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수용 선언
얼마 전, 다운증후군 작가 정은혜 님의 결혼식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맑은 영혼이 담긴 순수한 눈으로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그 장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감정이 북받쳤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 내가 살면서 입 밖으로 뱉어본 적이 있던가.
돌이켜보면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낳음 당함'을 당했다. 낳음 당해서 강제로 살게 만든 그들을 원망했다.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이렇게 고통스러울 거면 낳지 말지."를 수없이 되뇌며 나의 유년기는 숱한 밤을 고통 속에서 잠들어야 했고, 자다가 죽어서 다음날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억지로 참기도 했다. 살아 있음은 지옥이었고 축복임을 믿지 못했다.
은혜님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울 줄 몰랐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부모로서 그 말을 듣는 순간은 얼마나 찬란하고 벅찰까. 그 한마디에 수많은 밤, 눈물과 고통, 인내와 사랑이 고스란히 보상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지켜낸 모든 이유가 한 줄의 말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은혜님의 부모님은 장애를 가진 자식이 사회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멋지게 길을 닦아준 분들이다. 장애인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삶을 이뤄낸 은혜님도, 그 길을 가능하게 열어준 부모님도 존경스러웠다.
1992년 8월,
'낳음 당함'은 내가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방식은 내 선택이 되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우리는 의미 없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의미를 만들어간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삶에 대한 수동적 수용이 아닌, 능동적 재해석의 결과다. 태어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살아가는 것은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에 가치를 부여한 끝에서야 나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남을 원망해 온 내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를 책임져주지 않았다는 상처에서 비롯된 원망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언젠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감히 욕심 내어 본다.
‘왜 태어나게 했어.’가 아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을 자격 있는 부모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