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과 불행 사이에서
나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365일 24시간 함께하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근이영양증. 희귀 질환이고 여러 타입이 있지만 나는 진행이 느린, 더 희귀한 타입이다. 이건 뭐 재수 없는 놈들 중에서 재수 좋은 놈 뭐 그런 거다.
얘에 대한 인식을 전환한 건 고등학교 때 선생님 덕분이다. 그분도 만성질환을 하나 갖고 계셨는데 '그냥 평생 같이 가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잘 다독이면서 지내'라고 하셨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친구? 그 말을 듣자마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근데 며칠 지나니 일어날 때도, 밥 먹을 때도, 학교를 갈 때도 계속 옆에는 얘가 있었다. 벗어날 수는 없구나 친구 맞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정답이겠지. 그날 이후로 나는 평생 친구가 생겼다.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불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식당이나 놀러 갈 때 주소 정도만 알아보면 되겠지만, 나는 로드뷰를 먼저 켠다. 계단이 있는지, 있다면 옆에 경사로는 있는지 찾아본다.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있다면 크기는 얼마나 큰지도 알아봐야 한다. 게임에서 만난 형들과 1박 2일로 놀러 갈 때는 아예 부모님이 사전답사까지 다녀오셨다.
가끔 동네 병원을 가야 해서 휠체어를 타고 나갈 때면 길거리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처음에는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원래 성격이 주목받는 걸 안 좋아하는데, 이런 식의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못 봤으니까. 신기함과 생소함이라는 걸 이젠 안다. 나라도 맞은편에서 특이한 패션의 사람이나 외국인이 걸어오면 신기할 거다.
반대로 재밌고 유용한 점도 있다. 콘서트나 공연 갈 때 예매 성공률이 99%다.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이면 힘들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은 없다. 공연장에 가면 들어갈 때, 나갈 때 직원이 에스코트하며 길을 뚫어준다. 그 기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면 이런 경우도 있다.
나 : 오늘 날씨 좋더라 아까 집 근처 병원 걸어가는데 옆ㅇ
친구 : 못 걷잖아.
나 : 아 그러네 맞네 맞아. 그래 나는 저벅저벅이 아니라 끼릭끼릭이지^^.
이런 스몰 토킹도 가능하다.
내 성격이 불행둔감증에 행복민감증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일들은 애초에 불가능한 거니 신경 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산다. 나는 이 악우와 함께 앞으로도 같이 걸어가...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어차피 앞장설 일도 없고.
나에게는 큰 힘이 없으므로, 큰 책임도 없다.
아! 최근 친구가 늘었다. 이명이라고.
인기인의 삶이란,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