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9 스톡홀름 4일차
전날 밤 미리 싸둔 짐을 들고 숙소를 나와 T-station에 향했다.
저녁 여덟시 비행기 이기에 나에게는 오늘 반나절 가량의 시간이 남았지만 30KG이 훌쩍 넘는 캐리어를 들고 다닐 순 없으니 지하철 역에 짐을 갖다 둔 후 움직이기로 했다.
국내에서 내일로를 두번이나 해 본데다가 이미 러시아를 횡단하여 도착해서 그런가, 짐 보관소가 어디있는지 검색하지않아도 대충 어디에 있을지 짐작이 갔다.
짐을 맡기고 나니 오전 열시.
네시반~다섯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할 생각이었으니, 딱 반나절이 남아있었다.
어제 가려다 시간이 늦어 못갔던 아크네 스튜디오 아카이브에 가려 했는데 열한시에 오픈한다 하니 어디에선가 시간을 써야해서 두리번 거리다 서점이 눈에 들어와 서점에서 한참 구경을 했다. 다른 가게들은 다 늦게 여는데 왜 서점은 일찍 여는걸까. 서점에 대한 어떤 의미가 있길래 아침 일찍이어도 서점은 문여는걸지 궁금했다. 츠타야 서점 같은 공간인가.
내 예상대로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팔고 문구류를 파는 공간이 아닌 카페도 있고, 생활 잡화도 파는 공간이었다. 그냥 책만 팔겠구나 했던 내 생각이랑 전혀 다른 공간에 역시나 싶으면서도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리고, 확실히 스웨덴 사람들이 삐삐롱스타킹을 좋아한다 싶은게 서점에 삐삐롱스타킹 섹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섹션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것 외에 유니바켄에서 봤던 엽서까지도 여기 있고. 그냥 유명 작가들 끼리 묶어놓은것인가 싶었지만 확실히 동화책, 평전 등이 놓여있는것으로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서점에서 또 정신없이 삐삐 엽서를 사고 있는데 어느새 시간이 열시 반을 훌쩍 넘겼다. 지금쯤 출발해야겠다 싶어 아크네스튜디오 아카이브로 향했는데, 멀리서 봐도 문 연게 보였다.
아카이브에서는 오뛰꾸뛰르에 올랐던 제품, 시즌오프 제품을 팔고 있는데 오뛰꾸뛰르에 올랐던 옷은 일상에서 입고 다니기엔 좀 어려워보였고, 한철만 입는 반팔보다는 여러 계절 입을 수 있는 페일 핑크 제품을 찾다보니 선택지는 쉽게 좁혀졌다. 그렇게 해서 고른 후드티는, 아직까지도 볼때마다 스웨덴을 생각나게 하는 좋은 기념품이 되었다.
아크네 스튜디오에서 기념품을 산 후 향한곳은 감라스탄의 팔란스 카라멜 매장. 주변에 좀 더 신경써야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선물을 샀는데, 이 팔란스 카라멜이 내가 산 기념품 중 가장 비쌌는데 그만큼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애매하게 남길래 고민했다. 유니바켄에서 즐겁게 탔던 이야기 열차에 대한 동화책을 살것인가 말것인가.
유니바켄까지는 약 한시간이 걸리는 여정이기에 잠시 고민했는데, 결국 유니바켄으로 향했다.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스웨덴에 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유니바켄에서만 파는 책 같아 보이는데 이 책 역시도 나에게 좋은 기념품이 되어주겠지.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곧바로 기념품 가게로 직진하여 마지막으로 한번 더 훑어보았다. 내가 이 곳에 언제 올지도 모르고, 처음으로 내가 덕질하면서 다른나라까지 오게 만든 박물관, 콘텐츠들로 가득찬 공간을 한참 꼼꼼히 살폈다. 이만큼의 열정을 보일 콘텐츠들이 나에겐 아직도 두개나 남아있었다. 영국과 미국에. 그거면 충분했다. 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이 나를 가득 채우게 된 것이니.
