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꼰 방향으로 걸어올라가며 시간을 확인 하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였다. 근방에 회사가 있는건지, 다섯시가 되자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루루 나와 셔틀버스로 보이는 것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칼퇴하나봐 라는 누군가의 말에, 우리의 직업을 생각하고 이들의 칼퇴문화를 함께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 안쓰러워지는 것 이었다.
공산주의에서는 야근이 없나봐. 그러겠지 공산주의니까! 더 일하면 손해잖아. 와 역시 그렇게 보니까 진짜 조별과제 하다보면 왜 공산주의가 망했다는건지 알겠다 야. 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로 하여, 어글리 꼬레아나라고 외치던 광인이 간간이 생각나면 욕을 하며 말레꼰을 걸어가는데 의외로 길이 길었다. 그래서 힘이들기 보다는, 말레꼰 근처에서 생활하는 쿠바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다이빙 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 말레꼰에 앉아 음악을 듣는 사람, 내가 쿠바에 온 첫날 택시투어를 하다 들렀던 말레꼰에서는 온통 관광객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약간 변두리쪽에 오니 그네들이 말레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 역시 소득 아니겠는가. 처음에 말레꼰에 대한 내 인상은 분노의 질주 오프닝으로 유명한, 쿠바에서 꼭 봐야할 드라이브 코스. 엄청 예쁜 강. 정도였다. 그래서 관광명소가 된 강. 하지만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쪽을 조금만 벗어나면 쿠바인들이, 아바나 시민들이 말레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한강, 한강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광명소이지만 동시에 그네들이 여유를 즐기고 삶을 찾는 공간, 말레꼰.
첫날 나는 택시투어를 하다 말레꼰을 지나갈 떄 혹시 말레꼰에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해 1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었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사진을 남기지 못하였고,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그들에게 여기서 사진을 건져가자 하여 다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말레꼰은 반짝이고, 우리가 말레꼰을 갔던 이 날은 금요일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금요일은 설레는 날인건지, 말레꼰에는 연신 사람들의 설렘이 일렁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말레꼰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지나갔다. 민망함은 잠시, 사진은 영원! 이라는 말을 다들 생각하는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구경한다 라는건 인지하면서도 포즈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올드카투어를 하며 내렸었던 곳은 프라도 광장과 맞닿아있어 유동인구도 많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이는 (?) 곳이었어서 그런지 쿠바 거리의 악사들이 다가와 무작정 돈을 뜯어냈다. 거리의 악사라고 하니 집시가 생각나지만, 정말 거리의 악사였다. 갑자기 경치를 구경하는 관광객을 에워싸고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이 노래를 생각없이 듣다보면 금전을 요구했고, 이들을 피하는 방법은 에워쌓이기 전, No!를 단호히 외치고는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으나, 자리를 옮겨도 그들은 따라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이 스팟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최적이었다.
한참을 사진 찍다 보니 어느새 여섯시가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 저녁 식사는 고급진 곳에서 하고 싶다며 예약한 식당이 있기에 식당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던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여주자 택시 기사는 차를 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말레꼰이 작아지고 있었다.
안녕, 안녕 말레꼰.
우리가 마지막날 저녁으로 고른 곳은 바로 “La Guarida”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쿠바에 다녀간 한 블로거의 글을 보고 꽂힌 내가 예약하자 우겼던 집으로,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인데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처음 건물 입구에 도착해서는 이집인가? 하며 갸웃거리며 들어갔는데 여전히 공사장과 같은 아바나 건물 특유의 모습에 같은날 오후에 봤던 어글리 꼬레아나!를 외치던 미친놈이 생각나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가게 이름이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자 갑자기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고, 식당을 향해 힘차게 계단을 올라갔다.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더니 과연 인테리어가 정말 예뻤다. 2018년 기준으로 소위말하는 힙이 넘쳐 흘렀다. 쿠바에서 마주한 모든 순간이 힙이 넘쳤지만, 이 곳은 식당으로서의 힙이 넘쳤다. 식기구는 앤틱하여 귀엽고 오래된 물건 특유에서 흘러나오는 도도함이 넘쳤고, 곳곳에 장식되어있는 장식품은 쿠바 특유의 노란 빛으로 벽지를 칠한 이 가게의 분위기를 더 돋구워주고 있었다.
마지막날이니 돈 걱정하지 말고 먹고싶은거 다 시키자는 나의 총무스러운 발언에 다들 한가지씩 겹치지 않게 메뉴를 고르고 나니, 이제까지 쿠바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높은 금액이 적힌 빌지를 종업원이 건넸다.다행히 예산을 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비싼 음식이라니, 맛없으면 드러누울테다. 라며 경계하고 있던 우리에게 차례차례 음식이 나왔는데
비주얼부터가 맛 없을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 중 양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있었는데 양고기는 양꼬치만 먹어봤던 우리가 긴장하며 첫 입을 넣자마자 이게 양고기야? 라며 놀라움을 뱉어냈다.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없고, 소스는 고기와 잘 어우러지며 그 중 제일은 육질의 부드러움이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먹으며 오와- 진짜 맛있다 등등의 감탄사를 연신 표하고 나니 모든 음식이 사라져있었다. 역시 쿠바에 와서 먹은 음식중 제일 비싼데 제일 맛있다, 여기 인테리어 예쁘지 않냐 근데 덥다 등등 선 음식 취식 후 가게 감상을 마치고, 기분 좋게 음식값을 계산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기분이 묘했다. 맛있는 음식을 정신없이 먹은것 까지는 즐거웠으나, 이게 우리가 쿠바에서 먹은 마지막 밥이겠지. 다음날 아침 일곱시 비행기로 쿠바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벅찼다. 일요일 오후에나 도착하는 스케쥴이기에 다음날 바로 출근해야하는 스케쥴.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묘했다. 쿠바의 마지막이라니
음식점을 나와서 쿠바에서 먹은 마지막 밥은 되게 맛있지 않았냐, 라고 말하자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와서 바로 숙소까지 택시 타자고 하더니 조금만 걷자가 택시를 타자고 하여 마지막으로 올드 아바나의 밤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사람이 많은 길만 다녔고, 심지어 아까 오후에는 왠 이상한 사람들도 만나서 신경이 예민할만도 한데 그것 보다는 쿠바에서의 마지막이라는게 더 아쉬웠던 것 같다.
