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0-18, 파란만장한 귀국길
언제 잠들었는진 모르지만 새벽 네시 반에 공항 행 차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내려가니 호텔에서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 해 주었다. 다들 아침 안먹는다는 말에 일단 커피를 대충 받아들고는 짐 싣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온통 고요한 아바나가 어색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렇게 사람이 많고 활기찼던 거리가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정말 휑해보였다. 역시 사람의 손길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역시 문명은 사람들 위에 얹어진 것이다. 나라는, 도시는 사람이 제일 기본이구나 등등 따위의, 졸려서 아직 수면중인 뇌에 갖가지 생각이 차올랐다 가라앉았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쿠바를 오겠냐는 생각과 졸려 죽겠다는 생각들이 동시에 차올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 아니면 언제 쿠바를 오겠냐는 생각이 이겼는지, 차에 올라탈 무렵엔 정신이 맑아졌다.
그러고보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바나의 늦은 밤, 새벽, 낮, 저녁을 다 골고루 보고가는구나. 싶어 차에 올라탈 때는 조금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까지 모든걸 본 도시가 있었나.
차는 우리 외에도 아침 비행기를 타고 쿠바를 떠나는 사람들 몇명이 함께 타고 출발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아바나 시내를 멍하니 바라보다 신기함이 느껴졌다.
일주일 전, 처음 공항에서 내려 아바나로 들어올 때엔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내리라는 말에 당황했었다. 아직도 공항 근방, 인적 드문 동네라고만 생각 하고 있었는데 우리 목적지라고 하기에. 얘네가 우리 내려놓고 어디 갖다 파는거 아냐? 라며 엄청 경계했던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공항 가는길에 창밖을 보고있자니 스쳐지나가는 길이 모두 너무나도 눈에 익었고 익숙했다. 이게 바로 아바나지 하는 생각.
내가 정돈이 된 나라만을 다녀서 그런건지, 15년 전 인도에 내렸을 때보다 더 충격 받고 도로를 바라보며 긴장했었는데, 불과 일주일만에 이젠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의 익숙함이란 이렇게 유통기한이 짧은거구나. 익숙함도 하나의 감각이라면 매우 예민한 감각이 아닐까. 이렇게 쉽게 이들의 풍경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공항을 도착하니 일주일 전엔 고속버스 터미널과 다를 바 없는 공항에 놀랐지만 이제는 덤덤하게 체크인을 하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그러고 나니 이젠 은근히 궁금했다. 면세점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면세점이 정말 볼것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 볼게 없었다. 슈퍼마켓 규모의 공간에 물건들만 쌓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면세점이 어때야한다라는게 있는건 아닐테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이제까지 간 면세점 중 가장 놀라웠다.
그래도 면세점은 면세점이라고 슈퍼마켓 같은 공간에서 쿠바 특산품을 팔더니 그 옆에 자그마한 시가 코너까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져왔던 돈을 모두 긁어 모아 럼주와 시가를 사고 탑승구 앞의 넓은 공간에 자리 잡았다.
이때까진 몰랐었다. 나의 귀국 징크스가 또 발현될것이라는 것을. 내 귀국 징크스의 대단함을 좀 더 생각 했다면나는 그때 럼주를 포기 했을까.
나는 항상 자유여행으로 해외여행을 갔다가 귀국 할 때면 문제가 생긴다. 꼭 귀국할 때만. 2016년 대만 여행을 시작으로 늘 그랬었다.
2016년 대만 여행 때 넓은 타오위안 공항을 보고 재밌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다가 비행기를 놓쳤었다. 그리고 2017년 여름, 다시 대만에 갔을 땐 송산공항을 택했음에도 갑자기 내 짐에서 캐리어에 미처 넣지 못한 샴푸가 나왔고, 체크인 카운터로 돌아갔다.
2017년 가을,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놀러간 홍콩에서 돌아오던 길 보딩패스를 잃어버려 공항 카운터를 찾아 홍콩 공항을 달렸었다.
2018년 봄, 친구와 떠난 대만 여행을 갔을 땐 공항에서 친구와 싸웠다.
그리고 2018년 가을, 쿠바에서 출발할 때는 아무일 없이 출국하나, 싶었다.
