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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16. 2022

유미와 바비의 연애

사랑은 두려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요즘 <유미의 세포들 2>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원작이 웹툰이었던 <유미의 세포들>은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포'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줍니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이 합쳐진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집중이 잘 되는 이유는,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대 같으면 주인공의 연애가 결혼으로 완성되는 해피엔딩을 기대할 텐데, 40대가 된 저는 한 발 물러서서 자꾸 현실적 분석과 비판을 하게 됩니다. 기혼자의 직업병일까요?

유미와 바비는 사내커플로 시작했지만 유미는 퇴사 후 일을 쉬면서 작가의 길을 준비합니다. 그 사이 둘은 알콩달콩 즐거운 연애를 합니다. 드디어 유미는 퇴사 1년 만에 출간제의를 받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가게 되지만, 이 무렵 바비는 제주도로 발령을 받고 유미와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이때 제주도에서 <다은이>라는 인턴사원이 나타나고, 바비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차를 같이 타고 출근합니다. 다은이는 바비를 짝사랑하게 되고, 유미는 이제 막 작가로서 새 출발을 하려는 시점에 남자 친구의 흔들림을 느끼게 됩니다. 다은이는 간접고백을 남기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지만,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사는 다은이를 불편하게 생각한 바비는 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미가 낮시간에 바비의 제주도 집에 도착해서 부동산 중개인을 마주칠 때까지도 바비는 집을 내놓은 사실을 말하지 않아요. 유미는 그동안 쌓인 다은이에 대한 의심과 오해를 가득 안은 채 이별을 선언합니다.  


몇 달이 지나고, 바비는 서울로 다시 발령을 받고 올라옵니다. 유미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둘은 대화를 나누는데, 바비는 차갑게 돌아서는 유미에게 <보고 싶었다>며 매달립니다. 둘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다시 만나게 되는데, 예전과는 달리 어색한 느낌 때문에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저도 20대에는 이런 상황에 이런 연애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면 울면서 또 끌어안고 다시 만나고, 또 상대방이 미워지면 싸우고 헤어지고....

그런데 지금은 여기서 이런 점이 자꾸 눈에 띕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유바비는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상대를 화나게 하면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대가 화가 나서 나를 떠나는 일, 그리고 홀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바비는 평소 늘 유미 입장을 생각해서 양보합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배려심이 많아 보여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연애 초반 크리스마스 이브에 유미의 핸드폰에 찍힌 <팥돌이>의 메시지(-할말 있는데, 잠깐 나올래?)를 보고 전 남자 친구 구웅인 줄 알면서도 바비는 쿨하게 "다녀오라"고 합니다. 물론 믿어주는 마음은 좋은 거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바비는 싫은 소리를 못하고, 참는 것에 익숙합니다.


유미가 바비에게 화를 내며 이별을 선언할 때, 저는 바비가 한 번은 따질 줄 알았어요.


"나는 너를 믿고 이해해 줬는데? 나는 다은이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올 만큼 잘못한 게 없는데? "

라고 하는 대신, 바비는 그저 "미안하다"며 떠나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2. 반면 유미가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미는 상대의 사랑에 대해 의심이 많고 불안해합니다.

 

바비는 유미가 화를 내고 떠날까 봐 다은이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숨기거나 애매하게 넘어갑니다.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유미의 마음을 알아챘음에도 말이죠. 이런 모습은 유미에게 <뭔가 있다>는 시그널을 줍니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존감을 갉아먹고 미칠 듯이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커플은 왜 터놓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시간을 많이 보내지만 정작 중요한 내 마음을 왜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20대의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 내 입장을 설명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늘 좋은 게 좋은 거고 나 하나 참는 게 낫다는 식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오해와 갈등을 부릅니다.


바비가 진정 원하는 것은 상대가 화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너를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비는 성장 과정에서 이별,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해 상처가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별 장면에서 바비의 세포들이 나눈 대화를 보면 그렇더라고요.


유미가 원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상황에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최대한 감추지 말고 분명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도 유미에겐 매우 화가 나는 행동입니다. 그 자체로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라는 의심의 증폭만 불러일으키지요. 유미는 어쩌면 '존재로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웠던 아이일지 모릅니다. 또 '제대로 상황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불안해하는 상황'을 유난히 많이 겪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미는 미국에 출장을 갔으나 연락이 뜸하고 사진도 보내지 않는 바비를, 1주일 만에 집 근처 택시에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따라갑니다. 그때 유미의 마음속에 든 생각은 오직 하나, 나를 만나기 싫어서 피했을 것이고 다은이가 바비의 집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바비가 집에 도착한 것을 알면서도 벨을 누르지 않고 직접 비밀번호로 문을 엽니다.


제삼자인 제가 느끼기엔 과도한 의심입니다. 바비는 불과 며칠 전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유미를 다시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누가 봐도 유미를 너무 사랑하는데 말이지요.


바비는 출장을 위 공항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1주일 동안 입원해 있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얼굴엔 상처가 있는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 보여요. 그런데 유미의 눈에는 <거짓말>만 보이고 바비의 아픔은 보이질 않아요. 자신이 의심했던 다은이가 없었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죠. 사실 다은이가 진짜 문제라기보다는 바비의 거짓말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인데요.


여기서 바비의 해결책은 <청혼>이었어요. 바비는 헤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기에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합니다. 결혼하면 유미가 떠나갈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유미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바비가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고 유미의 불안과 의심을 해소해 주는 것니다. 그냥 그 마음을 인정해 주면 될 걸, 늘 그랬듯이 유미가 마음을 얘기를 하면 바비는 갑자기 안아주거나 키스하면서 상황을 무마합니다. 연애할 때는 로맨틱해 보이지만 이건 좋은 해결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비의 프러포즈를 받는 유미의 표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나를 사랑해서 결혼하자는 것 같긴 한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어....


저도 한 때는 누군가와 헤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고, 그 때문에 불편한 감정도 표현하지 못한 채 려 다닌 적이 있어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모두 나의 과거와 관련이 있었어요.


저는 백일 무렵, 밤에 너무 운다는 이유로 골방에 잠시 방치되었다가, 지친 부모님이 깜박 잠들면서 밤새도록 거기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약 3-4년 간 자다 깼을 때마다 한참을 울었다고 했는데, 아마 그날 밤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장하면서는 양쪽 부모님이 모두 많이 아프셔서 '언제 입원할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저에게 이별, 홀로 남겨짐은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었지요.


신기한 것은 나의 상처와 상대의 상처는 같은 상황에 맞물린다는 점입니다. 유미가 사랑에 대해 의심이 많고 불안해하는 그 상황에 하필이면 바비는 갈등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니까요. 분명 퍼즐이 맞을 것 같아서 그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퍼즐이 맞기는커녕 서로를 아프게 찌르면서 맞물려 있는 상황이랄까요?


하지만 유미와 바비가 결혼을 하든, 헤어지든 이들의 사랑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합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해 보아야 알고 해 보아야 느는 것이지요. 악기 연습처럼요. 그러니 윰밥 커플이 결혼하든, 헤어지든 우린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맙시다. 이루어져도 갈길이 태산이고, 헤어져도 그 안에서 배우고 복기할 것이 많이 있으니까요.


사랑은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극도로 분노할 상황이 생겼을 때, 나의 어떤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이니까요. 다음 주 유미의 세포들 2,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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