10월말의 쿠바 날씨는 매우 더웠다. 우리나라도 장마가 가고 나면 더 더워지는 것 처럼 쿠바도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다음이라 그런지 날이 더운느낌이었다. 집안이 더워서인지 길 밖에 앉아 바람을 쐬는 사람들을 보며, 혹은 문 열린 그네들의 집을 흘끔 거리며 아바나 사람들의 집 내부는 어떤지 구경하려 했다.
쿠바인들의 삶의 순간이 마주하는 지점과, 관광객으로써의 우리가 만나는 그 순간.
밤길을 걸으며 마지막 쿠바의 밤을 아쉬워 하다보니 쿠바인들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원래 나는 돼지같은 사람이었다. 주변은 어지러워도 나는 깔끔해야하는 사람. 그러다보니 더러움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낮은 편인데도 이런 내가 보고 적잖이 놀란 나라인데도 그 나라에 사는 이사람들은 정말 밝다. 나 조차도 눕기 싫어할 소파인데도 거기서 몸을 부비며 자고, 흙바닥과 돌바닥, 보수공사가 심히 필요해 보이는 도로여도 잘 다닌다.
내가 서울에서, 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다 이 곳에 와서 이 모든 것들을 처음엔 불편하다 느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모를땐 괜찮았던 것들이 알면서 괜찮지 않아지는것. 그것이 앎의 불편함 아닌가 싶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불편함이 더 컸겠지만 그에 대한 부산물로 china, japones등의 말을 알고 있기에 이들에게 불쾌함을 느꼈다. 내가 이 말을 몰랐다면 나는 물론이고 일행들도 기분나쁠 일이 조금은 덜하지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는게 다라는 말과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이 이래서 서로 양립하는게 아닐까. 앎은 양날의 검인 것 같았다. 무엇인들 안그러겠냐만은.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 한명이 쿠바 커피 판매 상점을 발견했다 하여 그 자리에서 내려 가게로 달려갔는데 아홉시까지 영업하며, 지금 아홉시 되기 3분 전 이기에 나는 팔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보였다. 공산주의는 이런건가. 내일 아침 아홉시에 영업시작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내일 아침 일곱시 비행기로 쿠바를 떠난다고 말하자 그는 한숨 쉬며 현금으로만 계산 가능하다고 하였고, 어차피 현금밖에 없던 우리는 그라씨에 그라씨에 하며 커피 원두 구입에 성공하였다.
마지막까지 스펙터클하다며 깔깔 거리며 호텔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일곱시 비행기이기에 다섯시까지는 공항에 가야하고, 호텔에서 공항까지 가는 차를 대절 해 주는데 그 차는 네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잘건지 아니면 놀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돈이 남았으면 술을 먹고싶다는 말에 남은 돈도 털어낼겸 바로 다시 모였다.
시가를 들고.
우리나라는 당연히 호텔 바에서 금연이겠지만 이곳은 시가의 나라이고, 당연하게도 호텔 바에서 흡연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다면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시가를 피우며 모히또를 마시며 이 밤을 즐겨보겠다고 다짐하고 아까 산호세 시장에서 산 담배 케이스와 시가 박물관에서 산 시가를 들고 불을 붙이려 부단히 애를 썼다. 우리 중 시가를 피워본 사람이 없으니 시가를 어떻게 피우는지 알게 뭐야. 그래서 낑낑 거리며 어떻게 하는거냐 하며 씨름을 하는데 이런 우리를 지나가며 흘끔 거리던 호텔 직원이 와서 알려주고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가를 피워본 감상은 어릴 적 읽었던 꼬마니콜라에서 니콜라가 뤼퓌스 아빠의 시가를 피우고 기절했던 에피소드는 진짜였다. 럼주는 마실 수 있어도 담배에 면역은 없었기에 이렇게 피우는거냐며 들이 마시고 있자니 어느새 정신이 몽롱해지고 술을 마신것 마냥 어지러웠다. 술은 그래도 어떻게 해야지 정신을 차릴 수 있는지 알겠지만 시가는 뭘해도 정신이 맑아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래서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대마초 기운이 가실 때까지 환각을 보는건가 싶어지는것이....죽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나에서 모히또를 마시며 시가를 피워본 경험은 힙이 꽉 차는 경험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모히또를 마시고, 시가를 피우다보니 어느새 쿠바의 마지막 밤은 떠나가고 있었다.
별거 아닌 시가를 피우는 방법
시가의 막힌쪽을 컷팅기로 잘라준다.
컷팅기로 자른 쪽을 입에 물고, 반대편에 불을 붙인다
시가 연기를 입안에 머금고 향을 느낀 후 바로 뱉어준다.
(시가는 절대 일반 담배를 피우듯 폐까지 내려보내면 안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