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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r 05. 2024

수습 셰프들은 왜 사직을 결심하게 되었나

사직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점잖은 행위였다.

표준식과 더불어 알레르기식, 당뇨식 등 환자를 위한 필수식을 취급하던 국민 식당은 경영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식사가 3000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심시간 동안에는 식사와 커피를 판매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커피만 판매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 중에서도 셰프가 만든 5000원 이상의 커피나 디저트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에 손님들은 5000원 이상을 기꺼이 지불했다.


국민셰프 대학의 정원을 2배로 늘리자고 한 정치인은 관료들에게 물었다.

"필수 식사를 취급하는 식당이 거의 없어서 국민들이 불편하다는데,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

"네, 커피 매출이 필수식사 매출보다 큰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필수식사에 보조금을 2000원 얹어주고 식당에서 커피를 팔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커피만 파는 곳은 셰프가 2배로 늘어나면 무한 경쟁에 노출되니 어차피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 커피를 파는 것이 메리트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필수식을 팔게 될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어떻게 커피를 못 팔게 하겠소? 손님이 주문하면 그만인데."

"보조금을 청구한 내역 중 영수증에 필수식과 커피가 함께 있는지 대조한 뒤, 보조금을 환수하면 됩니다."


그들은 이것을 '필수식사 패키지'라고 이름 붙였다. 바꿔 말하면, 국민식당에서 밥을 먹은 손님에게는 국가 보조금이 들어갔으니 커피는 사 마실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필수식을 먹은 손님은 커피 값을 내고 커피도 마셨지만, 식당은 규정을 어겼으니 다시 커피값을 국가에 벌금으로 내야 했다. 관료는 커피 매출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의 국민 식당에 모든 음료와 디저트 가격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식당 내부에 붙여놓은 커피 가격을 사진으로 찍어서 제출하도록 했다. 또 3월 한 달간의 음료 매출 내역 장부도 함께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제출하지 않을 시 과태료는 수백만 원이며, 결국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셰프들은 한숨을 쉬었다.


행정이 아닌 현장에서 발로 뛰는 국민 셰프가 보기에, 국민셰프대학 증원은 파산이 예견된 국민식당 업계에 사채를 끌어다 쓰는 정책이었다. 셰프가 많아져서 모두 취직을 하거나 사업자를 내고 필수식을 취급한다면, 국가부담금 2000원과 보조금 2000원은 비록 적은 돈이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었다. (새로 입학할 학생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전원이 전문 셰프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필수식을 취급할 셰프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확률이 높았다.그러나 여전히 표준식을 비롯해 국민식당은 대부분의 항목을 국가부담금에 의존하도록 강제되어 있다.) 셰프대학을 졸업하고 타 분야로 진출한다면 모를까. 지금도 부족한 예산인데 만약 어느 날 국가부담금 지급이 정지된다면 국민 식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2배의 학생을 받을 셰프대학은 학생들에게 가르칠 인프라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종합대학 입장에서는 국민셰프학과의 등록금이 일반과에 비해 비싸고 재학 기간이 길기 때문에 증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원의 5배를 적어낸 곳도 있었다. 국민셰프 대학은 등록금이 비싸도 언제나 최상위권 학생들이 도전하는 경쟁률 1위의 학과였기 때문이었다. 사교육 업계는 이번 증원으로 고3 입시생, 재수생은 물론 타 직종에 종사하던 직장인들까지 국민셰프대학 입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입시재수반을 늘리고 바쁘게 움직였다. 유튜브에는 <2024 국민셰프대학 증원> 관련 입시영상이 난무했고, 모 대학의 입학처장까지 초빙해 설명회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이제 필수식을 팔 수도, 커피를 팔 수도 없게 된 셰프들은 하나 둘 식당을 접었다. 대규모 국민 식당에 셰프로 취직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내 식당을 운영할 때에는 250 그릇까지 손익분기점을 잡았지만, 대규모 국민 식당은 사장이 대개 자본가였고 셰프 한 명당 350그릇까지 요리해 주기를 원했다. 1년 계약직인 국민셰프는 매달 말일이 되면 사장의 사무실로 가서 한 달 매출을 장부로 확인하고 더 많은 매출을 강요받았다. 손이 느리거나 원하는 매출을 내주지 못할 경우 재계약은 불가능했다.


한편, 선배들의 잇따른 폐업과 좌절을 보면서 대규모 국민 식당의 수습 셰프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곧 그들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대규모 국민식당의 수습 셰프 역시 계약직이었다. 계약이 만료되는 2월 말, 전국의 국민 수습셰프들은 사직서를 내고 앞치마를 벗었다. 그들의 원한 것은 주방에서 요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셰프들은 '국민식당과 필수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왜 정치인과 국민들은 '입시'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앞으로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셰프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젊은 수습 셰프들이 모두 사직하자, 하루에 20000그릇 이상의 식사를 판매하던 대규모 식당은 셰프가 부족해 하루 1000그릇 밖에 팔 수 없었다. 매출이 줄어든 대규모 식당의 경영진은 애가 탔다. 뜻대로 집단을 통제하지 못한 관료와 정치인은 크게 분노했고, 3일 이내 돌아오지 않으면 국민셰프 자격증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요식업계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감히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쳐?"

그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고 당뇨식과 알레르기 식재료를 발품 팔아 구하러 다니고, 식당이 끝나도 늦게까지 뒷정리와 다음 날 재료 준비를 했던 시간들은 모두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셰프는 생각했다. 관료들은 자격증을 주는 행정절차를 했을 뿐 나를 셰프로 양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스승도 아니었고, 학비 지원도, 취업 및 창업 지원도 전혀 해 주지 않았다. 표준.필수식의 가격만 저렴하게 통제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번 일로 열심히 해 온 세월이 무색하게 셰프 집단을 악의 축으로 만들었다. 온몸이 무기력해진 셰프는 생각을 멈추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드디어 개학을 했습니다. 새 학기가 되어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담임 선생님의 지도 계획,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셨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지도 계획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공교육 현장이 어려워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눈높이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개별적 요구에는 전체 학생을 위한 건의사항보다 개인적인 것이 더 많습니다.


선생님은 교육 현장에서 모든 학생들의 완벽한 생활지도를 할 수 없으며, 학생 간 모든 갈등과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없고 그래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학부모가 원한다고 언제나 전화를 받아주고 모든 것을 해명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원칙대로 지도했다면 선생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지 학교와 학부모 모임이 정식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내가 억울하니 누군가는 꼭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고, 학교를 법정으로 만들어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맙니다. 러니 내 자식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건강한 성인이라면 욕망을 모두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학교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에 계신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자율과 재량으로 지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대부분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예외는 어느 집단에나 있습니다. 예외적 문제 또한 제도로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가의 노력에 맞는 보상을 할 때 우리는 그 분야를 기꺼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이든 민간이든 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부라고 해서 절대권력을 가진 신들이 모인 것이 아니고, 공무원이라고 해서 자유와 욕망이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국민식당의 셰프는 공무원과는 상관없는 민간인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결정하기 원한다면 국가가 국민 식당에 비용을 대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MZ세대는 의미를 찾지 못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아채길 바랍니다.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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