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정직이 필요한 시대
간결한 문장으로 된 안내방송이 지하철 플랫폼에 울려 퍼지면, 잇따라 날 선 버저음이 대여섯 번 귀 속을 파고든다. 빨간 등이 번쩍번쩍 경고를 주고 나서야 양쪽으로 활짝 열렸던 지하철 문이 ‘덜커덩’ 무자비한 소리를 내며 닫힌다. 등 뒤로 굳게 닫힌 지하철 문의 어렴풋한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들고서 드문 드문 앉아있는 승객들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그들의 손바닥 위 ‘책’들을 바라본다.
자리에 앉은 승객들 대부분이 가벼운 재생지로 만들어진 휴대용 버전의 책(Taschenbuch;타센부흐)을 손에 들고 저만의 세상에 심취해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서 이따금 들리는 쇳소리와 덜컹거리는 승차감까지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다. 10년 전, 베를린의 지하철의 모습은 이렇듯 꽤나 낭만적이었다.
당시 지하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책을 사랑했다.
이처럼 베를린은 가히 문화의 도시였다. 다채로운 작품 전시와, 세계적인 수준의 클래식 연주,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이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 개씩 온 도시에 쏟아져내렸다.
조그마한 광장, 큰 쇼핑센터 앞, 또는 지하철 플랫폼의 구석자리 혹은 기둥 앞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이름 모를 뮤지션들이 돌아가며 공연을 했다. 적당히 내리쬐는 햇살과 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들의 연주를 들을 때에는 그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한편 베를린의 춥고 흐린 겨울날, 누군가가 연주하는 구슬픈 아코디언 소리는 당장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움이 있었다.
이러한 베를린에서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곳이 있다면, 바로 카페이다.
누군가와 한창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은 눈치채기가 힘들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한 템포 쉬어가는 호흡 뒤로 홀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 혹은 직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까지도 또렷하게 들리기 일쑤이다. 놀랍게도 베를린의 카페에서는 배경 음악을 잘 틀지 않는다. 사실 카페뿐 아니라, 각종 매장, 야외 축제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배경음악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가 많다. 이유인즉슨, 저작권의 문제였다. 공공장소에서 틀 수 있는 음악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 혹여나 이러한 장소에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저작권의 문제가 해결된 곡들만 틀어야 하기에 유행과는 상관없는 아주 오래된 팝송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스포티파이(Spotify)와 같은 음악 스트리밍 앱 덕분에, 종종 음악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이제야 겨우 시작된 문화라 할 수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10년 전 즈음의 일이다. 베를린에 적응해 가며 겨우 살아가던 시절, 당시에는 이렇다 할 OTT 서비스 플랫폼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불법 다운로드를 하거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미 몇몇 유명한 사이트들은 유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도 했다.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동생을 만났는데 근황을 묻던 중에 난감한 소송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었던 그는 여느 한국 유학생들처럼 P2P방식으로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였다. 그런데 어떠한 경로를 통해 불법 다운로드의 정황이 밝혀져 4000유로 정도의 벌금이 적힌 편지를 받았던 것. 저작권 침해의 개념이 상식으로 자리잡지 못했던 그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운이 없었다.’는 둥 ‘독일이 너무하다’라는 둥의 무지한 소리를 해댔다. 나도 철없이 그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위로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벌금보다는 적지만 고가의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가 학생 신분인 점과 고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어필이 되어 약간의 벌금을 지불하면서 이 사건은 항간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작권에 대해 방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저작권법이 한국에 비해 더욱 체계적이거나 구체적이지도 않다. 애초에 독일은 저작권 등록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들은 넘쳐나는 문화와 콘텐츠 속에서도 누구의 것도 아닌,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먼저 베를린에 사는 예술가들은 자의적, 타의적 자존감이 모두 높아 보인다. 어떤 예술 분야임을 막론하고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시기를 겪을 때에도 록다운(Lockdown) 직전까지 문을 활짝 열어놓았 던 곳이 꽃 가게와 서점이었다. 국가의 위기 속에서도 문화와 정서적 풍요로움을 잃지 않겠다는 그들의 집념이었을까. 곧이어 코로나로 인한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국가 기반에 필수적인 사업장들만 운영이 허가되었다. 우리 집 근처 작은 아틀리에의 유리문도 결국 굳게 닫혀버렸다. 그러나 아틀리에 유리창에 쓰여있던 한 문구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Kunst ist systemrelevant. (쿤스트 이스트 시스템렐레반트; 예술은 사회 필수적인 산업입니다.)’ 손수 쓴 거친 필체 위로 그들의 절규와 예술가로서의 당당함, 나아가 책임감이 감돌았다.
또한 독일인들은 법을 준수하고 양심을 따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것에 쉽게 욕심내지 않는다.
몇 년에 걸친 독일의 유연한 난민정책으로 인해, 베를린에는 특히나 많은 난민들과 이민자들이 살게 되었다. 이에 따른 치안 문제로 종종 테러나 절도와 같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독일인들은 정직했고 결코 남의 것을 탐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길을 가다 실수로 지갑을 떨어트렸을 때에도 기어이 주워서 내 손에 쥐어주던 그들이었다. 드러그 스토어(Drugstore)에 비치되어 있는 공용 기저귀대에는 무료 기저귀가 비어있는 순간을 본 적이 없고, 진열대 옆 무료 포장지도 양심껏 뜯어가는 식이다. 지하철은 흔한 개찰구 하나 없이 운영된다. 곳곳에 감시 카메라 하나 없어도, 누군가가 단속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기꺼이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신기한 이들의 문화가 아직까지도 낯설면서도 대단하다. 이 속에서 나는 저작권 보호와 관리에 대한 자그마한 실마리를 조심스레 찾아보게 되었다.
저작권 등록에 대한 구체적인 분야를 넓히고, 저작권 침해 시 법적 조치들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도 이미 훌륭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에 관련된 창작자들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베를린에서 체감하고 있는 케이컬처(K-culture)의 위상에 비해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기대 이하일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적으로 예술 문화에 대한 지원을 높이고 종사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가는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나아가 지금은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지 않고도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임을 강조하고 싶다. 글, 음악, 댄스, 영상 콘텐츠, 컴퓨터 프로그램, 앱개발 등 수많은 경로와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이렇듯 시대가 최첨단으로 발전할수록 오히려 우리의 자세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는 정직, 누군가의 열심과 수고를 인정하는 공감력, 양심을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직하고 양심적인 민족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보는 눈이 있는 곳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서의 태도가 사뭇 다른 것도 사실이다. 모든 예술 문화 및 창작 분야에서의 표절 시비나 무단 배포 등의 문제는 해결하기도 복잡하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판결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당장 아무도 모를 거라는 안일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아무 대가 없이 쉽게 얻으려 하는 행위는 도둑질과 다름이 없다. 저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 이를 보호하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창작자가 내일의 소비자가 되는 시대인만큼 역지사지의 자세를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