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혼여행기 1 - 결혼식 그 후
오랜 시간 준비한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우리.
남들은 소감을 물으면 '정신을 차려보니 끝나있더라'라고 하던데…
나는 반대로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뇌리에 남았다. 오히려 소중한 축제가 금방 끝나는 게 아쉬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던데~?
다시 생각해도 재밌었다 결혼식♥
그렇게 친구들과 뒤풀이까지 찐-하게 하고, 야심한 시각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한 나.
사실 결혼 준비만으로도 벅차 여행 준비는 거의 못했고, 오히려 엄마가 옆에서 '너 짐 안싸니? 신혼여행 안 갈 거니?'를 며칠째 독촉했었다. 딸내미가 2주나 여행을 간다면서 넋을 놓고 있으니 어지간히 걱정됐나 보다.
참다못한 엄마가 김치와 라면, 국 등 한식을 미리 사다 한편에 넣어주어서, 캐리어에 2주 치 짐을 마구잡이로 때려 넣었어도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역시 엄마밖에 없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친구들이 '와이프가 어떤 사람이냐' 물어보면 "신혼여행 짐 당일에 싸는 여자"라고 답변한다고 하더라^^
뭐,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닥치면 다 하게 되는 법이니까.
한 2시간 정도 잤나. 다음날 새벽 6시, 우리는 결혼식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공항으로 향했다.
때는 지난해 10월 2일.
코로나 지침이 이제 막 해제되기 시작한 시절이라 해외여행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찾은 인천공항은 어찌나 또 설레던지!
여기에 감동 포인트는 '시어머니'(아직도 이 표현이 입에 잘 안 붙는다)가 주신 용돈이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봉투에, 안에 편지까지 써주시다니…
편지를 공항에서 읽어보고는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구나'가 실감나면서 눈물까지 찔끔 나려 했다.
공항 라운지에 가서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 갔던 뽕 좀 뽑아볼까 했더니, 알고 보니 비행기가 10시 30분 아니라 10시여서 시간이 정말 없었다. 정신없이 비행기 탑승 완료.
비행기에 타고나니 이제는 또, 어제 결혼식에 와주신 어른들께 감사의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엄마아빠가 정리해 주신 축의금 목록을 받아서, 이륙 직전까지 번개같이 문자를 보냈다.
아, 다시 생각해 보면 이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ㅋ
정말이지 결혼식은 힘들어서라도 2번은 못할 일이다.
짜잔-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기내식이냐!
우리는 코로나 방역지침의 변동성 때문에 비행기 표를 일찌감치 취소수수료가 적은 마일리지로 끊어놨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리가 안 나서 신.혼.여.행(이 4글자가 주는 마법이란)인데도 불구하고 이코노미를 탔다.
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겠나 싶어서 비즈니스를 타보고 싶긴 했는데, 살다 보면 환갑여행 때라도 한 번은 타게 되겠지^^ 오히려 이코노미 타니까 젊은 커플 여행 느낌도 나고. 오랜만에 해외여행 나간다는 사실만으로 그냥 충분히 행복감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느냐. 목적지는 바로 바로 뉴욕!
왜 신혼여행지를 미국 동부로 정했는가 하면 이야기가 또 긴데.
사실 우리는 몇 년 전 미국 서부 여행을 함께 다녀왔었다.
당시 라스베가스와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여행이 너무너무너무 재밌었어서. 가히 그동안 다녔던 여행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미국 동부와 남부로 신혼여행을 하면서 그때의 감동과 재미를 또 한 번 느껴보고자 뉴욕으로 장소를 정하게 됐다.
그렇게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내리니 현지 시간은 오전 11시 5분.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뉴욕 JFK 공항은 정말 정말 컸다.
우리는 2시간 20분 만에 뉴욕에서 올랜도로 환승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미국을 너무 얕잡아본 것이제.
입국 수속에만 한참이 걸렸다.
사실 미국에서 쇼핑할 생각에 우리가 현금을 좀 많이 들고 왔었는데, 오빠가 들고 온 금액을 곧이곧대로 아주 솔직하게 서류에 적는 바람에.. 반입 가능한 현금 한도가 넘어 따로 불려 가기도 했었다.
(신혼부부라고 하니까 결국 그냥 보내주더라. 감사합니다 ㅎㅎ)
11시 뉴욕 도착에, 13시 20분 올랜도로 출발하는 비행기.
비행기 표를 끊을 때는 미국 국내선 환승에 2시간 넘는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당시 JFK 공항은 공사 중이었는데 올랜도로 가는 젯블루 비행기를 타려면 아예 우리가 도착한 터미널 건물 밖으로 나와서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했다.
몸만 한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초점 없는 눈으로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는데, 다행히 한국인 공항 직원분을 만나서 처량한 우리에게 자세히 길을 안내해 주셨다. 그래도 여전히 계속 헤매긴 했다.
왜 또 부슬비는 오는 건지… 우산 쓰기는 애매해서 그냥 맞으면서 이동해야 하는 그런 비 있잖아.
그렇게 비행기를 놓쳤다.
후. 후후후... ^^
나는야 변화를 즐기는 여자.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다행히 젯블루에서 무료로 다음 비행기로 변경을 해줬다.
본래 13시 20분 출발 비행기였으나 19시 출발로 변경.
공항에서 멍 때리고 있는데 뉴욕이 너무 추워서 둘이 후드티를 사 입었다. 앗 커플티 득템이고요.
어차피 첫날 일정은 숙소에 도착해 쉬는 것 뿐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공항에서 쉬지 뭐 하면서 카페 책상에 엎드려서 자기 시작했다.
오빠는 비행기를 놓친 와중에 잘 자는 내가 너무나 신기했다고 한다.
그만큼 피곤했었는데 정말.. 결혼식 당일 저녁에 신행 출발하는 부부들 대단하다.
그렇게 17시에 도착 예정이던 호텔에는 밤 23시에야 당도할 수 있었고.
우리의 신행 첫날 숙소인 디즈니월드 팝센츄리 리조트 공개!
피곤해서 리조트 주변을 둘러보고 그럴 여유는 없었고,
놀랍게도 허기가 져서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싸준 라면에 미역국을 꺼내 미국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
짐이 너무 많아서 짐 줄이고 싶은 목적도 있었음.
결혼식부터 뒤풀이, 오랜만에 비행기 탑승까지 이 모든 여정을 지나 우리가 드디어 '부부'로서 디즈니월드에 오기는 왔구나 실감을 하면서. 우리는 라면을 호호 불며 입에 집어넣었다.
그럼 지금부터 기억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들려드릴게요.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