 벗어나 이번에는 명동으로 들어서 봅니다. 복잡해서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토요일 밤 명동은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말해줍니다. 명동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때 연말연시 주말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어깨가 부딪혀도 술의 동맹군이 되어 서로 너그러이 그 무례를 사하여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말 명동의 밤은 철지난 휴가를 좇아가는 몇 몇의 외국인들이 텅빈 거리의 미장센이 돼 줍니다. 한때 커다란 통에 돈을 쑤셔넣으며 흐릿한 미소를 흘리던 노점상 주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게 셔터문을 내리는 주인의 굽은 등이 3년 팬데믹의 후유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심한 시각에도 넘쳐나는 먹거리와 쇼핑으로 불야성을 이루던 명동의 불은 꺼졌습니다.
지나는 행인들은 그 변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고단하게 노점상을 정리하는 주인의 느린 움직임에는 희망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주인의 무료한 스마트폰 손놀림에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팬데믹으로 세상은 변한 것 같은데 누구도 그것에 대해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 덤덤한 포기와 약간의 절망이 무기력하게 다가옵니다. 다시 카메라를 메고 페달을 밟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