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에 나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상한 그림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얼굴을 가리고 눈만 있는 사람들의 그림이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빌딩 숲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잔다.'
그래서 나는 빌딩 숲에서의 삶에 대해 한참 생각을 한 후에 연필을 가지고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나의 첫 번째 그림이었다. 그 그림 속에는 마스크를 쓴 남자 5명과 여자 5명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누가 웃고 있는지, 누가 슬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냐고 물었다. 어른들은 "웃고 있는지 아니면 슬퍼하고 있는지가 왜 중요한 거지?"라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마스크로 가린 부분을 그리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마스크 속에는 미소 짓거나 슬프거나 하는 표정의 얼굴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마스크를 투명하게 그려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어른들은 속이 보이지 않거나 하는 마스크 속 사람들의 그림을 집어치우고 차라리 그 시간에 수학, 영어, 국어 그리고 과학 쪽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설명해주어도 그때뿐이니 맥이 빠져 버렸다.
그래서 고민 끝에 보트를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보트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을 거의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보트를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그때 영어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영어는 유용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과 접촉을 해왔다. 어른들 틈에서 많은 경험을 한 것이다. 나는 가까이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한 것은 없었다.
조금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간직해 왔던 그림을 가지고 그 사람을 시험해 보곤 했다. 그 사람이 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은 그게 왜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 나는 마스크 속 사람들의 표정과 그 사람들이 왜 마스크를 쓰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잡담 정도만 이야기했다.
주식 시장이나 정치, 요즘 뜨는 신기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러면 그 어른들은 똑똑한 청년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었다.
나는 1년 전 태평양에 숨겨져 있는 데몬 섬에서 사고를 당할 때까지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이 혼자 떠돌며 살아왔다. 보트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데몬 섬에는 엔지니어나 승객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수리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생사를 다투는 일이었다. 식량이라고는 고작 일주일 치만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밤 나는 육지로부터 수백만 마일 떨어진 미지의 섬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뱀이나 여우들만 사는 사막이 대부분이고, 해안가 일부에 마을이 있는 조그만 섬에 있었다. 그러니 새벽 아침에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깨웠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작은 목소리는 말했다.
"미안한데요. 나에게 비버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그래서 눈을 비비면서 이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사람이 거의 없는 섬에 고장 난 배와 함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작은 아이는 두려움도 없이 그냥 평온한 표정으로 너무도 침착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이 섬에 사는 원주민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원주민 모습과는 너무도 멀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그리고 그때 그 아이는 마치 심각한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부탁을 다시 해왔다.
"미안한데요, 내게 비버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너무도 신비로운 힘이 나도 모르게 감싸고 있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느낀 황당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종이와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내게 비버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나는 비버를 그려 본 적이 없어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려 주었다. 그것은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아이의 반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나는 저는 마스크 속에서 슬퍼하는 얼굴을 원한 게 아니에요. 내가 사는 곳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필요한 것은 비버예요. 내게 비버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그래서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본 다음에,
"아니에요! 이 비버는 병이 들었어요. 다시 그려 주세요."
나는 다시 그렸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너무 늙었잖아요. 저는 오랫동안 저와 함께할 비버 한 마리를 원해요."
도대체 어떻게 그려달라는 것인가. 그림에 자신이 없던 나는 난감했다. 그래서 대충 종이박스 같은 모양으로 그려서 던져 주었다.
"고마워요. 내가 부탁한 비버가 안에 있네요."
"내가 바로 원하던 것이네요! 이 비버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집은 너무 작으니까요."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려준 것은 매우 작은 비버니깐."
그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작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자는 모습이 예쁘네요."
그렇게 나는 어린 왕자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