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닭갈비였으나 끝은... -2-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by Kiri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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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뜬금없이 강릉행 버스를 집어탔다.


지금도 왜 강릉인지 확실하지 않다.


"야, 우리 그때 왜 강릉갔지?"

"피씨방이 없어서."

역시 멀쩡한 대답을 바라는게 아니었다.



어쨌든 강릉행 버스를 잡아탄다.


그냥, 닭갈비 먹으러 뜬금없이 춘천을 오듯이

누군가 "야 바다보러 강릉가자"

라고 했던 것에 더해서

할게 없던 우리는 그냥 동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우리 돌+아이들은 모두 다르게 기억한다.

버스는 춘천터미널을 떠나 강릉을 향해 출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차라리 춘천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저녁에 막국수나 먹을걸 그랬지...

역시나 버스여행의 로망은 없다.

기차에서도 그모양인데 버스에서라고 다를게 없다.


배부르고 열심히 걷고

편안한 좌석에 에어컨까지 빵빵하다.


잠이 안오는게 이상하지...


그렇게 오후 다섯시경에 강릉에 도착했다.

오긴 왔는데... 이제 뭘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대책없이 오면 이게 문젠데...


그렇게 저녁도 먹지않고 우리는...


게임을 시작한다(????)


임마들아, 뭘 할지 좀 생각좀 해봐라.

강릉까지 와서 길바닥에서 게임하고있냐...

날이 슬슬 어둑어둑 해지는데,

구름도 껴서 그렇게 썩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하... 진짜 뭐하지? 하던중에...

강릉터미널 앞을 오가는 수많은 버스를 보면서,

누군가가 행선지를 보고는 소리쳤다.


"야, 정동진 가자.

가서 뭐 밤좀 새면 아침해는 볼 수 있겠지."


그렇다. 그 버스는 정동진을 가는 버스였고,

심지어 막차였다.

한번도 정동진에 가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그곳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거기 가면 뭐라도 할게 있겠지 싶었던 우리는

막연히 강릉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릉 고갯길에서 중력과 관성을 느끼면서...

꽤 오래 가다보니 어느덧 정동진이다.


"...누가 오자고 했냐?"

너요. 너.


도착하니 해가 완전히 졌다.

좌석버스가 너무 오래걸렸던 것이다.

거기에 내리기도 잘못내린 것 같다.


근처에 뭐가 있는가 해서 둘러보니.


없. 었. 다.


사실 우리가 내린곳이 정동진인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


그당시 우리는 아무 정보도 없이 갔기 때문에, 그 주변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아무것도 없을 상황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내 구글맵은 지금보다 데이터가 부족했으니까...


이상하게 밤샐 공간도 없었다.


이렇게 '정동진에서 밤을 새고 아침해를 보고 오자!' 라는 계획은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다.


가자고했던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 한마디만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피씨방정도는 있을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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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배경이다.

정동진 근처 어딘가의 해변가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분명 차도인데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기분은 딱, god의 '길'이었다.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진짜 어디로 가는 길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걸었다.

쥐뿔도 없는 길가엔 가로등 불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인기척도, 고양이도, 쥐도, 그 어느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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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우린 그 길을 따라 정동진역에 다다른다.

물론 사람은 없었다. 기차도.

이 대책없는 여행의 주동자는 그저 즐거운가보다.

진짜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슈퍼도 닫혀있었다.

이곳에서는 밤새고 뭐고 할 자신이 없었다.


피방이라도 있겠지 싶었던 우리의 돌+아이들.

정줄을 놓기 시작한다.


커피보단 콜라.

축구보단 게임.

바다보다는 피방인 녀석들이라...


결국 이런 요상한 인증샷까지 남겼다.

난 없다. 찍어야되니까.



그리고 5년 뒤 현재,

이 포즈가 재평가되었다.


왜냐면...


오렌지 캬라멜 - 아잉♡ MV中

2010년 11월 발매한 오렌지 캬라멜.

우리가 저 포즈를 취한견 2010년 7월.


......


사실 우린 오렌지 캬라멜이 아니라

계피맛 연양갱이지만...



자, 정신나간 포즈는 이제 그만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래도 역 근처에 사람이 살고있었는지,

거주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슬슬 택시가 한두대씩 들어왔다.


택시아저씨가 물었다.

"아니 어쩌다 이 밤에 여길왔어요"

"그러게요..."


체력과 돈과 정신만 잃고 우리는 정동진을 떠났다.


그리고 택시기사님의 추천으로,

강릉의 대학로에 내렸다.


드디어 사람이 보인다.

유흥의 빛도 보인다.

우리가 찾던 그 빛이 이거였나보다.



지치고 굶주린 몸을 이끌고 우린 치맥을 찾았다.

닭갈비로 시작하여 저녁은 파닭으로...


시작은 닭갈비였으나 끝은 파닭일지어다?

원래 건전한 유흥의 끝은 노래방이다.


우리 돌+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여자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있어도 씁쓸했지...

노래부르다 지쳐 잠이 든 친구.


이 사건을 주도한 놈이 제일 먼저 나가떨어졌다.


이 역적을 어찌하면 좋을꼬...



이제 잘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숙소 잡을 돈은 없고.

찜질방은 우리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


지칠대로 지친 심신은 찜질방 대신 집을 원했다.

당장 내일 첫차를 타고 서울 갈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피씨방이었다.

밤새서 게임을 했다.

그리고 나와보니 아침해가 떴다.


정동진에서 봤어야 했지만...

우리의 헛짓으로 날려버렸다.

차라리 시내에 있다가 밤새고 갔다오던지 할걸...


출처 : www.reverbnation.com

사실 일출, 청춘.

두 단어에서 연상되는 사진이면 거의 저거다.

우리도 무의식중에 이 사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의 밝은 해를 상상하며

정동진에서 밤을 샐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린 그런 청춘의 달콤함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게 피씨방으로 연결되는 글러먹은 청춘에게

저런건 존재할 리가 없다.


피씨방으로 얼룩진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택시.

콩의 저주에 걸린듯한 2222번 택시를 타고

아침일찍 강릉역에 도착한다.


땀내는 풀풀. 정신은 반쯤 놨고,

밤샘으로 인해 체력은 바닥이었다.

이때만해도 강릉역이 있었는데,

지금은 강릉역이 없다고 들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난 찝찝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대충 몸좀 닦아내고 가방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머리에 몸까지 씻냐고 갈굼을...

청량리로 향하는 무궁화호.

아침 07:00 출발.

13시 20분 도착이니, 6시간을 내리 잘 수 있었다.

그렇게 꿀맛같은 잠을 채울 수 있었고,


이 헛물만 잔뜩 들이키고

닭갈비 하나로 시작해서

결국 강릉까지 와서 피씨방을 가는

말도안되는 방황이 끝났다.

비록 청춘의 낭만가득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서, 단체 채팅방에서,

지금도 한번씩 언급하면 꼭 이런 반응이 나온다.


"우리 그때 왜그랬을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웃음밖에 나질 않는다.


'도대체 강릉까지 와서 피방서 게임하고 가는,

그런 바보같은 놈들이 어딨냐!'

하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여기요!"


당연히, 그때의 역적은 지금도 놀림거리다.

내가 사진을 참 역적 티 나게 잘 찍긴 했다.


아 물론, 이 피씨방 폐인 돌+아이들의 헛짓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작은 닭갈비였으나 끝은 피씨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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