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잊고 있었던 그 이름

내게 주는 선물

by 도깨비

2015년 12월.

#브런치, 먹는 건가요..?

2015년, S 대기업 5년 차 회사에서 슬럼프에 허우적일 때 내가 멘토로 따르던 선배(YJ)가 물었다.

YJ: 퇴근 후엔 뭐하니?

나: 뭐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그러죠~

YJ: 그럼 기분 전환이 되니?

나: 잠깐은요, 그 순간 만큼은

YJ: 흠, 그럼 좀 더 근본적으로 네가 오롯이 좋아하는 걸 해 봐, 너 글 잘 쓰잖아.

나 : 선배ㅎㅎ 제가 회사 보고서야 좀 쓰지만 글이라니 너무 거창 한대요.

YJ: 암튼 브런치라는 새로 나온 플랫폼이 있어, 글에는 힘이 있어, 순간이 아니라 축적되는 거니까.

내가 보기에 너한테 필요한 건 순간의 해소가 아니라 축적의 힘인 것 같다!

나: ?^^;

* YJ는 내 글에서 이후에도 가끔 등장할 멘토 선배이다.


그러고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여라도 누가 볼까 스마트폰을 바짝 내 몸 쪽으로 당겨 '브런치'를 검색해서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유치원생 시절엔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와 삽화를 그려냈고, 초딩 6학년 시절엔 방학숙제로 나온 글짓기에 혼자서만 왕진지 모드로 수필을 집필하여 시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금상까지 받았던 작가 꿈나무였다.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대기업의 노예가 된 나였지만 말이다.

이제 사회인이 된 내가 다시 한번 글을 좀 써볼까나 의욕이 샘솟던 찰나,

그런데 작가 신청이라니! '안되면 어쩌나..

그냥 혼자 쓰지 뭐, 블로그를 만들어도 되고'라는 초라한 자위를 하며

푸시시.. 내 마음의 불씨 하나가 그리도 쉽게 사그라드는 소리가

퇴근길 지하철에 앉은 내 이어폰 사이로 삐져나왔다.

그렇게, 달랑 브런치 계정 하나만 생성해두고 미뤄두기 대마왕인 나 답게.. 몇 년 간 그 이름을 잊고 지냈다.

종종, 내가 알던 그 Brunch를 맛있게 먹으면서 말이다..


#퇴사 그리고 코로나 19,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8년 나는 야심차게 사직서를 던지고 유학길에 올랐다.

(혼자 보기 아까운 나의 회사생활 경험과 퇴사 스토리, 그리고 중국에서의 경험은 별도로 연재할 예정이다.)


코로나 19 라는 웃지 못할 재난 상황에 중국에서 석사 유학을 하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설날을 보내로 온

나는, 바이러스의 파도 속에서 절친과 좋아하는 사람들, 업무 계획 차 만날 분들을 만나자고 하기도 머쓱하여 오롯이 가족들과 자발적 격리를 하며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마스크를 사러 동네 약국에 나가 줄을 서는 것 말곤 똑같은 방콕 생활 속 무료함에 질려갈 때쯤,

아는 동생이 브런치의 작가님 글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다양한 주제로 어찌 보면 두서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글을 시간 가는지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5년 전 그 때, 글을 쓰기 시작하지 못했을까?

난 늘 거창해야만 했다. 목표도, 그 과정도, 걱정도..

누군가 내 글에 관심이 있을까? 정기적으로 연재하지 못하면 어쩌지? 등등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시작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출장, 여행, 가족이야기, 학업, 퇴사, 장학금 등등에 관련된 휴대폰 속의 수많은 사진과 글을 쓰기에 좋은 재료들은 용량을 견딜 수 없다고 아우성 쳤지만, 그렇게 어느새 내 컴퓨터의 64GB 좁은 메모리 틈을 비집고 묵은 짐들이 되어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가끔 읽는 심리학 서적에서

게으른 나에 대해 자위(自慰)할 수 있는 문구를 보고 너무나도 공감하면서

내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것 같다.

요즘 너무나 유명하신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서도 얘기하신 것처럼 말이다.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완벽하고 싶어서, 더 잘 해내고 싶어서,

그렇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2022년 4월,

#선물,

석사 졸업과 창업과 또 많은 이들과의 관계의 시간 속에서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왜 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다.

그냥 그저, 시작해보면 된다고.

묵은 짐들을 하나씩 풀어내어 귀 기울여 보자고.

나 스스로에게 글 쓰는 공간을 선물해주면 된다고.

특별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내 삶의 일부를 축적해 나가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조그마한 지표가 되어 희망을 주는 공간,

그 공간과 시간의 축적이 주는 힘을 믿어보면 된다고.

반갑다, 다시 만난 브런치:)

그리고 시작해보세요, 그대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