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데이트랜드

by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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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고궁을 걷다가 그림 하나를 생각합니다.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이 있어요.
옛 북송 시절의 개봉을 그려낸 그림입니다.
천여년 전 사람들이 그 안에서 평화롭고 때로 복작거리며 거리와 운하와 교각을 가득 메우며 다니지요.

고작 십수년 후,
북방의 철기들이 몰려와 폐허가 될 것을 모른 채.


수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 그림에 담긴 정취와 생동과 애잔을 탐해 모사했다고 합니다.
원작을 그린 한림학사는 정경을 보며 그린 것이 아니라
금제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 임안으로 피난해 기억에 의지해 그림을 그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고궁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가끔 경비만 오가는 이 한적한 장소에 수십, 수백, 수천의 사람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을 거에요.
고궁을 그린 그림 속에 담긴 상황이 현실로 생생하게 움직이던 광경이 있을 테지요.


옛 사람은 산천은 유구한데 사람은 간데 없음을 슬퍼했습니다.

오늘날 산천도 옮겨버리는 시대에 남은 것은 옛 사람들의 기억 뿐입니다.


밤의 고궁을 걸어 나오며 다시 그림을 생각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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