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5일차, 조용한 현포마을 산책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운건 숙소의 고양이 두마리였다. 이른 아침 일어나 화장실에 잠시 갔다오는 길에 방 문을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밀면 들어올 만큼 열어뒀나보다. 뭔가 옆구리가 포근한 느낌이 들어 뭐지? 하고 눈이 확 떠져서 눈동자를 돌려보니 숙소의 마스코트 오순이가 뭘봐 하는 표정으로 날 은근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 오순이를 한참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봤는데 나 외의 다른 손님 (이라 해 봤자 둘 이지만)은 방 밖에서도 들릴만큼 요란하게 잠을 자는 중 이길래 외출 준비를 느긋하게 하고는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즐기기 위해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만 채로 문을 열고 도로변의 내 자리에 걸터 앉았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진 몰라도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전날 협의 (?) 한 바에 의하면 오늘은 관음도에 가 보고 태하 모노레일 방면을 가고 쇼핑을 하기로 했는데. 관음도에 가서 날이 흐리면 조금 슬프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릉도에 며칠 지내본 바로는 이렇게 날이 흐리다가도 갑자기 해가 뜨기 마련이었지만. 일단 아침밥을 먹으며 본 하늘은 전혀 밝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람도 꽤나 부는 것 같아 오늘 배가 무사히 뜨게 되려나. 라는 현실적인 걱정도 함께 들었다. 연차를 하루 더 쓰는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눈치가 보이는데. 자연재해니까 괜찮으려나 등등의 생각을 하다보니 아침밥 한그릇은 뚝딱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숙소에 들어왔는데도 아직도 깰 생각이 없는 동생의 방 소음을 듣고는 아침 산책이나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는 퀵보드를 천천히 몰고 나왔다.
2일 전 독도에 들어가던 날 아침에는 숙소를 기준으로 오른 쪽으로 달려 삼선암까지 갔으니 이번엔 왼쪽으로 달려볼까 했다. 당연히 숙소의 왼쪽으로 찻길을 따라 가면 아무것도 없다. 전날 해가 지는걸 봤던 전망대로 올라가는 언덕길, 다시 말하자면 내가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찍었던 그 언덕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 언덕길의 사잇길이 있는것을 여러번 왔다갔다 하며 확인했던 터였다. 그 사잇길을 가보고싶어졌다.
퀵보드를 타고 한적한 울릉도의 아침 길을 달리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바람만이 나를 반겼다. 관광객이 모두 빠져서 그런지 길에 간간이 보이던 트래킹하는 사람들, 캠핑족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조용한 울릉도를 처음 봐서 그런지 그 고요함이 마음에 들다가도 며칠 전 숙소에 돌아오던 저녁 길에 마주쳤던 불쾌한 경험도 생각나 순간적으로 주변을 경계하게 되었다. 정말 잠시 동안이지만.
어차피 아무도 없는 울릉도인데다가 이번엔 퀵보드를 타고 있어서 더 안심하게 되었던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울릉도의 길, 일주도로가 아닌 뭔가 울릉도 주민들이 지나다닐 법한 길을 지나가게 되어서인지 울릉도를 여행하며 일주도로는 여러번 돌아봤지만 처음보는 주민을 위한 도로를 구경해서인가, 별반 다를 것 없는 길인 것은 알지만 왠지 구경하며 천천히 슬슬 구경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침 낚시를 즐기시는 주민분, 그리고 그 주민분 옆을 돌아다니는 시고르자브종이 분명해 보이는 강아지, 그리고 나 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정을 계획한 여행자 두 명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길 이었다. 그 경치가 상당히 고즈넉하면서도 다붓해보였다.
길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는 길에 보이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그리고 뭐라고 써있긴 한 간판이 있는 잡동사니가 가득한 공터가 길의 끝이었다. 괜히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인 곳을 기웃거리다 오해 사지 말자고 생각 하고는 미련 없이 퀵보드를 돌렸다. 일주도로를 달릴때와는 다른 시원한 느낌이 느껴졌다. 일주도로는 그래도 사람들이 편히 다니라는 의도를 담아 만들어둔 길이라 그런지, 편하게 닦여있는 느낌이었다 (일부 구간 제외하면!) 하지만 이 길은 이 곳에 목적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이라 그런지 날것이기도 한 한편, 해양 연구소 때문에 상당히 잘 꾸며져 있는 길 때문에 일주도로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바다가 더 가까워서 그랬을까.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바다바람에 순응하여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도로 한 편에 위치해 있었다. 괜히 아침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바다바람에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잘어울린다 싶어 잠시 퀵보드를 멈춰두고 사진을 찍고 다시 퀵보드로 돌아가며 울릉도의 산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분명 내가 퀵보드를 세우기 전 까지는 흐렸던 하늘인데 갑자기 해가 나는게 아닌가
그 해가 비추는 것을 보고 정말 변화무쌍이라는 말은 울릉도 하늘을 두고 이르는 말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내리쬐는 햇빛을 만끽 하며 다시 숙소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별로 볼 건 없다 싶지만 전혀 해를 보여줄 것 같지 않게 흐린 날씨였는데 갑자기 해가 떠서 그런지 볼 것이라거나 생각할 것 없는 아침 산책이었는데 왠지 이 길이 울릉도에서 나에게 기억에 남을 산책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산책했던 길과 일주도로가 만나는 길목에서 언덕길을 넘어오는 차가 없는지, 맞은 편에서 오는 차가 없는지 살피고 있는데 동생이 눈을 떴다며 누나 어딨어요? 라는 카톡을 보냈다. 울릉도의 마지막날이 시작되려나보다
나에게 괜히 설레는 마음을 안겼던 현포마을 길, 다음에 또 와서 그땐 느긋하게 걸어서 산책 해 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