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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Dec 19. 2021

환승연애

막장은 영원하다 

티빙에 대차게 까이고 위로조로 1년치 프리미엄 이용권을 받았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는 거야 뭐야. 열뻗치네? 하여 한 동안 1인 시위하는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패대기 쳐뒀다가, 공짜는 또 못 잃어.. 몇몇 궁금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뒤늦게 가입. 그 중, 미친 거 아냐? 하며 현재 이틀 째 나를 새벽 까지 잠 못들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누적 조회수 4천만을 돌파한 관찰 예능 <환승 연애>다.   


시청 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연애 is 정신병." 

그래. 저게 싫고 지긋지긋해서 결혼하고 싶어했지 하다가도, 저런 감정에 휩싸여 낭비하는 청춘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무용하고 한심하여 아름다운가. 출연진들도 젊으니까 담배도 빡빡 피우고 매일 밤 술 말아먹고, 새벽 4-5시까지 사랑의 열병에 마음 아파 잠도 안잔다. 삼십 중반만 돼봐라. 그러고 싶어도 몸이 못 버티지. 


문득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만나던 친구가 종종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연인이 헤어지면 온 우주가 그/그녀의 슬픔을 위해 하루 정도는 멈춰야 한다.' 왜 한 번이 아니라 '종종' 저 말을 했냐면 우리가 사년 여를 만나며 '종종'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누구 하나 죽어날 정도로 싸워댔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터지게 싸운 다음 날이면, 어디서 주워들은 저 문장 뒤에 숨어 여러 주변인들과의 약속을 펑크내며 민폐를 끼쳤지. 둘 다 오냐오냐 자라 성격이 더러웠고, 각자 어렵고 무용한 책들을 많이 읽고 맛이 가있어서, 사랑을 했다기 보다는 책에서 영화에서 보고 읽은 감정들을 상대를 통해 체험해 보고 싶어 발광을 했던 시기였다. 바람만 안 폈지 서로 한눈도 엄청 팔았고, 대놓고 다른 사람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도 자주했다. 그땐 정말 돌은 자식인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다. 스무살이니까..! 


환승연애는 그런 나이의 헤어진 커플들을 잔인하게 한 집에 가둬놓고 시작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처음 로그라인만 듣고서는 정신나간 관종들이 출연하나 했는데, 옛 연인들에 미련이 남은 그래서 다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의 출연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시작부터 감동 한 스푼.. 하지만 연애는 타이밍이고, 서로에게 오해를 주지 않기란 쉽지 않고, 청춘은 혈기가 왕성하여 프로그램은 매회 레전드를 찍는다. 세상에.. 작가 미친 거 아니야? 남 연애가 이렇게 재밌다니! 나는 왜 이용진을 따라 이들을 비웃다가.. 유라처럼 과몰입하며.. 예원처럼 분석하다가.. 쌈디처럼 쳐 울고 있는가...!!


당신이 만일 작가이고, 제대로 된 연애 소동극을 쓰고 싶다면 환승연애를 봐야 한다. 작가라는게 그렇다. 잔인한 신이다. 인물들을 실험쥐처럼 셋팅 값 속에 집어넣고 주구장창 괴롭히는 것. 그거 잘하면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비이성적이고 광기 넘치는 연애를 해왔음에도, 스스로가 이런 추접스러운 인간인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이런 이야기들은 가방끈이 길고 고매한 학식을 가진 인상마저 온화한 내가 추구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라 생각해 왔다. 물론 고전 영미 문학 가운데 가장 신나서 본 것이 허영의 시장이며, 가십걸 전 시즌을 빼먹지 않고 본 애청자이며, 브리저튼 엑기스 구간을 단톡에 공유하고, 그 외에도 절대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여러 책, 영화, 만화들을 안 본 척 하지만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 그런 거였나? 솔직하지가 못해서!! 가증스럽게 착한 척하고 써서!! 그래서 티빙이 나를 깐 것인가!!!! 그래서 환승연애 좀 보면서 고쳐 오라는 뜻?? (아닌거 안다) 그렇다면 이제는 봉인을 풀어야 할 때.. 필명을 써서 그 뒤에 숨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체면을 확 그냥 내려 놓아야 하는 때 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오늘에야 온 마음을 다해서 무릎꿇고 숭배하듯 느낀 것이.. 막장은 영원하다는 것. 


막장은 영원하다. 왜냐면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여정을 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과몰입을 유발해서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어버리고, 이런 사랑이라면 죽어도 좋아! 외치는 파괴적인 면이 인간 안에 망측하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십대의 햇병아리도 너랑 나랑 헤어진 날에는 지구가 멈춰야 된다! 외쳤던 판이니, 연애는 분명 정신병이 맞다. 정도를 넘어버린 연애는 우리를 생각보다 좀 더 많이 먼 곳으로 데려가서 작품성은 있다하나 영.. 보고 싶진 않은 깐느 수상작 같은 것이 되어버리지만, 그럼에도 운명적인 사랑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정신병이다. 그리고 막장은 그 what if 를 체험하게 한다. 욕하면서, 파르르 떨면서, 울면서. 체면 따위는 확 내려놓고 그 감정에 몸을 내맡기는 것. 모든 위대한 문학이 추구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 


보면서 울었다고? 더 말해 뭐해. 게임 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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