호세마르티 공항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아바나를 출발한 에어캐나다 비행기는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착륙하였고, 쿠바>캐나다로 환승 하면서 다시 짐검사를 하는 와중에 문제는 생겼다.
아바나 공항에서 산 럼주의 영수증이 없는 것. 내가 영수증을 달라고 영어로 세번, 스페인어로 세번 말했고, 공항에서는 분명히 밀봉백 안에 넣었다고 말했었다. 뒤에 나 말고도 계산하는 사람이 많아 확인 하지 못하고 나왔고, 에이 설마 면세점에서 안넣었겠어 밀봉백 어딘가엔 돌아다니고 있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서였을까. 가뜩이나 액체류 반입에 깐깐하게 구는 캐나다 공항인데 영수증이 없다고 하자 내가 산 럼주, 그리고 다른 일행들이 면세점에서 산 시럽 등을 압수하겠다고 하였고, 이에 어이가 없지만 증빙 서류가 없으니 물건을 내주는것은 어쩔수 없지 하고 포기하려던 그 순간, 나랑 같은 계산대 줄에 서있던 사람이 그냥 술을 들고 가는걸 보고 말았다. 그는 영수증이 있어서겠지만, 그 순간 갑자기 억울함이 벌컥 올라왔다. 내가 영어로, 스페인어로 분명 영수증 달라는 말을 했는데 안줘서 이 사단이 생기나.
환승통로를 걸어가던 내가 갑자기 다시 몸을 돌려 세관 직원에게 찾아갔다. 그리고는 나 이 술 인천까지 갖고 가야겠으니,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세관직원은 우리가 모두 짐을 뺏긴걸 두고 아바나 녀석들이 어쩌고~하며 얘기하다 갑자기 찾아와서 말을 거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가보다.
그들이 가만히 나를 쳐다만보고 있자 나 환승까지 세시간 남았다. 이정도면 환승에 문제 없지 않겠느냐. 난 이 술을 꼭 인천까지 갖고 가야겠다. 나는 아바나 공항에서 분명히 영수증을 요구했는데 그들이 주질 않았다. 물론 확인 안한건 내 잘못이맞지만 나는 영수증을 요구하였으나 그들이 주지 않았으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꼭 갖고 가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달라.
그러자 세관 직원은 입국 수속을 밟고, 다시 공항 카운터에 가서 상황을 말하고 이 술을 추가 수화물로 보내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나의 캐나다 땅 밟기.
입국 수속장으로 뛰어가서 줄을 서고는 순서를 기다리며 서서 입국수속서류를 작성하였다. 캐나다에 입국한 날짜, 출국하는 날짜를 동일하게 적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입국 수속 카운터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세관 직원이 내 술과 더불어 일행이 압수당한 시럽까지 죄다 들고 와서 안겨주었다.
나도모르게 그라씨에 아, 아니 땡큐. 를 외치고는 입국 수속을 기다렸다. 입국 수속 카운터에 있던 사람이 입국 일자와 출국 일자가 같은걸 보고는 나에게 왜 이러냐고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내가 럼주를 가득 안고 ^^ 하고 웃고 있으니 아바나 녀석들...이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도장을 찍어주며 몇층으로 가야한다고까지 알려주었다.
한두명이 아니었나보다.
우여곡절 끝에 피어슨 공항 내부를 한바퀴 죄다 돌아보고, 에어캐나다 카운터에까지 가서 줄을 서자 내 얘기가 다 퍼졌는지 누군가가 상자를 갖고 나타났다. 혹시 술이 깨질까 걱정되어 다이어리 속지를 찢어 말고, 겉옷을 둘둘 말아 상자에까지 넣으며 치밀하게 (?) 포장하고 나니 실실 웃음이 났다.
이게 바로 징크스라는거구나. 확실히 알겠다.
우리 짐은 전부 술이고, 상자가 꽤 크기에 대형 수화물 쪽에 줄을 서라는 말에 짐을 어깨에 얹고 가는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리내어 웃으며 대형 수화물 코너로 걸어갔다.
그래도 내가 이 술을 어찌어찌 한국까지 끌고 간다 내가.
