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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Oct 23. 2024

6755호실(17)

마음의 채무(債務)

 언제나 여름은 내겐 쉽지 않은 계절이었다. 4계절이 뚜렷한 온대성기후라는 이 나라의 여름은 지나치게 습했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건조된 나의 몸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노인들 신경통처럼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물론 목수의 치료 덕분에 조금 나아지기는 했어도 내 속사정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그렇게 시원찮은 몸을 혼자 타박하는 차에 국일이 커다란 기타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때때로 율이 기타를 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율의 기타는 소파 구석에 대강 놓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저렇게 커다란 악기를 등에 지고 다니는 모습을 처음 보아서 신기하고 놀라웠다. 무엇보다 율이 기타를 칠 때마다 배우고 싶어 하던 사람은 젠이었지 국일이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젠이 기타를 사서 율에게 배우겠다고 했지만 젠이 기타를 가져온 적은 없었다. 


국일은 기타를 꺼내 자그마한 조율기를 붙이고 능숙하게 줄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딩딩거리더니 만족한 얼굴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치는 게 아니라 뜯는 게 맞았다. 한음 한 음 손가락으로 튕겨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몇 번이고 반복했으니. 나는 국일이 언제쯤 곡을 들려주려나 기대하며 기다렸다. 한참을 계속해서 음계만 튕기던 국일이 마침내 기타 책을 꺼내 들었다.


“드디어 시작했나 봐.”

한 시간이나 지났을 때 율이 들어왔다. 손에는 맥주 캔이 몇 개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편의점에 얼음 잔이 없어. 이 더위에 그냥 마셔야 하나?”


“아직 괜찮아. 냉장고에서 꺼내왔을 거 아냐?”

국일이 기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추진력 짱이네. 얼마나 된 거야? 동네 기타 학원에 등록했다더니.”

율이 맥주 캔을 따서 권했지만 국일은 사양했다. 그녀는 기타 책을 보는 게 대단히 중요해 보였다. 할 수 없이 율은 혼자서 마셨다. 


“뭐야. 클래식 기타야? 와~! 그 나이에 클래식 기타를 하시겠다? 혹시 전에 기타 친 적 있어? 너무 생각 밖이네.”

율이 국일의 기타 책을 들여다보다 소리쳤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율의 소리는 많이 컸다. 

율은 국일의 옆에 바짝 붙어서 맥주 캔을 홀짝거리며 그녀의 책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국일도 곁을 내주어 율이 책을 마음대로 넘겨 볼 수 있게 했다. 아니 아예 율이 책을 독점하고 국일은 한쪽으로 옮겨 앉았다. 


“이걸 하겠다는 거지? 대단하다.”

율의 이야기에 국일은 빙긋 웃었다. 


“그냥 로망스를 완주하는 것까지만 하겠다고 했어. 그 곡 하나만 목적이야.”

국일의 이야기에 율이 국일에게 다시 맥주를 권했다. ‘이거 마시고 정신 차리셔.’ 그런 느낌이었다. 


“알아, 알아. 좀 터무니없다는 거. 그런데 네 말대로 이 나이에 하고 싶은 곡 하나 못 치는 것도 좀 억울하지 않니? 그냥 외워서라도 하고 싶다는 거지.”

율은 국일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런 율을 보며 국일이 손을 내밀었다. 


“손 좀 줘 봐.”

무슨 소리냐는 듯 율이 오히려 손을 움츠렸다. 그러나 국일은 율의 손을 강제로 끌어다가 손가락을 주욱 폈다. 그리고 율의 손 옆에 자신의 손을 펴서 놓았다. 마디가 짧고 통통한 율의 손가락과 도톰한 손등은 아기 손 같았다. 반면에 국일의 손가락은 매우 길고 살이 없었다.


“그렇구나.”

국일의 중얼거림에 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을 빼냈다. 


“뭐가요?”


“기타 선생님이 내 손톱을 깎아 주셨거든.”

율의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막 튀어나오려는데 국일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 선생님한테 우리 둘째가 기타 레슨을 받았어. 벌써 5년쯤 전인 것 같은데 기억하시더라고. 누구 어머님이 아니냐고. 그러면서 손가락도, 손톱이 얇은 것도, 기타 주법도 참 닮았단 얘길 하시더라고.”


