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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SO저널 Aug 23. 2024

왜 디지털 세상의 미래 예측은 어긋날까?



디지털과 인공지능 세상에서는 변화의 속도와 파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다. 언제나 세상은 변화해왔지만, 최근 변화의 특징은 점점 더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영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왜 갈수록 변화가 가속화하고, 확대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중요한 길안내를 받는 셈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잘 해설해주는 신간이 나왔다. 실리콘밸리의 연쇄 창업가이자 벤처투자자인 아짐 아자르가 2024년 펴낸 서적 <2040 위대한 격차의 시작>이다. 책의 원제는 ‘지수 변화(Exponential)’인데, 이는 ‘산술적(Arithmetic) 변화’에 대비되는 수학적 개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가속화하는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책의 원제인 ‘지수적 변화’다.


지수 변화의 가속도를 깨닫지 못하고 기존 방식대로 성실하게 노력하다가 낭패한 사례는 디지털 분야에 특히 많다. 1943년 컴퓨터 개발 당시 아이비엠(IBM)의 창업자 토머스 왓슨은 “전세계적으로 5대 정도의 컴퓨터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49년 미국 <포퓰러 메카닉스>는 “미래엔 컴퓨터 무게가 1.5톤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1980년대초 매킨지컨설팅은 휴대전화 사업에 뛰어들려는 AT&T에게 “2000년이 되어도 셀룰러폰 이용자는 100만명이 못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00년이 됐을 때 휴대전화 가입자는 7억명이 넘었다. 2005년 2월 창업자가 신용카드로 돈을 빌려 설립한 스타트업 유튜브는 이듬해 구글에 14억달러(약 1조9300원)에 인수됐다. 회선 이용료가 비싼 동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는 유튜브는 몇 년 동안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2010년부터 흑자로 돌아서며 구글의 캐시카우로 변신했다.

디지털 세계에서 흔한 이러한 현상의 밑바닥에는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두 원칙이 깔려 있다. 무어의 법칙과 멧칼프의 법칙이다.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결정하는 반도체 집적도가 24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0년대에 주창한 이론이다. ‘멧칼프의 법칙’은 네트워크의 규모가 증가하면 그 가치가 사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이론이다.

인공지능 시대로 오면서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가 매킨지 등과 공동으로 작성해 발표한 ‘인공지능 인덱스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인공지능의 성능 향상 속도가 무어의 법칙보다 7배나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2010년대 말 무어의 법칙대로였다면 인공지능 개선 속도가 7배에 그쳤을 것인데, 30만배로 나타났다.

무어의 법칙과 멧칼프의 법칙이 함께 작용하는 디지털 경제는 지수증가적 변화가 지배한다. 지수적 증가의 의미를 알려주는 오래된 얘기가 있다. 체스 발명에 얽힌 스토리다.

