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修習) 아니고 수습(獸習)

그러니까 저게 짐승 수라는거죠...

by 미루니

언론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 보통 수습(修習) 시기를 거친다.

닦을 수에 익힐 습,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히는 시기를 뜻한다.

하지만 사실 이 단어에 무시무시한 뜻이 숨겨져있었으니...


나 또한 입사 후에 가장 두려운 순간을 꼽자면 수습 기간이었다. 한 선배는 병아리 같은 우리를 두고 "너네 수습의 수가 무슨 수인줄 아니? 짐승 수(獸)야 짐승 수~"라며 허허허 웃기도 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한 채로 수습 기간은 시작됐다.


수습 기간은 주로 '마와리(廻, まわり)'라고 불린다. '돎, 차례로 방문함'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로, 쉽게 말하면 관할 내 경찰서를 순회하면서 취재를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사실 마와리보다 더한 사쓰마와리(경찰의 '찰(察)'과 '돌 회(廻)'를 더한 단어) 시절도 있었다.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취재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주52시간제가 도입되고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사쓰마와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사회부 경찰 기자들은 서울을 크게는 4구역, 작게는 8구역으로 쪼개서 일명 '라인'을 맡게 된다. 중부 / 마포 / 종로 /혜화.북부 / 영등포 / 관악 / 강남 / 광진으로 보통 나뉘는데, 언론사마다 기자의 나와바리(縄張, 세력권)는 다르게 배치한다. 수습 기자는 이 라인 중 하나에 배치돼서 관할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를 샅샅이 누비며 취재를 해 온다.


내가 처음 맡게 된 곳은 강남라인이었다. 수습 기자의 출근 시간은 새벽 6시. 그러나 첫 보고가 새벽 6시 30분이었기 때문에 1시간~1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보고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아직도 첫 출근 날 강남경찰서 풍경이 생생하다... 1시간 30분 동안 생전 처음 와 본 경찰서에서 경찰과 얘기를 나누고, 이름과 직책, 계급을 묻고, 소위 '얘깃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물어오는 게 마와리 기간 동안의 과제였다.


새벽 5시에 남아있는 경찰들이라고는 당직을 한 경찰분들 뿐, '안녕하세요...000 기자입니다'라고 말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피곤해보였다. 그렇게 한 명, 두 명...말을 붙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경찰의 수가 늘어나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보고시간은 다가오고, 말은 못 걸겠고, 걸어도 '말 못해준다'는 거절만 돌아왔다. 오전 6시 30분, 내 첫 보고는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서 "죄송합니다"로 끝났다.


선배의 불호령에 경찰서 한 쪽에서 쪼그려서 울었다. 말도 제대로 못 붙인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첫 날인데 무섭게 다 잡은 선배가 밉기도 하고, 근데도 아직 겁먹어서 말할 용기를 못 내는 내가 멍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쪼그려서 운지 10분이 지났을까... 동이 터오면서 출근하는 경찰들이 한 두명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있으면 또 혼난다... 빨개진 눈을 훔치면서 "안녕하세요..."라며 다시 말을 걸었다. "수습 기자인데요... 혹시 성함만 여쭤보면 안 될까요..."라고 운을 뗐다. "춥지요?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요." 2시간 만에 만난 귀인이었다. (지금 자리를 빌어서 그때 계장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계장님의 친절로 하여금 남은 마와리를 돌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관할 구역 내 지구대, 파출소 5곳을 1시간 만에 돌고, 비가 오는 날에도 낮에도 밤에도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를 찾아갔다. 개중에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쫓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처음보는 사람일텐데도 '기자'라는 이름 하나를 믿고 자신이 당한 억울한 사연을 얘기해 준 민원인들, '수습 기자 불쌍한 거 잘 안다'며 없는 시간 쪼개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자신의 방을 열어준 과장님들, 야간 근무로 피곤할텐데도 수습기자 왔다며 투박한 질문에도 답변해주신 지구대, 파출소 팀장님들, 팀원분들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마와리는'거절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단기간으로 거절을 당해 본 적이 있나... 이 과정에서 겸손함을 배운 것이 마와리를 돌면서 얻었던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또 사람의 소중함을 배웠다. 경찰분들이 건네 준 바나나, 커피 한 잔, 시민들이 준 핫팩 같은 것들... 이런 순간의 조각들이 기자를 계속 해나가고 싶어진 원동력이 됐다. 기사는 절대 나 혼자 쓸 수 없는 것, 목소리 하나하나 귀중하게 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된 기간이다.



*(덧붙여) 수습 기자의 마와리 꿀팁

1. 청원 경찰분들을 사로잡아라

경찰서에는 늘 경찰서의 대문을 지키는 청원 경찰분들이 있다. 대다수가 은퇴한 경찰분들이다. 이분들과 친해지면서 '혹시 친한 경찰분을 한 분 소개해주실 수 있나'고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 경찰들이 많은 SPOT을 노려라

무작정 경찰서 입구에서 기다리면 경찰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경찰이 모이는 스팟을 찾아서 기다려라. 일례로 식당 앞, 흡연실, 민원인 대기 공간 등이 있다.


3. 거절 당한 지.파도 두 세번 찾아가라

지구대, 파출소는 보통 3교대로 3개의 팀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1팀장님이 만남을 거절했어도 2팀장, 3팀장님은 받아줄 수도 있다. 다만 지.파 교대시간(보통 7시~8시)은 피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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