“그렇다고 손톱을 깎아줘요? 그것도 남자가? 그런데 괜찮았어요?”


“뭐가? 개방된 곳이고 아이들이 여러 명 드나드는 곳이야. 내가 있는 동안에도 사내애들 몇이 선생님한테 장난치고 가던데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손톱을 깎아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진지했어. 그곳에서 레슨 받는 사람들에게 다 그렇게 하시는 것 같아.” 

율은 자신의 손톱과 국일의 손톱을 의식적으로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손톱의 생김새부터 너무 차이가 있어서 사실 비교는 의미가 없었다.


“선생님이 내 손톱을 깎아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악기에 대한 혹은 음악에 대한 헌신? 그런 느낌. 기타의 줄을 누르고 튕기는 중요한 도구인 손톱을 정중히 대하는 태도 같은 거였지. 사실 내 손톱인데 내가 막 깎아도 되는 거잖아. 그런데 손톱을 공식적인 악기로 등록한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어. 선생님 말로는 애들 손톱이 너무 길거나 비뚤어지게 자른 상태라 자신이 깎아주기 시작했대.”


“그렇다고 국일이 애들은 아니잖아요? 이상할 거 같아. 나 같으면.”


“그렇지 않다니까. 특별한 경험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좋은 기억.”

국일은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기타를 잡았다. 음계를 몇 번이고 반복하더니 여덟 마디 정도의 곡을 뜯기 시작했다. 가다가 다시 하고 다시 하길 거의 열 번도 넘게 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던 율은 국일에게 권했던 맥주를 자기가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왜 기타를, 그것도 클래식을 선택한 거예요? 로망스가 최종 목표라는 그런 얘기 말고.”

율의 질문에는 무심한 채 국일은 거의 한 시간을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습을 했다. 기타 줄에 닿는 희고 마른 손가락 끝이 불그레해서 내가 보기엔 아플 것 같았다. 


“수 오빠가 와서 연을 만들더니 이젠 국일이 기타를 치는 이 작업실의 무궁한 정체성이 재밌네.”

율의 말에 국일이 활짝 웃었다. 


“내가 기타를 친다니까 우스운 거지? 그런데 사연이 있지.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리사이틀을 하겠다고 기타를 배우겠어?”

율은 더욱 궁금해졌다. 율의 손에 있던 맥주 캔은 이미 찌그러뜨려지고 있었다. 


“무슨 사연? 이젠 사연이라면 겁나더라.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냐며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다 묵직한 돌덩이 같은 사연들을 하나도 아니고 몇 개씩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참 딱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국일에게 이혼보다 더 큰 사연이 있어?”

이혼이란 말에도 국일의 얼굴에선 웃음이 걷히지 않았다. 확실히 극복된 것이라고 확신한 율은 조금 더 다그치기로 했다. 율의 재촉에도 국일은 다시 한번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습을 했다. 국일의 지나친 성실성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나와 율은 그녀의 일관된 태도에 놀랐다.

 

“얘기가 길어.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국일은 맥주 대신 커피를 달라고 해서 율은 하는 수 없이 더위에 물을 끓였다. 


“달달한 거? 노랑이죠?”

믹스 커피를 묻는 율의 질문에 국일이 행복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내가 대학 때 신문사에 있었는데 이웃 대학들이랑 기자들 모임이 있었어. 그냥 술 마시고 주정하고 무한정 떠드는 그런 모임인데 공대 편집장이었어. 그 사람이.”


“전남편 말고 썸씽이 있었단 얘기?”

율이 커피를 건네며 한 농담에 국일은 반응 없이 커피만 받았다. 


“그때 난 이미 애들 아빠와 만나고 있었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공대 편집장이 너무 못 생긴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그다지 추남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그땐 그랬어. 그 사람이 딱히 내게 어떤 시그널을 주긴커녕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도 알겠더라고. 저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진행되던 어느 날 모임에 그 남자가 기타를 가져왔더라고. 어떤 사람을 위해서 연주를 하겠대. 다들 손뼉 치고 야유하고 난리 났었지. 나라고 지목한 것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그 어떤 사람이 나라고 생각을 한 거지. 그 모임의 모든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재수 없어. 지금도 예쁘니 그땐 말해 뭐해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니 하등동물이 맞아.” 

