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순수와 타협

잃지 않기 위해 때로는 굽히는 마음

by Kirei

순수, 그 맑고 투명한 마음


우리는 자라면서 한 번쯤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자’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의 때가 묻기 전 우리 안에 있었던 어떤 빛 때문일 것이다. 손익을 따지기보단 감정을 앞세웠고, 정의를 믿었으며,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진심을 꺾지 않던 마음. 그것이 바로 순수다. 망설이지 않고 도움의 손을 내밀던 어린 시절의 우리,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지키려 했던 그 고집스러움은 누군가에게는 미련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수 있었고, 세상에 기대할 수 있었다.


타협, 어른이 된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순수한 의지라도, 현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론 이상보단 생존이 중요했고, 정의보단 실리가 우선됐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거짓을 알아도 침묵하고, 부조리를 보아도 외면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진심을 감춘다. 타협은 때론 비겁함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고뇌와 눈물이 녹아 있다. 스스로를 속이며 웃어야 하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순수와 타협, 그 사이의 진짜 나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도 예전의 나인가? 아니면 수많은 타협 속에 바뀌어버린 또 다른 누군가인가? 그러나 이 질문엔 선과 악의 이분법이 없다. 순수와 타협은 대립이 아니라 공존에 가깝다. 순수했던 내가 지금은 타협을 배우고 있는 것뿐,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성장한 것이다. 중요한 건 순수를 ‘버리지’ 않고, 타협 속에서도 ‘지켜내려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순수하되 유연한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현실적이지만 근본의 가치를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중이다.


굽힐 줄 아는 강함, 지켜낼 줄 아는 용기


타협은 비겁함이 아니다. 오히려 때론 더 큰 순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오늘 하루의 침묵이 내일의 진실을 위한 준비가 될 수 있고, 지금의 양보가 더 큰 관계를 지키는 길이 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그런 타협이 반복되며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이다. 세상에 맞추되, 그 안에서 나다운 마음을 지켜내는 것.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그 ‘쉬우지 않은 일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아닐까.


순수를 품은 타협, 타협 속에 남은 순수


순수는 언젠가 잃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바뀌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지금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지금은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물러서는 다정함이 되었다. 타협은 결국 순수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삶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줄다리기 속에 있다. 어떤 날은 내가 이기고, 어떤 날은 세상이 이긴다. 하지만 지지 말아야 할 것은 있다. 순수한 마음. 그걸 지키기 위해 때로는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타협은 끝이 아니라, 지켜내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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