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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냥

by 안개인듯

짙은 녹색 패딩을 걸치고 남편의 요양원을 찾았을 때는 한낮이었다.

햇살 좋은 정원에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해바라기 하는 몇몇 노인이 있었다. 면회 온 가족과 함께였다. 나도 남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요양원 측에서 말렸다.

너무 쇠약해지셔서 잔바람에도 감기 드셔요.

하는 수 없이 유리 온실처럼 볕만 들어오는 요양원 테라스에 머물렀다. 테라스에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고 온 두 명의 노인이 역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털실로 뜬 모자가 이마까지 내려와서 겨우 눈이 보였는데 그마저 반절이었다. 눈을 좀 크게 떠보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답답하고 불쌍한 마음에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파랗게 갠 겨울 하늘에 보얀 비행운이 그려졌다.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아. 저기.”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남편을 바라보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동그랗고 가벼운 나침반이 만져졌다. 그러자 나침반을 들고 온 내가 어이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 반응이 없는 사람에게 뭘 어쩌자고 나침반을 챙겨 왔을까, 나는.

가는 길에 기필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겠다고 결심했다.


하늘에 그려진 비행운이 점차 안개처럼 사라져 갈 무렵 남편에게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이라기보다는 신음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신음도 아니었다. 나는 신경을 써서 귀를 기울이다 흠칫 놀랐다. 남편이 말을 했다. 두 번쯤 반복한 것 같았다.

“고 마 워.”


말을 잃은 것은 나였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

나침반만큼이나 어이없었다. 나는 결국 큰 소리로 물었다. 뭐가요?

내 말이 들렸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남편은 다시 반복했다. 반쯤 감은 눈으로.


“고 마 워.”


그리고는 눈을 스르르 감고 잠에 빠진 것처럼 잠잠해졌다.

옆에 있던 노인 하나가 ‘저 양반이 말을 할 줄 아네.’라고 중얼거렸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매일을 지났단 말인가. 하긴 내가 올 때마다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남편을 다시 병실로 밀고 가는데 끊어질 듯 이어진 그 단어가 가슴에 걸려 가래처럼 그르렁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고마울 것이 없는 남편이었다. 고마운 쪽으로 따진다면 내가 백번쯤 말해도 시원찮을 정도였을 텐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요양원을 나와 벤치에 앉았다. 햇볕은 따스해도 겨울이었다. 잠깐씩 스치는 실바람도 상당히 매서웠다. 해바라기 하던 노인들은 다 들어가고 정원은 비어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가 울었다. 눈을 들어 살피니 건너편 높은 나무에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햇빛을 받아 온통 검은 몸이 새카맣게 빛났다.


“저거 까마귀 맞지? 과연. 정말 멋지지 않아?.”


서울로 이사 온 첫 해 겨울, 여준의 손에 이끌려 공원에 오른 나는 추워서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공원엔 찬바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변변한 겨울옷도 없던 우리는 교복인 검정 코트를 입고 있었다.

“숙, 많이 추운가 봐. 내 코트 줄게. 난 괜찮은 거 같아.”


여준이 코트 단추를 풀며 내게 건넨 말이었다. 정말 벗어 주기라도 하려는 거야?

나는 정말 추웠지만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온 여준의 말에 그만 화가 나고 말았다.

“너라고 달라? 우리 둘 다 속에 내복과 스웨터 하나 입었는데 안 춥다고? 그냥 내려가자. 무슨 청승이야. 이 추위에.”

그러나 여준은 늘 그렇듯 경쾌하게 웃었다.

“저 까마귀를 보니까 내가 너무 많이 입은 것 같아서 그랬어. 뭐가 추워? 재는 깃털 하나로 사계절을 지내는데. 그러니까 정말 안 추운 것 같아. 정말이야. 벗어줄게. 벗어주고 싶어.”

