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벌써 1년 전이다.
아침 7시도 되지 않았는데 '단체 카톡방'이 요란하다. 어제 밤 보도된 방송 기사를 놓고 기자들의 추측이 난무하다. 기자들이 쏟아내는 추측에 나도 몇 마디 흰소리를 보탰다.
아침 7시. 기사에 등장한 청와대 A수석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평소 통화를 종종 하던 시각이었다. A수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1시간 쯤 뒤에 답신 전화가 왔다. 이례적이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아쉬운 쪽이 전화를 하게 마련인데 A수석이 평소 나에게 아쉬울 건 없었다. A수석이 기사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사는 어떻게 된 거예요? 맞나요?"
"아니야, 아니야."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데 더 물을 말이 없다.
"사실 무근이랍니다."
'사실 무근'으로 아침 보고를 끝냈다. 뭔지 모를 이물감이 남는다. 뒤통수가 저릿하다. '사실 무근'으로 눙치기엔 이 기사엔 자신감이 배어 있다. 확신이 없다면 기사에 청와대 수석의 실명을 노출시키고, 녹취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자'라는 자의식이 크지 않아서 자존심도 별로 없고, 기자의 책임감이니 윤리의식이니 하는 객쩍은 단어들도 잊고 산다만, 직장인으로서 밥벌이는 해야 할텐데 자칫 '월급 도둑'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은 저런 단독 기사도 쓰는데 너는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못했냐'는 힐난이 쏟아질 것 같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기사의 제목은 TV조선이 보도한 <청와대 안종범 수석, 미르재단 500억원 모금 지원>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여는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의 진위 여부가 밝혀지기 전에 나는 부서를 옮겼다. 정치부에서 경제부로. 출입처는 청와대에서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으로 달라졌다. 출입처가 바뀌자마자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단독기사, 특종기사가 쏟아져나왔다. 내 '나와바리'가 아니니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용케도 '월급 도둑'이라는 지탄은 피했지만 나는 종종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다. 타사는 취재 다 끝내고 기사까지 내보내는데 그렇게 모를 수 있느냐고. "나는 사실 기자가 아니고 업자"라고 되받아쳤다. "어차피 제보 없으면 절대 못쓴다"는 셀프 면죄의 논리도 들이댔다.
한겨레신문 특별취재반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TV조선의 특종 기사를 보고 뒤늦게 취재를 시작했다. 굵직한 단독 기사로 '반까이'했다. 한겨레특별취재반의 <<최순실게이트>>를 읽으며 기사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엿봤다. 이렇게 해서 특종 기사가 만들어진다는 걸 어렴풋이 배운 것 같은데 배운걸 써먹기엔 내가 너무 멀리 떠내려왔다. 나도 지사(志士)가 아니지만, 내가 위치한 곳도 '지사형 언론'과 거리가 멀다. 나의 좌표는 직장인과 '기레기'그 사이 어중간한 지점이다.
남들의 특종 후기를 복기하는 기분은, 아침 소주처럼 차고 쓰고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