짐을 보내고 나니 이젠 귀국 징크스를 즐기자 싶었다. 캐나다까지 왔는데 한번 캐나다 공기를 맡아보자 하며 바깥으로 걸어나가 힘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아바나는 뇌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꽂히는데 캐나다는 폐를 찢을 것 같은 공기가 내 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알고 있던 10월의 날씨지.
다시 공항으로 들어와 출국 심사대로 다시 걸어가는데 이 몇시간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어찌어찌 해내는 내가 대견해졌다. 내가 살면서 남의 나라 세관 직원, 공항직원과 열띤 대화 끝에 빠른 입국과 출국까지 이걸 다 해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스타벅스도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북미 벤티를 갖고싶다 한것까지 생각나서 스타벅스에 가서 벤티사이즈 콜드컵까지 알차게 산 후 다시 출국수속을 밟고 일행들을 만났다. 하지만 여기서 내 귀국 징크스는 끝나지 않는다.
면세장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한 잔 사서 오늘 이 고생을 했으니 액땜차 면세에서 뭔갈 사야겠다고 다짐하고 둘러보다 구찌가 눈에 들어왔다. 구찌에서 악세서리를 요리조리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걸 사고는 계산 하는데 직원이 나에게 작은 쇼핑백이 다 나가서 그런데 큰것 밖에 없다고 했다. 괜찮다, 다들 내가 부잔줄 알겠지 뭐! 라고 웃어주고 결제하고 나오자 한국행 비행기 탑승 방송이 나왔고, 모든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의외로 한국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별 일 없었다. 앞쪽 어디선가에서 아기가 끊임없이 울긴 했다. 당연히 짜증이 올라왔지만, 어디선가 보기로 아기들의 사회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더라.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외국 애기들처럼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있질 못하냐 등의 글에 대해 아동심리학자가 우리나라는 아기를 데리고 외출해서 아이가 아직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혐오로 부터 시작되어 결국 약자 혐오로 번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 글이 생각났다. 내가 피곤하긴 한데, 우는 소리가 듣기 싫지만, 저 애도 조금만 크면 비행기에서 어떻게 해야한다는 매너를 배우겠지. 하는 생각으로 드디어 인천에 도착했다는 말에 집이다! 라며 신나게 기내에서 내려 짐을 찾고 입국 수속을 밟은 후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세관직원이 또 나를 불렀다.
문제될게 없는데 왜지 라는 생각에 세관 직원에게 다가가자 불시검문이라더니 내 짐에는 관심이 없고 구찌 쇼핑백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래서 토론토 공항에서 너무 큰 쇼핑백이라며 구찌 직원이 미안하다 한건가. 머리를 탁 짚으며 짐을 순순히 넘겨주자 내 캐리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쇼핑백을 열어보고는 말했다.
"구찌에...다른게 들어있네요?"
"앗, 구찌에서 산건 이거 하납니다."
그러며 팔을 쭉 내밀자 세관직원은 한참을 웃더니 왜 이렇게 큰 쇼핑백에 담아왔냐고 물었다.
그러게요....그래서 직원이 미안하다 계속 그랬나봐요, 하며 여권과 영수증을 내밀자 세관 직원분은 구찌 가방이 크기에 불시검문 한거다 라며 웃었고, 쿠바에서의 귀국길이 이제까지 겪은 귀국 징크스 중 가장 스펙타클한 것이기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그저 웃으며 다시 짐을 챙겨 입국장에 들어섰다.
왜 세관에서 또 잡는거냐는 일행들의 걱정에 구찌 때문이라고 한참 웃어준뒤, 내일 출근 잘 하자는 말을 하고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인천에 돌아오자마자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생경했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맡아본 차가운 공기지만, 내 나라의 것이라 생각하니 진짜 지구 반대편에 있다 돌아온게 실감났다.
그리고, 공항철도 창문에 비친 내 캐리어 위에 올려진 구찌 쇼핑백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나는 왜 조용히 귀국 하질 못하는것인가.
이번 여행에도 징크스를 또 갱신하고 마는구나.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조용히 잘 귀국할까.
하지만 이 모든걸 또 해결해 냈으니, 이것도 추억이다 하며 난 또 여행을 가겠지.
**아바나 호세마르티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면 영수증을 꼭! 눈 앞에서 확인 하고 챙겨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