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판결의 의의
1. 사건과 심급별 판결의 개요
배수지는 ‘수지’라는 예명으로 활동해 온 유명한 연예인이다. 여성이다. 상당한 기간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했다. 가수, 탤런트, 배우, 방송 진행자뿐 아니라 의류와 화장품, 전자제품 등 다양한 제품 광고의 모델로도 활약했다. 2012년 출연한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 이후 수지는 ‘국민 첫사랑’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15년 11월 개봉된 사극영화 ‘도리화가’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40대 남성 이 아무개는 2015년 10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한 뉴스에 댓글을 달았다. 댓글 내용은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 폭망 퇴물”, “제왑 언플 징하네” 등이었다. 이 아무개는 수지를 모욕한 죄로 재판을 받았다. 1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은 모멸적인 표현으로서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다며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아래 <표 1>에서 보듯이 재판과정에서 4개의 표현이 문제가 되었다. 1심 법원은 4개의 표현이 모두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연예인’이라는 점, 표현 방법이 ‘인터넷 뉴스에 대한 댓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표현의 자유 보호 영역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법원은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표현의 모욕죄 여부는 비연예인에 대한 표현과 언제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 연예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정도, 연예인·소속사는 스스로 대중의 관심을 추구하고 관리하는 점, 인터넷 뉴스의 댓글이라는 매체적 특성,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회 통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모욕죄와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으므로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비판·풍자·패러디를 모욕죄로 형사처벌 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밑줄 필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퇴물’이라는 표현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표현은 모욕적이거나 모멸적인 언사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해 ‘거칠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퇴물’이라는 표현이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긴 하지만, 전체 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사용된 맥락을 고려할 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표 1> 뉴스 댓글 표현에 대한 심급별 모욕죄 구성요건 및 위법성
2.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대법원은 대상 판결에 5개의 기존 판결과 헌재 결정 1개를 인용했다. 대법원의 주요 판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 성립하는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 법익으로 한다. 모욕죄의 ‘모욕’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의 한계 설정은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인지, 표현이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은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
셋째,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사적 법익·인격권의 보호라는 두 법익이 충돌할 때는 양자를 비교 형량해서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해야 한다. 표현 행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표현이나 타인의 신상에 관해 인격권을 침해하는 표현은 의견 표명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넷째, 다의적인 표현이나 신조어의 경우 표현의 경위·동기, 피고인의 의도, 표현의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 등을 고려해 용어의 의미를 확정한 후 모욕적 표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다섯째, 표현이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면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가 성립하므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지위와 관계, 모욕적인 표현의 맥락과 전체 내용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당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섯째,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한 모욕적 표현을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모욕죄 구성요건을 부정하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밑줄 필자).
일곱째,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혐오 표현이 적지 않으므로, 그러한 범위에서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로 기능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언플이 만든 거품’, ‘제왑 언플 징하네’, ‘영화 폭망 퇴물’ 등의 표현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으로 표현의 자유 보호 영역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냥 국민호텔녀’ 부분은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현의 사용 경위와 맥락, 구체적인 내용을 종합할 때 ‘국민호텔녀’는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에 대한 모멸적 표현으로서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나 정당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호텔녀’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들추어 피해자의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4개의 표현이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원심판결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3. 평가와 전망
대법원은 최근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언사라고 유죄 판단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여러 차례 파기한 바 있다. 이를테면, 버스 노조위원장 등에 대해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사건(2022.10.27.선고 2019도14421판결), 노조 지부장은 ‘정말 야비한 사람’ 같다고 표현한 사건(2022.8.31.선고 2019도7370판결), 공공기관장에 대해 철면피나 양두구육, 극우 부패 세력이라고 표현한 사건(2022.8.25.선고 2020도16897판결), 인터넷 신문 기자에 대해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고 표현한 사건(2021.3.25.선고 2017도17643판결) 등이 그러하다.
