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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Dec 05. 2015

꿈의 역사 #2

산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나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신다. 간다고 대답하기 위해 딱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금요일을 보낸 뒤 맞이한 토요일 오후였다. 본가로 가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따뜻한 밥 먹으며 쉴 것을 기대했던 주말이다. 그러나 매주 찾아오는 주말보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전화가 훨씬 반가웠다.


우리 외할아버지께선 내가 초등학생 시절 돌아가셨다. 언제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한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셋째 외삼촌 댁에서 상을 치렀는데, 난  그때의 조문객들을 이해하지 못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농사일 틈틈이 찾아와 술을 드시며 이따금 다른 어르신들과 언성을 높이셨고, 저녁엔 화투판을 벌이며 돈 놀음을 했다. 상을 치르는 가족의 마음은 어쩌고 이런 소란을 피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웃고 떠들기나 하는 몰상식한 사람들로 보일 뿐이었다. 장례가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큰아버지의 빈소에 도착해 오랜만에 만나 뵙는 친지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내 근황도  말씀드렸다. 어르신들께는 벤처회사에서 일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놀지 않고 취직해서 일한다는 사실에 어른들께선 지 아비를 닮아 부지런하게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 하셨다. 저만치서 슬며시 나와 어른들의 대화를 듣는 아버지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시골로 내려오는 내내 다른 기업에 지원서를 꾸준히 접수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지나 어르신들이나 거의 하시지 않는다. 아직 이승의 공기를 마시는 이들에게는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이들의 안부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 아버지께선 집안의 같은 항렬을 가진 동기 중에 한자를 가장 잘 읽으시고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으신다. 덕분에 모든 경조사의 축의금과 부의금 봉투를 개봉하고 계수하는 일을 맡으셨다. 나도 어릴 적부터 한자를 곧잘 익혀왔고 아버지께선  대견해하셨으며, 머리가 굵어질 때쯤 되어선 나를 데리고 본인께서 하시던 일을 조금씩 맡기셨다. 아버지께선 이번 장례의 비용과 관련된 일들을 대부분 내가 처리하게 하셨고, 큰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께서도 응당 내 아버지가 하던 일이라 생각하시는지 별다른 말씀들이 없으셨다. 내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은 자연스레 내 일인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몫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인가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남기고 이 곳을 떠났다. 수 백의 산 자들은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떠난 이의 가족과 친척을 위로하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그렇게 남은 자들은 이별을 매개로 남은 이들의 안녕을 확인한다. 적어도 내가 방문한 장례식장과 치러본 상 중에는 곡 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내 생각을 증명한다. 어릴 때는 엄숙하게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장례라고 여겼다면, 지금의 나에게 장례는 산 자들을 위하여 죽은 자가 마련한 회합의 자리이다. 죽은 자를 핑계로 산 자들은 서로를 만나고 유대를 나누는 기회를 한 번 더 만들 뿐이다. 오히려 죽은 자의 마지막 할 일은 산 자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아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제법 성인이라고 할 만한 나이가 된 나에게 아버지께선 본인께서 하시던 모든 일을 맡기고 어디론가 쏘다니셨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내가 함으로써 나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의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아직 아이가 있는 것도, 결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께선 내가 어릴 적 본인께서 하시던 일을 내가 크면 다 해야 할 일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적은 없지만 본인께서 직접 보이시며 자신의 분신을 완성하신다. 본인께서도 죽는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죽은 자는 병풍 뒤에 누워 아무 말이 없다.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위해 비싼 돈을 들이지만 결국은 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산 자들을 위하여, 죽은 자가 베푸는 마지막 회합의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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