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 준 한 마디

5부.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by 은파
동양사상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

이데아 vs 기독교적 신 vs 이성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로서 초월적 실재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관념은 중세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신(하나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이 시기의 가장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길만이 진리라고 믿고 살았다.


이러한 상황은 근대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바탕으로 인간은 세상 만물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기술 문명 시대 도래의 필연성


이데아나 신을 추구하던 이원론적 세계관을 이어받아 이성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기술 문명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근대시대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탐구는 수많은 경험 과학을 낳았으며, 오늘날 기술 문명 시대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이에 따라 인간은 기술 문명 시대의 주인으로서 세상 만물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의 자원에 불과한 지구를 끊임없이 파헤치며 살아왔다. 최근에는 서양을 따라잡기 위한 동양 국가의 기술만능주의 또한 극단화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구는 각종 오염 물질로 가득 차 있고,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신종 전염병이 전 지구를 휩쓸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하나의 생명체라 볼 수 있는 지구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양 주류 철학 vs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은 필연적으로 기술만능주의 시대를 열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 우리가 하루빨리 사상적 전회를 이루지 않으면 인류는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하이데거는 어떠한 해답을 내놓았을까?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양철학 2000년 역사는 한마디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 있어 초월적 존재(이데아나 신 또는 이성)를 찾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감히 언명한다. 인간은 자연 만물의 주인도 아니고,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도 아닌 그저 세계-내-존재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어찌 보면 동양의 노장사상과도 상당히 닮아있다. 놀라운 일 아닌가? 동양사상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시기의 유럽에서 동양사상과 닮은 하이데거의 철학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시꺼먼 구름과 가녀린 햇빛

서로 눈짓하며 은혜를 전하건만

오락가락 가랑비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다림


진리는 위장막 속에서

기다리다 지쳐 울고 있으나

조급함만 성을 내고 있구려


땅속 깊은 정성을 모아

구름 속에 흩뿌린 물방울은

생명들에게 피를 선사하기에

축복 속에 받아들이면 될 것을


열자 닫힌 가슴을

피를 돌게 하자

막혔던 혈관 속으로

불안이 엄습하는 곳에

희망꽃이 피어나도록.




하이데거 '동양사상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


하이데거가 1966년 9월 23일에 기고한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 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서양의 정신문명과 기술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동양사상이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양이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동양에서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그 해답은 문제를 일으킨 서양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대목이다. 서양보다 더 서양화된 동양의 기술 문명 숭배 주의를 꾸짖는 말로 들리지 않는가? 하이데거의 이 말이 내 머릿속을 수년간 지배할 정도로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하이데거의 준엄한 꾸짖음이 아니더라도 동양사상의 주체성을 다시 확립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한다.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지금 전 지구적 환경재앙이나 각종 전염병 창궐, 기계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이 동양사상에 있다는 점을 굳건히 믿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물론, 전부를 다 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시작하려 한다. 작은 불빛이라도 틔우는 작업을. 그러다 보면 죽기 전에 온전한 빛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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