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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치니 Feb 22. 2024

헤루아저씨

 인도네시아에 와서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정말 필요에 의해서였다. 사실, 서울에서 운전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교통체증에 끼어들기와 꼬리물기 하는 차들에 단련된 몸이었다. 오기 전 호기롭게 국제면허증도 발급 받았다. 하지만 도착한 첫날 겁에 질렸다. 운전석이 바뀌니 좌회전 우회전이 헷갈리고 일방통행로가 많으니 돌아가기 일쑤에다 이게 진입로인지 진입금지인지도 모르겠고 설상가상 오토바이가 자동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게 다반사였다. 신호등은 별 의미가 없었다. 진정한 고수들이 아니고서야 규칙 보다는 차와 사람간의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계를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쫄보다. 그래서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광택이 멋진 밴 한 대가 아파트 로비에 들어온다. 뒷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차려입은 여성이 내린다. 운전기사는 뒤에서 골프백을 꺼내준다. 내가 살게 된 집에 처음 왔을 때 본 풍경(?)이었다. 그 여성의 도도함(지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한 것이다.)에 기가 눌렸었다. "얕보이면 안된다." 주변에서 들은 말이다. 사람을 쓸 때 그래야 한다고. 잘해주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일을 안한다고. 사람을 써 봤어야지. 평생 '을'로 살아온 나에게 그건 몸에 배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늘 친절한 사람이다. 인간애가 넘치고 휴머니즘이 충만한 그런 사람이다.


 헤루아저씨가 처음 왔을 때 나의 경계심은 대단했다. 무슬림인 아저씨가 히잡을 쓰지 않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저 사람을 믿고 내 가족을 차에 태운다는게 꺼려지기도 했다. 그 경계심 덕분에 내 표정은 항상 근엄(?)했고 특별한 대화없이 필요한 말은 번역기를 돌려 채팅으로 보냈다. 하지만 나는 (몹쓸) 친절과 배려가 몸에 익은 사람이었다. 늘 인사를 잊지 않았고 마냥 기다리는 아저씨가 신경쓰여 되도록 시간을 미리 알려주었다. 일정이 없을 땐 이른 퇴근도 자주 시켜주었다. 내 손으로 들 만한 짐은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하수는 금새 티가 난다. 헤루아저씨는 꽤 편한 고용인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헤루아저씨가 아파트에 와 있는 게 불편하다. 신랑은 운전기사가 필요하지만 업무 상 늘 쓸 상황은 아니다. 한마디로 헤루아저씨는 자유시간이 많다. 저 아저씨는 이렇게 심심하고 따분한 직업을 도대체 왜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하루종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어디선가 시간을 때우다 끝나는 일.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필요도 없는 외부 일정을 만드는 건 내 몫이다. 이타심이 넘쳐나서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심심할까봐 나는 매일 어딘가를 가고 있다.


 아저씨와 '밀당'을 하는 일도 참 피곤하다. 자격지심인지 친절하게 대하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스트레스가 쌓인다. '인간답게 살자'를 외치는 내 순수한 마음 같아서는 아저씨의 가족은 어떤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등등 묻고 싶지만 경계가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로 정체를 모르는 게 마음 편한 일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돈을 주고 사람을 쓴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배운다.


 아무때나 차 키를 들고 나가 시동을 걸고 싶다. 운전용 안경을 끼고 티맵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된다. 헤루아저씨 덕분에 내 생활은 한층 더 편해졌을텐데 내 마음은 멋대로 날뛴다. 난 그냥 내가 하는 게 좋다. 대접받고 살 팔자는 아닌가보다. 아니 모르지. 얼마 지나 고용인의 삶에 익숙해진 내가 이 글을 보며 코웃음 날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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