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부다페스트, 우라니아 국립 극장 Uránia Nemzeti Színház

by 제엠

*헝가리 여행을 다녀온 것은 2017년 4월, 이 글을 쓴 것은 2018년 7월 경임을 밝힌다.


헝가리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꼭 쓰고 싶었던 후기였는데 여행기를 쓰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써야만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찍어놓은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도 또다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리라.

결국 내용은 쓰고 싶은 부분만 정리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어떻게든 타협해서(보정을 거쳐) 업로드하기로 결심을 하고 장장 1년하고도 2개월만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됐다.


굳이 부다페스트씩이나 가서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이곳 '우라니아 국립 극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으로 선정됐기 때문이었다. (누가 뽑은 것인지는 사실 알 수 없음)

여행 중에 지역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부다페스트에 있는 동안 영화를 보러 가기로 정했다.


01.jpg 우라니아 국립 극장 입구


내가 여행을 계획하던 17년 4월 경에는 한창 라라랜드(헝가리 타이틀은 Kaliforniai álom, 캘리포니아 드림)가 상영 중이었다. 현지 영화를 관람할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뇌리를 스쳤지만 이해도 못할 영화를 볼 수는 없으니 빠르게 포기했다. 당시 라라랜드에 미쳐있던 나는 이미 한국 영화관에서만 4번 정도 이 영화를 관람했기에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 예매하기


홈페이지는 영어도 함께 지원하기 때문에 예매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라니아 국립 극장 홈페이지 바로 가기

00.JPG 24년 3월 기준 홈페이지 메인창, 현재는 듄 파트2를 상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보통 영화관 상영 스케쥴은 빨라도 일주일 전은 돼야 올라온다. 뭐든 미리미리 일정을 정해두어야만 속이 풀리는 나는 언제쯤 상영 일정이 올라올지를 몰라 하루에도 몇번씩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무엇보다 라라랜드 열풍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였기에 혹여나 영화 상영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다행히 출국하기 며칠 전 영화 상영 일정이 잡혔고,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보내는 두 번째 날에 영화를 보기로 정했다.



우라니아 국립 극장 가는 길



세체니 다리에서 천천히 걸어도 3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라 여유롭게 도시를 둘러보며 가기 좋았다. 다만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일반적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눈에 띄는 표시도 없어 눈 앞에 극장을 두고 한참을 헤맸다.



극장 내부


다행히 영화 시작 시간보다 일찍 와서 극장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볼 수 있었다. 원래 무대공연을 위해 지어진 공간인지 배우 대기실로 보이는 공간들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관광객들이 잘 찾는 장소는 아닌지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부다페스트 주민으로 보이는 한 중년 어르신은 매우 자랑스러워 보이는 투로 여기 정말 아름답지? 하시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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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니아 국립 극장 내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중앙 홀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함부로 올라가면 안될 것 같은 소심한 마음에 차마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2층에는 작은 카페와 테라스가 있다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돼서 아쉬웠다. 혹시나 이후에 가실 분들은 꼭꼭 올라가 보시길 바란다.


04.jpg 우라니아 국립 극장 2층. 평소에는 작은 카페를 운영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by. Kettős Licenc)


혹시나 몰라 호스텔에서 미리 티켓을 뽑아왔는데 막상 가보니 카운터에서 티켓을 뽑아주고 있었다. 내가 티켓을 출력해왔더니 따로 표를 뽑아주지 않아서 괜히 뽑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예매한 티켓을 뽑아달란 요청을 할 수 있었을리 만무하니 미리 준비해온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화 관람


05.jpg 당시 출력했던 영화 티켓


티켓값은 1,400포린트. 당시 한화로 6천원 정도다.

카운터 앞에는 상영하는 헝가리 현지 영화들의 팜플렛이 비치돼 있었다. 아쉽지만 라라랜드는 따로 전단지가 꽂혀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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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영화를 예매할 때 어떤 자리를 고를까 하다가 '아무래도 정중앙이 가장 무난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위 사진 붉은색으로 표시된 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상영관에 입장하고 보니, 현지 주민들은 다들 뒷자리에 앉아있고 중앙에는 나밖에 없었다. 스크린을 보니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07.jpg 극장 스크린


앞서 말한대로 무대 공연을 하던 곳이라 단상 위에 스크린이 있었던 것이다. 러닝타임 내내 고개를 쳐들고 영화를 봐야해서 조금 힘들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우라니아 국립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분이 있다면 반드시 뒷자리를 사수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덧붙여서, 멀티플렉스와는 달리 정시에 영화가 시작되니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좋다. 광고도 없이 바로 영화가 시작돼 위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급하게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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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내부


상영관은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영화를 보다가도 스크린 옆 기둥이 너무 예뻐서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갈 정도.

정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가봤던 영화관 중에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세계 여기저기의 영화관을 다녀온 2024년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곳을 시작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로컬 영화관을 가는 것이 하나의 의례처럼 자리잡았다. 여행지를 기억하기 위해 그 지역의 향수를 산다는 배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영화가 그런 매개체가 되었다. 영화와 여행을 좋아한다면, 꼭 그 지역의 괜찮은 극장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