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음과 관계 사이에서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부동산 기사를 다루는 페이지였는데 삽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는 끊긴 사다리 앞에 멈춰 선 2030, 오른쪽에는 멀쩡한 사다리를 올라가는 4050.
그림 하나로 이미 결론이 정해진 느낌이었다.
읽기도 전에 조금 거슬렸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다. 2030도 힘들고, 4050 중 일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왜 이 둘만 비교하지? 4050 중 망한 사람은? 2030 중 집 산 사람은? 진실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기사였다. 국내 저널리즘에 실망하던 그때 문득 헤르메스가 떠올랐다.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진실을 빼먹곤 하던 신.
요즘 비판적 사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그게 갖고 싶었다. 평소 유튜브로 세상 소식을 접했었다. 그런데 유튜브는 이미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그래서 신문으로 바꿨다. 내 반대 성향의 신문을 구독했다. 모든 기사를 읽지는 않았다. 사실 대부분은 읽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넘긴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사설만큼은 꼭 읽었다. 뭔가 이상하면 내 원래 성향 신문을 찾아봤다.
그렇게 신문 읽는 습관이 붙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친구가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하면, '네가 뭘 했길래' 부터 생각했다. 신문 읽는 태도를 사람한테까지 쓰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요즘 우리는 다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 의도를 먼저 따지고, 공감하기보다 틀린 부분부터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대화와 전투를 착각합니다. 그들은 팩트와 논리를 양손에 쥐고 상대방을 땅바닥에 깔아 뭉개는 것을 대화라고 착각합니다." - 웹툰 부기영화에서
나는 팩트가 항상 선이라고 믿지 않는다.
뉴스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사람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칼날은 신문 위에만 올려두면 충분했다. 정보 앞에서는 비판적으로, 사람 앞에서는 조금 느슨하게.
제일 중요한 건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