국일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율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듣는 나도 흥미가 생겼고 저렇게 아름다운 국일에게 바람난 전남편 말고 다른 로맨스가 없었다면 그건 참 아까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로망스를 뜯기 시작하는 거야. 너도 기타 치니까 알겠지만 로망스가 기타리스트들에겐 초보라며? 그건 나중에 안 사실이고. 그런데 얼마나 잘 치는지 그 감미로움에 마음이 다 녹아버리는 거야. 하마터면 내가 고백이라도 할 것 같았어. 그러더니 자기는 기타를 잘 치지는 못하나 그냥 어떤 사람에게 헌정한다고 하면서 그 곡 하나 하고는 가버렸어.”


“끝이에요? 그럴 리가.”

율이 아쉬워했다. 나도 그랬다. 


“몇 년이 지나 졸업하고 결혼하고 하느라 모든 기억을 잠가 놓은 상태에서 초대장이 하나 온 거야. 기타리스트 아무개 독주회라고 되어있는 초대장을 본 순간 난 깜짝 놀랐어. 그 남자, 공대 편집장이던 그 남자였거든.”


“갔어요? 연주회? 당연히 가야지.”

국일은 고개를 저었다. 저런 안 간 모양이군. 나도 안타까웠다. 


“나는 안 갔고 다른 친구 통해 전해 들었어. 굉장한 실력자라고 하더라고. 그 이후에 기타를 배웠는지 아니면 공대 편집장 시절부터 잘 쳤던 건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독주회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그 남자의 마지막 앙코르 곡이 로망스였다는 거야. 어떤 사람에게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이쯤에서 국일의 얼굴은 급속히 어두워졌다. 난 해가 지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나 국일만 어두웠다. 


“그럴 수 있지 뭐. 그런데 그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표정이 되게 슬퍼 보여요.”

율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국일을 살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슬프다기보다는 미인들이 그렇듯 옅은 수심이었다. 그랬음에도 율이 슬프다고 했으니 슬픈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다음 소식은 몰라. 나도 정신없이 살았잖아. 그러다 작년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어. 폐암이었다나. 담배를 엄청 피워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가족이 없다는 거야. 결혼을 안 했거나 못했거나. 그 장례식에 참석했던 친구 하나가 내게 낡은 기타를 보내왔더라고. 누가 봐도 오래된 것이었지만 길이 잘 든 명기(名器)였어. 물론 그 남자가 내게 그걸 보낸 것은 아니라고 해. 그런데 모임에서 친구들이 내게 보내주기로 합의했다나.”

국일의 말에 율은 감동한 듯이 손을 모았다.

 

“그렇다면 꾸준히 만난 친구들은 그 공대 편집장이 국일을 엄청나게 끝까지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는 거네요. 그럼 연락 좀 해 주지. 너무 하다.”


“아니,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만 내게 낡은 기타가 왔다는 것. 그것만이 사실이지. 그때부터였어.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배워서 연주를 하고 싶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나도 그에게 헌정해야겠단 생각이 드는 거야. 아니 내가 너무 타인의 감정에 무심했구나 싶은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다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며 국일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쓸쓸했다.


“그게 왜 자책할 일이에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그 아저씨 탓이지.”


“아저씨라고 하지 마. 내 기억에는 못생긴 공대생이야. 그 사람에게 너무 무관심했지.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내가 철옹성이었던 거야. 교만하기 이를 데 없이.”

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예쁘면 교만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지.   

  

국일의 이야기는 내게 또 새로운 의문을 남겼다.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상처는 잘 회복되지 않는구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때로는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는 마음의 씀씀이는 어떻게 훈련해야 되는 것일까? 아니 훈련이 가능한가? 나처럼 볼 수 없는 세월을 숫자로 보여주는 기계가 생각할 일은 아니었으나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국일이 얼른 로망스를 완주해서 세상에 없는 공대 편집장에게 바치고 마음의 채무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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