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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an 16. 2022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드라이브 마이 카

살다가 힘들 때 또 꺼내 봐야겠다. 흐르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늦은 밤 영화관에 나를 포함해 세명이 있었는데 구석에서 조그맣게 울음을 삼키는 소리들을 들으며 영화를 본다. 쏟아지는 이야기의 홍수를 살고 있는 지금, 영화가 가진 힘을 얼마나 오랜만에 목도하는지. 위로해주어 고맙고 뚝심있게 완성해주어 고마운 드라이브 마이 카. 한 번도 독립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은 안해봤는데, 극장을 나서면서 아 나도 뚝심있게 한 번 이런 이야기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미장센으로 접근했을 때 그리 강력한 작품은 아니다. 핀처 영화에서 오는 기깔나는 연출과 호흡 같은 건 기대하면 안된다. 대사도 굉장히 직접적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만 철학적인) 꾹꾹 러닝타임 내내 빈틈없이 채워넣은 영화. 각본상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성실함이 그 완벽하게 채워맞춘 아구가 감동을 준다. 위로를 준다.


인간 관계는 오해와 어긋나는 타이밍의 연속이다. 사랑의 순간에는 이 모든게 놀랍도록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차례 풍랑 끝에 이 타이밍들은 계속해서 삐걱대고 어긋난다. 나만의 배려와 나만의 인고, 나만의 해석이 섞이며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더 이상 이해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된 순간 이는 서러움과 함께 폭발하며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린다. 하지만 차사고 같은게 나는 순간 보여지는 진심을 보며 우리는 아 이사람이 그래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 구나를, 행동으로 안다. 행동. 결국 인물의,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은 행동 밖에 없다. 말에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가 늘 섞여 있기 때문에. 어떤 진심은 아무리 말해도 닿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드라이브 마이 카 같은 영화를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이 정도의 상실과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채 영원히 살기를 바랬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가슴이 정말 사무치듯 저려오고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면서. 슬프게도 사람은, 작가는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며 연대하게 되고,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된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있기 때문에 행복도 있다. 소중한 것들을 아쉽게도 늘 댓가를 치르며 배운다.


영화는 이런 수많은 단상들을 사정없이 꾹꾹 발라놓는다. 그리고 그 한 마디 한 마디들은 관객 각자가 처한 상황들에 맞춰 조용한 위로가 된다. 이 것이 영화적인 위로인가? 영화적인가? 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내가 극장을 나서며 느낀 것은 영화만이 가진 힘이었다.


몇 개의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이 새벽까지 작업하는  장면. 그 어떤 슬픔이 오고 그 어떤 고통이 와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일해야 한다. 그 정직한 노동이 우리를 버티게 하고 결국 우리를 구한다. 일을 멈추어선 안된다.


그리고 차 뒷좌석에서 내연남의 클로즈업. 주인공의 오만과 편견이 무너지는 그 순간. 잘 짜여진 각본이 쌓아올린 힘이겠지만 차 안에서 내연남의 단독샷에서 흐르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면서 나만이 인고해야 했던 상처라 생각했던 것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나의 조용한 분노와 이기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이 단독샷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가 진실을 마주할 때 얻게되는 것은 포용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야기가, 문학이, 예술이 삶에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또박또박 쌓아올린 감독의 위로를 받으며,  세시간 짜리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때론 작위적이고 너무나도 정교하게 맞춰진 이야기가 과하다 생각도 했지만,  과한 정교함이 결국 우리를 위로하더라.

살다가 힘든 날이 오면. 조용히 또 꺼내 보겠다. 힘든 한 시기를 당신 덕에 버티고 강해진다. 고마운 작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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