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 있다.
이 책은 다양성의 가치 속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리더십의 덕목으로 ‘지적 유연성’을 제시하고 있다.1 본문만 총 420페이지에 달하는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전개였지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 어절로 명료하게 표현된다. “다시 생각하라!”. 책의 주제를 필자의 눈으로 이해하자면 나의 생각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여는 법을 알아보자는 것이다.2 의견이 다른 상대와 춤을 추듯 토론해보라는 설득도 인상적이다. 다만 이 책은 사고의 접근방식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비판적 사고를 즐기는 독자가 아니라면, 주제가 반복되는 지루함을 참기 힘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빌게이츠의 추천사로부터 기대감이 고조됐는데, 바로 넘치는 정보와 디바이스의 간섭 속에서도 ‘배움’과 ‘탐구’하는 문화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근성 있게 생각하는 재미야 다시 생각하기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향으로 유연성을 판단하기 쉽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이면에는 어쩐지 딱딱하다는 뉘앙스가 있다. 그런데 이성적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이성, 즉 논리와 데이터 속에서 자기 견해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3 사람이 항상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현실에서는 누구나 제 판단의 근거를 뒤집어볼 상황에서 도리어 당황하거나 방어적이기 십상이다. 또한 사회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은 자리일수록 과거의 발언과 행동을 인정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자신이 고수해온 믿음과 가치관에 대해서 반문하고 재확인한다면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내 것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지적 유연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오래전 엘빈 토플러가 21세기의 문맹자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 과거의 판단을 탐구하고 오류를 인정해 걸러낸다면 한층 나은 미래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실재적인 제안
이 책은 스스로 다시 생각하기와 타인과 협력해 다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어서, 실전 상황에서 적용해볼 만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책의 주제는 누군가에게는 관념적인 개념에서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소개된 정수를 옮겨보기로 한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삶을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데, 이를 직업적인 경력에 국한해버린다면, 그 계획 이외 다른 대안에 대한 선택지가 없어지니 주의해야 한다.”4
터널시야(tunnel vision)는 그 계획 이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린다고 한다. 즉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자아상은 달라지니 너무 하나의 목표에 자신을 고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둘째, “전심전력으로 향하는 계획이 있을 때,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처음 계획에 집착해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그 계획을 다시 한 번 따져보아야 한다.”5 몰입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은 자기합리화에는 좋을지 몰라도, 피할 수 있었던 실패를 피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셋째, “인생에서 무엇을 하기로 정하고 나면 그 일은 곧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점검하라! 일, 배우자 후보 모두!”6
‘정체성 유실’은 우리의 진화를 가로막는데, 저자는 스무 살에 계획한 커리어에 가장 확신을 가진 학생이 서른 살에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사회초년생일 때 시작한 일을 지금껏 해왔다면 그 일이나 직장이 정체성인 것처럼 되어버리니 건강검진을 하듯이 경력, 진로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점검할 것을 권한다.
넷째, “행복에 대한 기준을 공동체와 연결해보자.”7 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는 의미 있는 일로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인생의 자유와 의미는 자신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행복, 인류애, 예술, 이상 등의 추구에 둘 때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이상 추구’ 부분은 일반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자유에 관한 고전인 『자유론』을 세상에 내놓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행복에 대한 논의가 왜곡된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민주주의 시민의 덕목으로서 절실해 보인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는 한 가지 방법
동시대 현대인은 인공지능의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증폭된 환경에 놓여있다. 사소한 일상사를 기계에 맡길 생각에 흐뭇해지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인간의 일자리와 역할을 내어주고 있다. 대체로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을 ‘합리적 에이전트’라고 칭해왔다. 합리성이란, 여러 가지 상황과 사실을 고려했을 때 가장 좋고 유리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인공지능의 위력도 대단하지만)합리적 에이전트의 모델은 인간의 이성이다. 어쩌면 다시 생각하기의 힘이야말로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인간의 장점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에게 의미와 소속감을 주는 것은 환경보다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며, 그것은 사고가 조정하는 배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틀렸을 때의 기쁨을 맘껏 누리려면 분리(detachment)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바로 나의 현재에서 과거를 분리하는 작업 다음에야 비로소 겸손히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신했던 지식에 의심을 품고 이전에 폐기했던 가능성을 재고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인공지능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처음 생각한 답보다 고친 답의 정답률이 높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마지막으로, 저자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받아 적용하는 차원에서 책의 주제인 ‘다시 생각하기’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나온 수많은 예시 중에서 끝까지 검증해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최초 직감의 오류(first-instinct fallacy)를 제시해 심리학자 세 명이 33개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모든 논문에서 처음 선택한 답을 바꾼 뒤 정답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8 다시 생각하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사용된 근거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해서 의문이 남는 것은 처음 고른 답은 마지막 선택지에 이르기 전에 잠정적으로 고른 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인생의 모든 선택의 상황을 시험 상황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책을 보고 정답에도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왕이면 이 가정을 다루는 연구들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원서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Adam Grant, Think Again, Viking(2021). [본문으로]
2. “learn to question on your opinions and open other people’s minds.” [본문으로]
3. 이 책 176쪽. [본문으로]
4. 이 책, 360~366쪽 재구성 및 요약. [본문으로]
5. 이 책, 366~367쪽 재구성 및 요약. [본문으로]
6. 이 책, 372~379쪽 재구성 및 요약. [본문으로]
7. 이 책, 381~384쪽 및 385~387쪽 재구성 및 요약. [본문으로]
8. 심리학자인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 가을학기에 심리학개론을 수강한 1561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처음에 적은 답을 바꿀 때 지우기 마크에 표시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보게 한 후 처음의 답을 교체한 총 3,291개의 문항에서 고친 답의 51%가 정답률을 보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 이 글은 KISO저널https://journal.kiso.or.kr/ 제51호 <문화시평>에 실린 이희옥 KISO저널 편집위원의 글(사소하고 하찮은 의심은 없다 | KISO저널)을 재인용했습니다.
글 이희옥
KISO저널 편집위원
발행 KISO저널 제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