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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Aug 13. 2019

Since_1969

50년 된 골동품 하나 정도는 집에 있지 않나요?

대체 뭔 자질구레한 게 이리 많은지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집 안 구석구석이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미니멀 라이프와는 딱 반대로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많은 물건 중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녀석이 있을까? 50년쯤 된 물건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지금 사는 아파트는 (검색해 봤다) 2002년쯤 지어졌다니 17년 정도. 차 한 대는 5년, 다른 한 대는 이제 막 3살이다. 아, 옷장! 결혼할 때 혼수로 샀으니 23년! 아무리 둘러보아도 30년을 넘은 게 없다. 음, 정말 온 집안에 50년이 넘은 “물건”은 나밖에 없는 건가? 아, 물론 아내가 나보다 생일이 5개월 정도 빠르니 공식적으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자체 화면 조정 시간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더 이상은..)   


구글 검색창에 1969를 입력했더니, 그다음엔 mustang과 camaro가 따라붙는다. 쿠바의 아바나 거리에서라면 1969년형 정도는  “최신형” 클래식 카에 속하지만, 대한민국의 도로 위에선 이제 20년 된 구형 SM5도 쉽게 만나기 어렵다. 강남 최초의 ‘아파트’인 반포 주공 1단지는 1972년에 지어졌단다. 하지만, 재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50년을 버티긴 힘들어 보인다. BC 300년 무렵부터 지어져 아직도 제 구실을 하고 있는 로마의 도로도 있다지만, '~궁'자로 끝나는 이름의 문화재들을 제외하면 주변에서 50년이 넘은 건축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10대 기업 중 삼성과 LG만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정글 속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길어야 10년, 20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더니 서울역 앞에 빌딩 하나 남기고 사라져버린 대우그룹, 나이키 운동화보단 좀 "꿀려도" 그래도 나름 자부심을 갖게 해준 프로스펙스를 만들었던 국제그룹, "단언컨대" 우리 곁을 떠나리라 예상 못 했던 스카이 핸드폰을 만들었던 펜텍, 사랑고백엔 직접 녹음한 카셋트 테이프만한게 없었다. 물론 Sony나 TDK의 '크롬'이나 '메탈' 테이프가 음질은 아주 조금 좋았지만 우리에겐 '새한'이 있었다. 천리안? 하이텔? 1995년 첫 직장 명함의 이메일 계정은 무려 유니텔(!)이었다. 처음 런칭 광고 작업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파란닷컴 이메일 계정도 있었다. 아 싸이월드도 빠지면 섭섭하겠군. GAP이 1969년생이고 다행히 아직 살아있으니 반갑긴 하지만, 해외에서건 우리나라에서건 50년을 버텨낸 기업이나 브랜드는 축복에 속한다. 


오래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 중 하나가 위스키다.  그래도 12살은 돼야 어디서 명함은 좀 내밀 수 있지만, 어두컴컴한 오크통 안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어 서른 즈음이 되어 세상에 나오면 그 몸값이 몇 배로 뛴다. 그렇다고 40년-50년 된 위스키가 흔치 않은 이유는 오래 놔둔다고 해서 그 향이나 맛이 무조건 더 좋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쿠바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이 도로 위에 넘쳐나는 클래식한 자동차들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엔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대부분을 공급하던 쿠바는 동시에 남미의 나라들 중에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1959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기 전까지는. 냉전의 시대는 미국과 (당시의) 소련 간에 미사일 위기를 가져왔고, 그 중심에 쿠바가 있었다. 1962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쿠바로 향하는 모든 수출을 봉쇄한다. 이 시기에 이미 쿠바에는 14만 대가 넘는 미국산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새로운 미국산 자동차를 들여올 수도 없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들어와 있는 자동차들의 부품을 수입할 수 있는 길마저 막힌 것이다. 그러니, 철조각을 두드리고 펴고 해서 없는 부품까지 만들어가며 아직까지 굴리고 있는 셈이다.   




