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제도 사이에서
“모여서 싸우죠”
내가 하는 온라인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5명이 모이면 이겨요”
그들은 모이지 않는다. 각자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따로 놀 뿐이다.
결국 '이놈의 브론즈' 라며 한숨을 쉬게 된다.
뉴스에서 대통령이 국회가 느리다며 불평하는 장면을 봤을 때 생각했다.
'국회의원들은 변태들인 걸까. 자기들 욕먹는 게 뭐가 좋다고 저럴까.'
'국회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다가 멈칫했다. 일부러 그럴 리는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게임과 비슷해 보였다.
국가를 이루는 바퀴의 속도가 서로 달랐다. 국회와 대통령 각자 입장에선 합리적이다.
근데 전체로 보니 따로 논다고 느껴졌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얼마나 속이 터지든 끝이 있고, 여차하면 나가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은 나갈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당연하다고 여겨 왔던 민주주의에 회의가 들었다. 누구한테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고, 괜히 고심했던 내가 싫어졌다.
이 찝찝함을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다시 떠올랐다.
서양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정리한 책을 봤을 때, 제일 재밌던 포인트는 변화의 과정이었다.
중세에는 고대의 정치사상이 낡았다며 단순 지난이야기로만 치부했다. 그런데 미국건립이나 프랑스혁명 이후에 본뜬 모델은 고대 로마였다.
글자를 따라가던 눈동자가 멈췄다.
'언제는 구닥다리 취급하더니, 결국 돌고 돌아 로마라고?'
아이러니에 실소가 터졌다.
이런 아이러니가 왜 생긴 걸까.
1000년이 지났는데 결국 같은 데로 돌아왔다는 건, 그 사이에 뭔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거 아닌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
그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정치사상의 흐름이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조율하는지에 대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때의 찝찝함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기대고 있는 제도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라는 찝찝함.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삐걱이고 있는 바퀴지만 앞으로 굴러갔다.
정치뉴스는 오늘도 나온다. 그 안의 사람들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의 눈은 달라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