나보다 십분 늦게 태어났다는 동생 여준은 결국 자기 코트를 벗어 내게 걸쳐 주었다.

그리고는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체온을 나눴다.

“거 봐, 너 춥잖아.”

내 잔소리에도 여준은 더욱 들러붙어서 힝힝거리며 웃었다. 좋잖아. 난 네가 좋아.

“너무너무너무 고마워. 숙. 사랑해.”


여준은 느닷없이 나를 꼭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옷도 벗어주었는데 뭐가 고맙다는 건지 나는 여준을 밀어냈다.

“야, 오버하지 마. 뭐가 고마운데.”


그때 여준은 얼굴을 내게 들이밀며 내 코를 집게손가락으로 치켜들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가 언니라서. 또 나랑 같이 엄마 자궁 속에 있어줘서. 아니, 아니다. 난 그냥 네가 좋아서 그냥 매일 고마워. 네가 있는 게 고맙다고. 바보야, 그걸 몰라서 물어?”


그때 처음 들은 인상적인 말이었다. 그냥 고맙다는 말을.

“감동했어? 숙? 정말이야. 네가 있는 게 고맙다고. 그래서 즐겁고.”

자기가 벗은 외투를 이불처럼 함께 둘러쓰고 놀리듯 장난치던 여준은 다시 까마귀에 집중했다.

“숙, 까마귀가 얼마나 멋진 새인지 몰라. 일단 외형에서 난 뿅 갔어. 한라산에도 까마귀가 산다잖아. 그 차르르한 검은빛에 흐르는 오묘한 청록색, 차디찬 그 색이 어쩌면 그렇게 귀족적일까.”

까마귀는커녕 어떤 새에도 관심이 없는 나는 그래도 한 마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시체를 먹는다는 데 그게 넌 괜찮아? 난 싫어.”

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또 웃었다.

“숙, 그건 걔가 그렇게 태어난 건데 뭐. 까마귀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 멋진 청소부지. 난 까마귀를 그릴 거야.”

여준은 계속해서 재잘거렸는데 더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았다. 다만 여준이 한동안 까마귀를 그린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인가에 마음이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 나와 달랐다.

당시에 우리는 입시 미술을 하느라 데생으로 하루 종일 아그립바와 싸우고 있었지만 여준은 틈나는 대로 까마귀를 그렸다.

“와, 저 생명 없는 서양 석고상을 왜 계속 그려야 하지? 미쳐버릴 것 같아.”


여준의 말을 생각해 보면 그때 여준의 미칠 것 같은 정신세계를 지탱해 준 것이 까마귀였다.

여행하는 까마귀, 까마귀가 있는 공원. 까마귀가 사는 마을. 까마귀와 느티나무. 까마귀와 나. 까마귀의 비상.

여준은 그렇게 까마귀 연작을 그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구도와 색감이었다. 까마귀는 거의 검정 바탕이긴 했으나 각 까마귀마다 청색, 홍색, 녹색, 노란색이 가미된 그 솜씨는 가히 천재적이었다.

어떻게 저런 색을 쓸 용기가 있을까. 아니, 만용인가? 누가 저걸 까마귀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보면 분명 까마귀가 틀림없었다.

까마귀 그림 중 유독 욕심나는 것이 있었는데 ‘까마귀와 나’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인물은 분명히 여준 자신이었지만 나와 똑같아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겉모양이 똑같은 일란성쌍둥이가 내면은 이렇게도 다를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되뇌곤 했다.

그리면 되잖아. 나도.


그러나 나는 단 한 작품도 까마귀를 그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리지 않기로 작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준이 갖고 있는 창작의 핵이 내 안에는 아예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여준은 내게 먼 존재가 되어갔다.

고맙다니.

도대체 내게 뭐가 고맙다는 거야.

넌 왜 그랬을까. 아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게 왜 난 그렇게 싫었을까.

요양원의 겨울 정원에 혼자 앉아 난 여준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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