속도를 줄이기는 커녕 점점 가속도가 붙어 이제 도저히 세우기 힘든 폭주기관차가 되어버린 21세기 자본주의, 그 맨 앞 칸에 우리가 타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는 더할 나위 없는 알레고리인 셈이고. 소비가 미덕이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제품의 유혹을 버텨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내 주위에 50년은 커녕 10년을 버틴 물건도 흔치 않다. "그런데, 말입니다.." 젠장, 오늘이면 이 ‘물건’은 만들어진지 딱 50년이다. (엄마 뱃속에 있었던 10개월을 더하면 좀 더 오래된 거다) 


디스크로 등짝을 세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세 번째 열 때는 의사 선생님에게 "지퍼라도 달아주시는게 편하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농담을 했다.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한 번, 담낭에 돌이 생겨 떼굴떼굴 구르다 응급실에 실려가 또 한 번, 배 앞쪽으로 흉터를 남겼다. 차키를 깜박하고 집을 나서오르락 내리락하고 나니, 이제는 지하 1층이었는지 2층이었는지 온통 가물가물하다. 고지혈증에 지방간이니, 차로 치면 연료공급 장치에 잔뜩 기름이 낀 셈이다. ‘무사고’ 물건이라고는 못하겠고, 외관도 내부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아직 그런대로 굴러는 가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껴 아껴 본다 생각했는데 Stranger Things 시즌 3을 며칠 만에 정주행했다. 

[ Spoilers ahead! You have been warned. ]

호킨스 마을을 구하고 장렬하게 사라진(죽었다고 안 했다. 사라졌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짐 호퍼처럼, 우주를 구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언맨처럼, 자신을 버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진 초이처럼, 가장 멋지고 화려한 순간, 딱 그 순간에 (인생이라 불리기도 하는) 소풍을 마감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현실의 삶이란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녀석이 “잘 지내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상념들처럼 그냥저냥 별일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이 살아가게 마련이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마녀의 저주를 물리치고 이뤄낸 동화 속 사랑 이야기라 해도 마무리는 모두 한결같다. “Happily ever after". 우리말로 조금 친절하게 번역하면 “더 이상 알려하지 마, 그 뒤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어”



기억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왜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또 무언가는 망각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현대 신경과학의 대답은 이렇다.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이 멋진 명제는 뇌과학자 한나 모니어와 철학자 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집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뭔가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과거의 경험들을 토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함이다. (물론, 기억을 허락받은 대가로 우리는 삶의 지난한 어려움들이 남긴 기억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 또한 피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이제 무슨 계획을 세우고 싶은 거지? 50년된 물건의 삐걱거리는 뇌에서 지난 시간들의 기억을 열심히 소환 중이다. 잠이 달아나고 머리가 아프고 무거워진다. 


50년 전, 인류는 달을 정복했다. 당시 사람들은 50년 후라면 다른 대륙으로 여행을 가 듯 달나라 여행 정도는 어렵지 않게 다녀올 줄 알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아직 해외토픽에만 등장하고, 시간 여행은 아직까지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이 그리 지루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대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최신형’ XT 컴퓨터(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DOS를 담아서 가지고 다녔다)보다 수백만 배 뛰어난 성능의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고 있다. 모뎀에 연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여동생이 친구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려야 했고, "삐리리릭~" 신호가 여러 번 울려야 겨우 접속이 되고, 이미지 한 장을 다운받기 위해선 수십 초 정도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던 일이 불과 30년 전인데 이젠 언제 어디서나 빛처럼 빠른 무선 인터넷을 펑펑 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더 재밌고 신기한 미래가 떠오르면 좋으련만. 지구온난화부터 미세 플라스틱의 습격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만큼 생태계의 큰 재앙은 없었다. 어벤져스 멤버들이 멋있긴 하나 난 타노스의 심정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출생률 0.9의 인구 절벽의 위기 앞에 서 있는 나라 물가는 비싸고 사람의 가치(임금)는 형편없는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물론 정반대가 돼야 한다. 게다가 미쳐 날뛰는 아베까지! 미래를 바라보면 걱정과 근심만 가득하다. 해피버스데이 투미.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 되겠지 뭐. 



(사진은 직접 찍은 것들입니다. 퍼가시려면 출처라도 꼭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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