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대화 사이에서
요즘 문해력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봤다.
AI가 이렇게 치고 올라오는데, 문해력이 계속 필요할까?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떻게 키워야 할까?
그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많이 추천되는 건 독서였다. 기사에서도 학교 과정에 독서를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독서를 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독서를 할 때 집중이 조금만 흩어지면 글은 생각이 아닌 글자 더미가 됐다. 눈은 글자를 따라가는데 머리는 딴생각을 했다. 한 페이지를 읽고도 뭘 읽었는지 기억 안 날 때가 많았다.
'이해 안 되면 AI한테 물어보지 뭐.' 이런 생각에 문장과 씨름하는 일이 적어졌다. 생각이 준비 안 된 독서는 그냥 활자 소비일 뿐이었다.
내가 생각을 이어가고 깊어졌던 순간을 떠올려 보니, 독서를 할 때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의 다른 일이 더 강력했다.
어느 책에서 민주정에 대한 문장을 읽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떠올랐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유명한 말이다. '국민에 대한 희망 예찬'.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친한 동생에게 해주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거 아냐?"
뭔가 이상했다. 우리가 같은 문장을 읽은 게 맞나? 갑자기 친했던 그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문장을 두고 서로의 해석을 다시 설명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대화를 끝냈다.
그 대화가 있고 나서 나는 몇 시간을, 며칠을 저 구절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 번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하고, 김대중이란 인물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봤다. 혼자 책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해력이라는 건, 글을 해석하는 능력이라기보다 다른 해석 앞에서 내 생각을 다시 세우는 힘에 가까운 건 아닐까. 그 힘은 혼자 읽을 때보다, 해석이 부딪히는 순간에 더 또렷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문해력에 대한 답을 독서에서만 찾는 건, 어쩌면 너무 편리한 생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