유니바켄에서 다시 T-station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두시 반이었다. 네시반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하는데, 슬슬 마음이 급해져왔다. 처음으로 자유여행을 떠났을 때 비행기를 놓친 후 나에게는 한가지 징크스가 생겼다. 그 이후부터 내가 떠나는 자유여행 귀국 시 늘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보딩패스를 잃어버린다던지, 면세점에서 산 술의 영수증을 안챙겨줘서 술을 뺏길 위험에 처하던지, 갑자기 가방에서 대형 액체류가 튀어나온다던지.
이번엔 45일이나 여행하고, 멀리까지 나와있으니 절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여유롭게 공항에 갈 생각이었는데, 아직 밥도 못먹었는데 시간은 빠르게 흐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도 금강산도 식후경, 뭐든지 먹어야지 기운이 나는 법이므로 구글맵에서 말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덴마크의 식품회사가 만들었다는 “Jensens Bofhus” 패밀리 레스토랑 같지만 평이 나쁘지않아 들어왔는데 결론은 쏘쏘 였다. 문득 스웨덴에서는 정말 맛있다! 싶은 음식을 먹어본 게 없네 싶어 아쉬웠다. 하기사 전통음식이 미트볼인 나라인데, 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일단 남이 구워준 스테이크가 얼마만인가 싶어 만족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정말 가야할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괜히 떠나기 싫은 마음 다들 알거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한국 음식이 그리웠으면 한국 돌아갈 때가 되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다 나만의 생각이었다.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데 내가 그럴리가 없지.
괜히 돌아가기 아쉬워서 여기저기 기웃 거리며 기념품을 건지고 알란다 익스프레스에 몸을 실었다.
내심 기차를 잘못타서 비행기를 놓치고 싶단 생각도 했지만, 여행을 그렇게 많이 해서인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자리에 앉고 짐 정리를 하자니 스톡홀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여행 끝이었다.
스톡홀름을 지나 알란다 공항으로 가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살면서 이렇게 멀리까지, 온갖 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여행 한 적도 없는데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를 들어가고 그 회사를 퇴사하고 이런 여행을 하다니.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혼자 여행해본적도 처음.
여러 감정이 벅차올랐다. 한국에 간다는 안도감과 아쉬움, 그리고 섭섭함에 대한 생각들이 휘몰아쳐서일까. 괜히 울적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여행을 해야 집에 돌아갈 때 기뻐하며 돌아갈 정도가 되는걸까.
공항에 도착해서는 내심 쫄렸다. 몇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로 자유 여행을 갔을 때, 공항에 3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 이곳 저곳에서 놀다가 비행기를 놓쳤었다.
그 이후부터 이상한 징크스가 생겨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사고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조금 쫄렸는데, 다행히 이번엔 별 일 없었다.
별일이라면 택스리펀 신청 데스크에서 싸가지없는 직원을 만나 기분 나쁜거 티내는 신경전을 벌인것?
아니면 내가 타고 한국에 돌아갈 아에로플로트의 무료 수하물은 23kg 까지인데, 26kg이 나와 쫄리길래 일단 웃었더니 직원분이 에휴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 것.
징크스가 생긴 그 여행 이후 처음으로 아무일 없이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쳤다.
이제 모든 징크스는 사라졌다. 고 믿고 바로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는 얘기를 듣고 지인들이 징하다고 기겁했다고 한다)
비행기는 알란다 공항을 출발하여 모스크바에서 거의 하루를 대기한 후 한국으로 출발 하는 항공 여정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알란다까지 약 4주가 걸려 떠났는데, 몇시간의 비행으로 다시 모스크바에 들어가다니. 시간만 허락 해 준다면 모스크바의 피자를 먹고 싶을정도였다. (만은 모스크바 도착 시간이 새벽이라 아무것도 못함)
엄청난 속도로 활주로를 달린 비행기가 뜬다. 나는 늘 비행기가 뜨기 직전 순간이 가장 설렌다. 진짜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라 설레고, 집에 돌아갈 때도 마음은 아쉽게, 발은 가볍게 출발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쉬움이 숨길 수 없이 마구 새어나왔다.
아쉬움이 있는 만큼 다음에도 여행 하고 싶어지겠지.
이번 여행에서 길 위에서 생각해야지! 했던 것들은 왠만한건 정리 되었다. 물론 안된것도 있지만.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해도 이건 내 여행이었고 내 삶이었으니.
앞으로도 내 여행, 길 위에서 생각이 많이 들고, 그 생각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녕, 안녕 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