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ID 119

ID 119 어린 왕자

by 은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와 함께 있으면 거의 그 아이가 질문하였고 내 말에는 관심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궁금증은 그와의 대화 과정에서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건 뭐 하는 물건이에요?"

"그냥 물건이 아니야. 물 위를 달리는 거야. 이건 보트야. 내 보트."

나는 내 보트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러자 그가 외쳤다.

"네? 물 위를 달려 여기까지 왔다고요?"

"그렇단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대충 대답했다.

"그거 진짜 재미있었겠네요." 하며 그는 웃었지만, 나는 나름 불쾌했다. 보트가 고장 나서 여기에 표류하게 된 것인데 그가 웃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배를 타고 왔군요! 어느 섬에서 왔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거꾸로 질문했다.

"너는 어느 섬에서 왔니?"

"여기에는 어떻게 왔니?"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 보트를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보트가 작아서 당신은 먼 곳에서 올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오랜 시간 상념에 젖어 있었다. 한참 후에 그는 주머니에서 내가 그려준 비버를 꺼내어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린 꼬맹이, 너는 어느 섬에서 왔니? 내 비버를 어디로 데려갈 거니?"

그 아이는 긴 침묵 끝에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그려준 상자는 밤에 집으로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지? 너만 좋다면 비버를 위한 목줄을 그려 줄 수도 있단다."

그 말이 아이에게는 큰 충격을 가한 것처럼 보였다.

"비버를 묶어 둔다고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럼 묶어두지 않으면 도망갈 텐데. 그럼 낭패 아니겠니?"

그 아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사는 섬은 아주 작아요!"

그리고 덧붙였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다 내 눈에 보여요."




이렇게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사는 섬이 고작 집 한 채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지구상에 178만여 개의 무인도가 있고, 너무 작아서 밝혀지지 않은 무인도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름 없는 조그만 무인도를 찾아내게 되면 '무인도 19'라고 숫자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가 떠나온 섬은 무인도 ID 119가 확실한 것 같았다. 이 섬은 인도양 북부지역에 있는 몰디브 섬 동쪽으로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인데,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발견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선원들에게서 그 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 말로는 조그마한 아이 혼자 사는 섬이 있어 그를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그 아이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그 섬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지금 보니 옆에 있는 아이와 똑같았다.


매일 나는 그의 섬에 대해서, 그의 여행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흘째가 되었을 때, 그의 섬 ID 119의 비극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실인가요? 비버가 댐을 짓는다는 것 말이에요?"

"그래, 그건 사실이야."

"아! 정말 기쁘네요!"

나는 비버가 댐을 짓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왕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비버는 열매를 좋아하나요?"

나는 그에게 비버는 열매뿐만 아니라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모두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니?"

"비버가 나무를 먹으면 나무가 점점 없어지잖아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너는 왜 비버가 나무를 먹지 않았으면 하지?"


사실 어린 왕자가 사는 섬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가 사는 섬은 작지만,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섬의 해변이 조금씩 좁아지는 것 같았다. 측정해보니 매년 1cm 정도씩 해변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래서 그는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해변에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쌓아놓은 나뭇가지가 바닷물에 모두 쓸려나가 없어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바닷물을 막는 것은 그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그는 날마다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해변에 나뭇가지를 쌓아두어도 곧 없어져 버렸지만, 이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비버를 보게 되었단다. 그런데 비버라는 예쁜 동물이 나뭇가지로 댐을 잘 쌓는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어린 왕자는 비버를 키우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비버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나를 만나서 비버를 구했는데 나뭇가지까지 먹는다니 그에겐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규율의 문제란다"

"규율의 문제요?"

"그래! 비버는 훈련이 잘되는 동물이니 나뭇가지는 먹지 못하게 하고 열매를 먹게 하면 된단다."

"정말 비버가 열매만 먹게 할 수 있나요?"

"원래 비버는 열매를 더 좋아하지. 열매가 풍부하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제야 어린 왕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활짝 피어났다.

나는 비버가 열매를 따서 먹는 그림과 댐을 만들고 그 속에서 쉬고 있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내 그림 솜씨가 형편없어서 여러분들은 그 그림을 보면 무엇인지 잘 모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는 그림 하나를 가슴에, 다른 그림 하나는 얼굴에 덮어 놓고 편히 잠드는 것이 아닌가.

아! 잠들어 있는 어린 왕자야, 나는 이제야 조금씩 너의 힘겨웠던 삶을 이해하게 되었구나.



넷째 날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는 우물을 좋아해요. 같이 가요. 우리 우물 보러 같이 가요."

"좀 기다리자."

"뭘 기다려요?"

"아직 마실 물이 남았단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혼자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나는 당신도 우물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랬다. 내가 사는 세상에는 거울이 있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나는 거울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에게는 거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물에 비친 얼굴을 보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물에는 내일 가자. 나는 아직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단다."

"네, 전 우물이 가까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 너의 섬은 매우 작아서 몇 걸음이면 충분했을 거야. 그 섬에 우물이 다섯 개가 있었다고 하니 언제든 원하는 우물로 갈 수 있었겠지. 그리고 다섯 개의 우물마다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니 우물이 그립기도 하겠구나. 그 우물의 이름은 '기쁨, 까칠, 버럭, 소심, 슬픔'이었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니?"

"혼자 있어도 그때그때 감정이 달라져요. 그래서 각각의 감정을 우물에다 붙여주었어요."

조금 후에 그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나요? 슬픔이가 가장 사랑스럽다는 걸요?"

"왜 그러지?"

하지만 어린 왕자는 말없이 먼 하늘만 쳐다보았다.





이전 01화조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