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시작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상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흐르는 시간을 지켜보던 날들이 불안하거나 답답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주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나무위키를 읽는 것도 좋아했다.
사건 하나가 계기였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그 배경이 궁금하여 나무위키를 뒤졌고 '멜로스의 대화'라는 문서로 흘러들어갔다.
그저 한참 옛날 그것도 기원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재구성한 대화문이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때의 감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굳이 정의하자면 '공포'에 가까웠다.
국제정치의, 권력의, 인간의 민낯을 본 것 같은 전율이 느껴졌다.
그다음 날 그 대화문이 실린 책을 찾아냈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그날 이후로 나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게임을 하지 않았다. 독서가 있어 보인다거나 빌린 것이니까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니었다.
재미있었다. 그 책이 재밌는 것인지, 독서가 재밌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었다. 게임보다도.
독서를 위한 각종 아이템들(독서대, 독서등, 손가락 골무 등)을 구매하다가 아이패드가 눈에 들어왔다.
구매를 합리화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냥 갖고 싶었다.
아이패드는 흔히 넷플릭스나 유튜브 머신으로 전락한다. 내 기준 무리해서 구매한 것인데 그런 결말로 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활용처를 찾았다. 안 쓰던 일기도 써보고, 전자책도 보고,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일부러 개인적인 성향과 반대 성향의 일간지를 구독했다. 그리고 원래 성향의 주간지도 하나 구독했다.
오전에는 그날의 신문을 보고, 오후에는 책을 본다. 그리고 노션에 그날의 기사 중 몇 개를 뽑아 정리하고, 책 내용도 정리해본다.
몇 주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생활이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뭔가에 생산적이라기보다는 시간 보내기라는 것.
그래서 이 공간에 들어왔다. 혼자 끄적여보던 신문 기사 소감을 에세이 형식으로 남기고,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도 기록하려고 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