이들 판결에서 대법원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예의에 벗어난 표현’이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욕설이 사용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욕죄가 부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인터넷 댓글이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해 표현한 경우로서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다면 모욕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 판결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짧은 글에 포함된 모욕적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이자 신조어인 ‘기레기’ 표현에 대해서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대법원의 대상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2020.12.23.선고 2017헌바456 등 결정을 인용한 것은 향후 대상 판결이 모욕죄로 규율할 수 있는 혐오 표현에 대해 중요한 적용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는 2011.6.30.선고 2009헌바199결정, 2013.6.27.선고 2012헌바37결정을 비롯해 여러 차례 형법 제311조 모욕죄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020.12.23.선고 2017헌바456 등 결정에서, 모욕죄가 현실적으로 혐오 표현에 대한 일종의 제한,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우리 사회가 인종, 성별, 출신 지역 등 특정한 속성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 문제에 직면해 있고, 피해자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혐오 표현을 적절하게 규제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형사처벌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혐오 표현에 대해, 모욕죄로 형사 처벌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모욕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표현에 대응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헌재가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의 대상 판결은 헌재의 이러한 진단과 제안을 수용했다고 할 것이다.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의 경우 피해자의 ‘호텔녀’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이라는 단어를 앞에 배치했고, 후단의 ‘호텔’은 남성 연예인과 스캔들을 연상시키도록 사용했다고 대법원은 파악했다. 이는 ‘여성’ 연예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모멸적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또 대상 판결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연예인의 인격권 보호 간의 이익 조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대상 판결에서 법원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 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간주해 모욕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정당행위로 판단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시의 의미는 ‘판단의 신중성’에 대한 원심의 판시와 비교해 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
원심은 공적 인물이나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의 명예와 사생활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헌법 체계 내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차지한 위상이나 뉴스 댓글의 특성,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의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의 모욕죄는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원심은 특성상 ‘댓글’ 등을 통해 의견과 사상을 교류하는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 ‘질서위주’의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설령 모욕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모욕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대상 판결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 표현’은 이러한 범주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는 입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이미 1년 이하의 징역형이라는 ‘강력한’ 형사처벌 조항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에서 ‘모욕죄’ 발생 건수는 해마다 크게 증가해 왔다. 정보통신망상에서 발생하는 모욕죄 사건의 증가가 가파르다. 즉 공권력에 의한 법적 처벌 장치만으로는 죄가 되는 인터넷상의 모욕적 표현을 억제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처벌되어서는 안 되는 표현까지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사이버 상의 ‘혐오 표현’을 형사처벌하려는 입법적 시도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용자나 사업자의 자율적 규제 시스템으로 ‘혐오 표현’이나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혐오 표현’의 문제를 대응하는 것이 더 현실적, 효율적일 수 있다고 본다. 포털 사업자들의 자율정책 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정보통신망의 혐오 표현에 대응하는 것은 다행스럽다.
KISO가 준비하고 있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혐오 표현은 인종, 국가, 민족, 지역, 나이, 장애, 성별, 성적 지향이나 종교, 직업, 질병 등 특정한 속성을 이유로 해당 집단이나 그 구성원에 대해 차별을 정당화, 조장·강화하거나 폭력의 행사를 선전, 선동하는 표현을 말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KISO의 자율정책이 ‘모욕죄의 구성요건’과 ‘혐오 표현’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표현을 줄여 나가는 데, 그리하여 다소 거칠고 무례한 표현을 이유로 온라인 이용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불행한 사례들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의 대상 판결에 따르면 어떤 표현이 특정한 속성, 특정한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이면서 동시에 ‘모욕죄’를 구성하는 경우 국가형벌권은 언제든지 개입할 태세를 이미 갖추었다.
모욕죄의 위헌 심판 결정에서 소수의견이 여러 번 우려했듯이,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최소한의 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비판·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수준의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며,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왜곡하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는 한편, 이용자와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줄 때가 되었다.
※ 이 글은 KISO저널https://journal.kiso.or.kr/ 제50호 <법제동향>에 실린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글(https://journal.kiso.or.kr/?p=12162)을 재인용했습니다.
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발행 KISO저널 제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