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와 욕망 사이에서
매일 아침 읽는 신문에 ‘서울 6만 가구 공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서울에 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볼 때면 드는 의문이 있다.
이미 사람들은 각자 월세든 전세든 어디선가 살고 있다.
누군가 집을 사면, 그가 살던 집은 어떻게 될까.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올까.
인구는 줄어드는데 이렇게 계속 지어도 되는 걸까.
사실 나는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아보고 싶어졌다.
기사를 찾아보고 요즘 유행 따라서 AI에게도 물어봤다. 알수록 복잡했다. 집값, 인구, 일자리, 지역 격차 같은 문제들이 전부 얽혀 있었다.
정부의 안이 정답일까.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혼자서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형을 알게 된 건 배틀그라운드 게임이 유행할 때 한 커뮤니티에서였다. 같이 게임할 사람을 찾는다길래 우리는 자주 어울렸고 친해졌다. 남는 게 시간인 나와 밤에 출근하여 아침에 퇴근하는 그 형은 잘 맞는 게임 메이트였다.
어느 날 그 형은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신 지방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다. 전문직이라 낮 근무로 옮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삶 자체를 바꾸고 싶어 보였다.
그는 지방에 하우스를 짓고, 옆 농막에서 산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넷플릭스와 독서를 즐기는 삶을 살고있다. 주변에 잘나가는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는 딱히 부러워하지 않는다. 당연히 여러 불편함이 있는 삶이지만. 토마토가 자라나는 걸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말은 담담한데, 예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형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토마토가 자라는 걸 보는 게 정말 행복일까. 문득 에피쿠로스가 떠올랐다. 행복은 더 가지는 게 아니라 덜 원하는 상태라는 말.
형의 삶이 좋아 보인 건, 그가 포기해서가 아니라 계산을 끝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 자가, 성공 같은 기준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밀어 올리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 형의 방식이 더 계산이 맞았다.
P.S
그 형은 올해 자기와 똑 닮은 가치관의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부럽다. 아주 많이는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