체스 게임은 6세기경 굽타 왕조시대 인도에서 시작됐다. 체스에 푹 빠진 된 왕은 체스 발명가에게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 체스 발명가는 단순해 보이는 소망을 말했고, 왕은 들어주었다. 가로세로 8칸씩으로 구성된 체스판의 64칸을 이용해 첫날 첫 칸에는 쌀 한 톨, 이튿날 둘째 칸에는 두 톨, 사흘째 셋째 칸에는 네 톨을 놓은 식으로, 하루에 한 칸씩 이동하면서 다음 칸으로 가면서 앞 칸보다 쌀알의 개수를 두 배로 늘려달라는 게 체스 발명가의 요청이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쌀알은 한 숟가락을 못 채웠고, 16일께 가까스로 한 되를 채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한 톨에서 시작해 갑절 늘리기를 63번 하면, 1800경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인류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생산한 쌀을 모두 더한 것보다 많은 양이고 지구 표면적의 3분의 1을 뒤덮을 양이다.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왕은 체스 발명가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지수증가적 변화를 설명해주는 얘기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은 이러한 디지털의 지수 변화적 속성을 주창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컴퓨터의 성능 향상 속도가 최초의 컴퓨터 개발 이후 지수적 증가를 거듭했고 그 결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의 도래 시점을 2045년이라고 말해왔는데, 2024년 6월 <특이점이 더 가까워졌다(The singularity is nearer)>라는 책을 펴내 특이점이 자신이 19년 전 예측한 것보다 1~2년 앞당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40 위대한 격차의 시작>의 저자 아짐 아자르는 지수증가적 기술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다. 고정비를 기준으로, 수십년간 연간 10% 넘는 속도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면 지수증가적 기술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수적 기술 발전이 오늘날 경제와 산업의 지형을 정신 못차릴 빠른 속도로 변모시키는 동력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지수증가적 변화를 과소평가한다. 빌 게이츠가 1995년 펴낸 <미래로 가는 길>에서 “우리들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변화를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으로 닥칠 변화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대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수상승적 변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한다고 해서 지수증가적 증가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무어의 법칙 등의 영향으로 지수상승적 변화는 점점 더 다양한 영역에서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의 영향력을 체감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물음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장점이자 저자가 생각하는 스펙트럼의 다양함을 알려준다.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문제가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현실 파악과 함께 그에 관한 저자의 종합적이고 인문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인류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대부분의 증가와 변화과정이 점진적이고, 선형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약 35만년 전 출현한 현생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은 구석기 시기가 98% 이상이다. 농경과 도구가 발달하기 시작된 신석기 문명이 출범한 시점은 겨우 1만여년 전이다. 진화에서 5천~6천년은 인류의 본능과 인지구조가 새롭게 배선되어 자리잡기에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지수상승적 변화와 현상이 일상이 된 것은 디지털 정보기술 등장 이후다. 많은 현대인은 모바일, 인공지능 시대를 살며 다양한 기기를 사용하며 스스로 잘 적응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지수상승 변화의 속도와 범위에 적응할 환경에 놓인 게 아니다.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차례대로 지나면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뒤 낙엽지고 눈 덮이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다. 사람은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자연현상에 적응했고, 선형적으로 사고하는 세계 모델을 형성했다.

더욱이 인류는 선형적 변화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 지극히 선형적이고 고정적인 사고모델을 만들어냈다. 각종 사회 규범과 법률, 교육체계, 영리·비영리 기업 및 정부·비정부 기구 등 다양한 형태의 제도와 조직이다. 법률과 제도, 유·무형의 규범은 사회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게 기본 기능이다. 법률은 생겨날 사회 현상을 예상해 미리 제정될 수 없고, 사회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해 수시로 변경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제도는 무엇보다 오래가는 사회생활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의존하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는 지수 곡선의 기울기로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사회 제도와 조직은 태생적으로 빠른 대응이 불가능하다. 저자가 언급하지 않지만, 이는 일찍이 1922년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이 <사회변동론>에서 ‘문화 지체(Cultural Lag)’ 이론으로 주창한 개념이다. 오그번은 기술 발달을 포함한 물질문화가 급속하게 변화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제도, 관념, 가치관 등 비물질문화는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조화 현상을 ‘문화 지체’라고 설명했다.

문화 지체 현상은 지수변화 속도로 발전하는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한층 심각한 문제가 됐다. 기존의 문화 지체 현상과 디지털의 기하급수 변화로 인한 변화상은 물질문화와 비물질문화 사이의 진행속도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격차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문화 지체’ 현상은 ‘지체’라는 말이 의미하듯, 그 차이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지수곡선의 기울기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발전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회 규범간에 생겨나는 격차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따라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아짐 아자르는 기술이 초래하는 지수상승적 변화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최신 정보와 기술을 습득해도, 24개월 만에 두 배씩 증가하는 속도를 생물체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변화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최대 위험은 로봇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경제라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그에 대한 대처법으로 저자는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를 제시한다.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큰틀에서 조장하는 것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미디어 정보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를 다루는 게 디지털 리터러시다.

물이 증기가 되어도 우린 증기가 된 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때는 증기를 다룰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아자르는 지수 변화의 법칙이 지배하는 기술이 불러오는 다양한 현상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는 기술이 스스로 발전과정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의 발전 과정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기하급수적 시대에 모든 제도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가 너무 경직돼 있다면 변하는 세상이 제도를 추월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수상승적 변화 가속화의 세상에서는 개인과 사회 모두 전에 없던 유연성을 갖추고 새로운 변화를 끝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버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 이 글은 KISO저널https://journal.kiso.or.kr/ 제56호 <문화시평> 실린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의 글(왜 디지털 세상의 미래 예측은 어긋날까? | KISO저널) 재인용했습니다.


글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발행 KISO저널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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