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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20. 2022

자폐스펙트럼이라 하지 말고 신인류라 불러주세요.

관계 추구 인류와 관계 회피 인류의 공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입니다. 자폐스펙트럼이지만 천재에 가까운 우영우는 우여곡절 끝에 로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자폐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아스퍼거 증후군 아동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아빠가 함께 등교하고 온 학교의 구성원들이 협조하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우영우>가 현실과 판타지를 섞은 드라마라면, <금쪽같은 내 새끼>는 극도의 사실주의 다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청률이 높은 콘텐츠에서 자폐스펙트럼을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자폐스펙트럼이 흔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자폐 스펙트럼의 유병률은 최근 20년간에 걸쳐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체로 1만 명 당 0.7-94명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미국 CDC 통계에서 1000명당 13.1명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김영신 등이 대규모의 전수조사를 통해 발표한 유병률은 2.64%로 나타났다.

<홍강의>    DSM-5에 준하여 새롭게 쓴 소아정신의학 중에서


또, 금쪽같은 내 새끼의 이전 회차에는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사례가 있었는데, 오은영 선생님은 '이를 자페 스펙트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언급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언어 및 인지기능이 정상에 가깝기에 자폐스펙트럼과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결국 장애의 정도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라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초, 오카다 다카시의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사람을 관계를 추구하는 공감형 인류와 관계를 회피하는 디스커넥트 인류로 나누고, 디스커넥트 인류가 왜 출현했으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지, 그들이 수적으로 우세해진 후 어떤 디스토피아가 예상되는지를 그려본 책이었습니다. 아마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의사소통장애>의 경우 디스커넥트 인류의 정의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카다 다카시의 견해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의 끝자락에 놓인, 언어 및 인지 기능 보존되나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지 않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디스커넥트 인류가 늘어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20세기, 농경사회가 무너지고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가족 중심의 애착 구조가 무너졌습니다. 애착이 무너지면 처음에는 애착을 갈구하는 의존적 성격 장애가 생기지만, 결핍이 지속되면 똑같이 애착을 하지 않는 성격이 생존하기 편하기 때문에 디스커넥트 인류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2. IT 혁명이 일으킨 비대면 가능 사회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문명이지만, 이 역시 환경에 해당하기에 적응하기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비대면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성격이 생존하기 유리한 것입니다.


오카다 다카시는 인간에게 애착이 정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꼭 필요한 가치이기에, 애착을 영원히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디스커넥트 인류가 우세해지면 사회 전체가 폭발적 공격성을 품은 채 불행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후반부읽어보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는 느낌입니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입니다.


그러면 디스토피아가 오지 않게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해답이 자폐스펙트럼 아동의 부모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장애'로만 인식되었던 자폐스펙트럼이 이제는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성향>에 중점을 두어 디스커넥트 인류라는 이름으로 급속히 증가한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공존하는 법'입니다. 마치 다문화가정이 늘면 그들의 언어, 문화, 음식 등에 대한 소개와 이해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공존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우는 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운 좋게도 이 아이는 학생수가 적은 학교, 헌신적이고 협조적인 선생님들과 교직원, 동급생 학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공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공감 인류라고 불리는 그 공감 능력을 뼈속부터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금쪽이가 엄마를 거절하고 공격적인 언행을 해도, 엄마는 계속 스킨십을 이어가며 사랑을 줍니다. 아이는 부담스러워하며 '나는 이 가족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오은영 선생님은 이 부분을 언급합니다. 아이는 자폐스펙트럼의 특성대로 과도한 스킨십이나 사람 간의 친밀함을 힘들어한다고 알려주는 것이죠. 또, 자극에 예민하니 매번 새로운 자극을 주기보다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익숙한 자극 내에서 아이를 놀아주도록 조언합니다. 부모의 방식대로, 우리가 아는 방법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 준다고 아이의 공격성이나 사회성이 좋아지는 것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은 있는 그대로 공감해 준 뒤, 교정해야 할 행동은 교육과 훈육을 하는 것이 오은영 선생님의 해결 방법입니다. 그중에서도 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의 부모님이 겪을 마음고생은 크게 2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첫째는 이것이 장애로 인식된다는 점입니다.


Rutter(1983)는 인지적, 언어적 장해가 자폐증의 기본적인 결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폐증이 본질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와 이론이 대두되었다.

1. 상징적, 표상적 인지의 결함
2. 타인에 대한 이해의 결함
3. 사회적, 정감적 표현의 결함
4. 중추 통합 능력의 결함

<홍강의>    DSM-5에 준하여 새롭게 쓴 소아정신의학 중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언어, 학습 능력이 자폐스펙트럼의 핵심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이해와 관계 형성 능력이 핵심 결함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스펙트럼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자폐는 천차만별'입니다(-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 중 우영우 대사). 따라서 자폐스펙트럼은 장애로 인식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추구>라는 측면에서 기존 집단과 크게 다르다고 유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애착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평생 짝사랑만 해야 한다는 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 : 역시, 자폐인과 사는 것은 꽤, 외롭습니다.
우영우 : 지금도 그런가요?
아버지 : 지금은 훨씬 낫지, 대화가 되잖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 우영우와 아버지의 대화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시밭길 같은 시간을 보내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상반되는 가치를 가진 집단이 같은 영역 내에서 마주치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십자군 전쟁을, 왕정과 공화정은 프랑스혁명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냉전을 일으켰지요. 관계 추구 인류와 관계 회피 인류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카다 다카시는 그것을 간파하고 절망적인 내용까지 서술해 본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께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첫째로 자폐스펙트럼을 더 이상 장애로 인식하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신경 다양성> <디스커넥트 인류> <신인류>와 같은 새로운 개념으로 자폐스펙트럼을 바라보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둘째로 관계 추구 인류와 관계 회피 인류가 공존하기 위한 첫걸음을 위해 어려운 길,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가시는 여러분께 존과 감사를 표합니다. 두 집단의 충돌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연착륙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공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특수 임무를 띤 최정예부대와도 같은 것입니다.


저는 사실 자폐스펙트럼보다는 애착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카시는 20세기 들어 애착이 붕괴했다고 말했지만, 저는 '애착이 진화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자연과 인간의 역할이 각각 존재합니다.


자연이 하는 일은 큰 단위로 일어나지만, 인간의 역할은 그것을 다듬고 세분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진화를 사회에 맞게 다듬어 가 일. 우리는 진화의 두 번째 디자이너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계 회피 인류의 증가라는 현상을 향한 우리의 역할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폐스펙트럼 아동에 대한 양육이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노력일 것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금쪽같은 내 새끼>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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